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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구석 예술가’의 무한여행…그가 만난 상상 속 마티스 그림은 [요즘 전시]
리너스 반 데 벨데, 라 루타 내추럴, 2020~2021. [아트선재센터]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그는 작업실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아 여행한다. 오로지 터무니없는 공상만이 도구다. 책과 영화, 뉴스와 잡지, 미술사 도록, 작가와 위인을 다룬 서적은 상상을 위한 완벽한 재료가 된다. 여행 중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영감이 찾아오면 그는, 붓을 든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아요. 공상은 강력한 도구죠. 우리가 현실을 성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이 섬세하게 조각된 ‘허구적 자서전’이 되는 이유다.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 [아트선재센터]

현실과 가상의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안내하는 그는 벨기에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41). 대형 목탄화와 오일 파스텔화, 색연필화를 비롯해 영상, 조각, 설치 작업까지. 장르를 망라한 반 데 벨데의 작업 50여 점이 아트선재센터와 스페이스 이수를 찾았다. 각각의 전시 공간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수없이 많은 작가의 ‘평행우주’를 떠올리도록 대칭적으로 구성됐다.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는 작가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쓴 도플갱어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13분 34초짜리 영상 ‘라 루타 내추럴(La Ruta Natural)’이 상영된다. 작품명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제목이다. 영상 속 작가의 도플갱어는 매번 총에 맞지만 죽지 않는다. 그의 또 다른 세계 속 도플갱어가 무한히 재생돼 작가의 여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영상이 놓인 전시장 바로 윗층인 3층에는 17분 3초짜리 영상 ‘하루의 삶’이 상영된다. 작가의 공상이 허구적 현실로 긴장감 있게 재현된 작품이다. 작가의 얼굴을 닮은 마스크를 쓴 주인공은 아침에 일어나 회사원처럼 서류 가방을 들고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금고로 출근한다. 서류 가방 안에는 주인공이 모은 내밀한 영감의 원천이 담겨 있다. 그는 이것을 꼼꼼히 정리해 금고에 보관한다. 시작과 끝의 장면은 동일하다.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해와 달,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망고를 먹고 싶다, 2023. [아트선재센터]

전시장에는 자신의 집에서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이국적인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그림도 내걸렸다. 하늘, 바다, 호수, 들판…. 그러나 작가의 그림 속 자연은 작가가 직접 본 자연이 아니다. 앙리 마티스, 에밀 놀데, 피에트 몬드리안 등 태양 아래서 자연을 그린 20세기 초 외광파 작가가 된 듯한 상상만으로 작가가 작업실에서 그린 작품이다.

실제로 작가는 여러 색의 빛으로 가득한 자신의 추상화에 ‘나는 욕조에서 해와 달,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망고를 먹고 싶다’는 글귀도 적었다. 이 문장은 마티스가 그림 그리기에 가장 좋은 빛을 찾기 위해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떠났을 때 했던 말이다.

“외광파 회화에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내 현실과 가장 멀기 때문입니다. 상상의 풍경에 도달하거나 과거의 외광파 화가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것. 그 예술 운동을 이해하고 더 깊이 이해하려는 (저의) 꿈과 욕망입니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 성인 기준 입장료는 1만원. 5월 말부터는 전남도립미술관으로 순회한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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