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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텅텅 빈 한국관에 무슨 일이…“잠시 쉬어가는 곳” [베니스 비엔날레 2024]
눈에 보이는 작품 적고 여러 향이 에워싸
오도라마 시티…냄새로 한반도 지도 그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경. 텅 비어있는 공간이지만 특정 향이 감돈다. [베니스=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탈리아 베니스)=이정아 기자] 미술 전시장인데, 눈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텅 비었다. 시각을 자극할 만한 요소를 의도적으로 숨겼기 때문이다. 다만 전시장을 감도는 16개의 서로 다른 향이 입자 단위로 존재하는 ‘후각 풍경’을 그려낸다. 저마다 서로 다른 기억을 일깨우는 향기가 현실에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관람객을 내밀하게 안내한다.

“한국관은 (다른 국가관과 달리) 조용히 사색하거나 사람들과 만나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했어요.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자기와의 대화를 시도해 봤으면 해요.”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만난 설치미술가 구정아(57)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눈으로 보는) 전시가 정말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시각적인 경험에서 벗어나 냄새로 잠재된 정서를 환기해보라는 의미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주인공인 구정아 작가. [베니스=이정아 기자]

구 작가는 올해 한국관을 대표하는 주인공이다. 한국관에서는 구 작가의 단독 개인전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를 통해 향기와 기억을 활용한 한반도의 무형적인 지도가 만들어진다. 국가를 의미하는 한국이 아닌, 영토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한반도를 강조한다는 점이 특히 눈에 띈다. 오도라마는 향기를 뜻하는 ‘오도(Odor)’와 드라마의 ‘라마(rama)’를 더한 단어다.

그는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한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 군인, 이민자, 학자, 종교 신자, 심지어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한국 도시에 대한 기억이 있고, 한국을 반영한 저만의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의 사연 600편을 공개 설문 방식으로 수집했다. 구 작가가 “한국관 전시는 여럿의 이야기가 모인 공동의 스토리텔링”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접수된 사연은 한국관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경. [베니스=이정아 기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내부 한편에 위치한 뫼비우스 띠 형태의 나무 조각. 바닥에는 무한대를 의미하는 기호가 새겨져 있다. [베니스=이정아 기자]

이렇게 모인 사연을 바탕으로 작가는 특정 키워드를 추려냈고 국내 디자이너 향수 브랜드 논픽션이 조향을 담당했다. 옷장 속 나프탈렌 냄새, 밥 짓는 냄새, 공중목욕탕 냄새 등 상이한 향이 나는 디퓨저가 내장된 하얀 돌 모양의 브론즈 조각 16개가 전시장 곳곳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분사해 향을 표현했다.

이 중 1개의 조각은 관람객이 아예 향을 맡을 수 없는 공간에 배치됐다. 관람객은 분사된 향을 상상해야 한다. 이에 구 작가는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매력적인 곳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6개의 향과 별개로 ‘오도라마 시티’라는 이름의 상업 향수 1개도 제작됐다.

냄새는 구 작가의 언어다. 그는 6㎡밖에 되지 않던 스튜디오에 좀약을 배치한 설치작품 ‘스웨터의 옷장’을 지난 1996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 뒤로도 향은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였다. 한국관 예술감독을 맡은 야콥 파브리시우스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과 이설희 덴마크 쿤스트할 오르후스 큐레이터는 “향의 본질을 탐구하고 분자를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에 대한 구 작가의 관심은 비물질주의, 무중력, 무한, 공중부양이라는 작업 주제로 이어갔다”라고 설명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설치된 ‘우스(OUSSS)’ 동상 조각. 2분마다 ‘오도라마 시티’ 향이 분사된다. [베니스=이정아 기자]
한국관 예술감독을 맡은 야콥 파브리시우스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왼쪽)과 이설희 덴마크 쿤스트할 오르후스 큐레이터(오른쪽). [베니스=이정아 기자]

이를 보여주듯 작은 전시 공간으로 이어지는 한국관 한편에는 태아를 닮은 동상 조각이 허공을 부유했다. 구 작가가 2017년 제작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우스(OUSSS)’다. 성별도, 나이도 없는 중성적인 캐릭터인 우스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3차원 조각 형상으로 구현됐다.

양손으로 브이(V)자를 한 우스 동상 조각의 콧구멍에서는 브이자를 뒤집은 모양으로 오도라마 시티 향이 2분마다 분사된다. 뫼비우스 띠 형태로 존재하는 두 개의 나무 조각이 전시장 귀퉁이를 차지했고, 바닥에는 무한대 기호가 새겨졌다. 볼거리가 많은 다른 국가관과 비교하면 최소한의 설치 작품만이 전시장에 그저 놓여져 있음을 극명하게 느끼게 된다.

[영상=윤병찬PD]
[영상=윤병찬PD]

다만 여러 곳에서 분사되는 향이 뒤섞이면서 전시장 내 관람객이 특정한 향을 구분해 인지하기는 어렵다는 게 난점이다. 직접적으로 한 종류의 향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 구성에 강박을 가지진 않았다는 게 작가와 예술감독들의 설명이다.

구 작가는 “이 시대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 유네스코(UNESCO)나 유엔(UN)과 같은 초국가적인 국제 기관의 일종으로 기능하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계 없이 퍼져나가는 냄새 그 자체가 여전히 국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열리는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에 소개된 전수천 작가의 1995년작 ‘Clay doll from T'ou Amongst Wandering Planets: Spirit of the Korean People’. 1995년 첫 한국관 개관 당시 전시된 작품이다. [베니스=이정아 기자]

한편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기념해 베니스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는 ‘한국미술 30년’을 대표하는 특별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Every Island is a Mountain)’가 진행된다. 전시명은 섬과 섬이 산맥처럼 연결되듯 고립된 개인의 삶과 예술이 역사와 사회적 맥락에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전시 작품은 한국관 전시에 참여한 작가 36명(팀)의 작업 가운데, 1995년 첫 개관 당시 선보인 작품부터 최근 제작된 신작을 포함한 총 82점이 소개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아르코미술관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열린다.

한국관은 첫 회에 전수천을 시작으로 강익중(1997년), 이불(1999년)까지 3회 연속 특별상을 받았다. 백남준이 독일관 대표로 참여했던 1993년 당시 독일관은 최고 작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관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자르디니 공원 내 문을 연 ‘마지막 국가관’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열리는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열리는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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