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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택배 없는 날’? ‘학원 없는 날’도 나오려나

국내 연간 택배 물동량은 2021년 36억개를 넘어섰다. 국민 1인당 택배 이용 횟수로 환산하면 연 70.3회, 국내 경제활동인구 수 기준으로는 1인당 128.4회를 이용한 셈이다. 그만큼 택배업계는 치열하게 물류 혁신을 추진해왔다. 그 덕에 택배는 국민의 삶에 ‘모세혈관’ 같은 존재가 됐다.

택배기사도 급증, 현재 전국 5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국내 대형 택배사와 민주노총은 택배기사의 휴가 보장을 위해 2020년부터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했다. 주 5~6일 수백 개의 택배 상자를 배송해야 하는 택배기사는 고된 직업이다. 당연히 휴식은 필요하다.

문제는 ‘왜 택배 없는 날이 지정됐냐’는 것이다. 현장 기사가 말하는 휴가를 갈 수 없는 이유는 하루 20만~30만원의 용차비 때문이다. 이 관행은 택배사가 만든 근무 행태로 직결된다. 매주

월~토, 주간근무에 모든 기사가 투입되다 보니, 누가 쉬면 빈자리에 투입될 동료가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막대한 용차비를 지불하기 싫으니 다 같이 쉬자’는 취지로 택배 없는 날이 생겼다.

노조와 택배사들은 수년간 “쿠팡 등 온라인 유통사들도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하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등 ‘택배 후발주자’들은 동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실정이다. “용차 부담 없이 휴가를 갈 수 있고, ‘백업 기사’가 있는 대리점만 계약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후발주자의 경우 365일 로켓배송 시스템 속에서도 이른바 퀵플렉서(택배기사)는 다양한 요일에 근무하고 쉬는 날에는 백업하는 동료가 흑기사로 나선다. 구조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노조와 택배사들이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하라”고 외칠 때 상당수 퀵플렉서는 이미 휴가를 다녀온 상태다. 굳이 매년 8월 13~15일에 쉬지 않고, 본인 스케줄에 맞춰 휴가를 가는 것이다. 대부분 직장에서 목격하는 흔한 여름철 풍경이다.

택배 없는 날은 소비자의 ‘택배 이용 권리’를 제한한다는 점에서도 재고가 시급하다. 여성의 날·어버이날처럼 명분이 있는 날과 달리 택배 없는 날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소비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택배라는 수단이 사라지면 소비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3일간 물건을 팔지 못해 매출이 하락한 판매자, 당장 기저귀와 분유를 주문하지 못해 발을 동동 거릴 아이 엄마…. 과연 이런 사람도 택배 없는 날에 찬성하는지 의문이다. 택배 없는 날이 명문화되면 ‘학원 없는 날’, ‘버스 없는 날’도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국내 대형 택배사는 물류 호황과 더불어 택배비 인상 효과로 영업이익이 폭증했다. 그러나 어느 택배사도 “택배기사가 용차(외부 택배기사) 비용 없이도 휴가를 가도록 개선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근무구조에 대한 조사를 거쳐 필요하면 투자를 늘려야 한다. 근본적인 혁신과 개혁을 게을리하면서 구시대적인 기업 경영을 이어가는 것은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택배기사도 충분히 쉬면서 소비자도 택배를 마음껏 사용하는 진정한 ‘투트랙 혁신’이 택배사에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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