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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값 할인 범위 정한 ‘도서정가제’ 합헌…“문화적 다양성 보존 필요”
전자책 작가 A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
헌재, 평의 참여 재판관 8인 전원일치 합헌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한 유남석 소장과 헌법재판관들. [연합]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책의 가격 할인 범위를 정가 15% 이하로 제한하는 이른바 ‘도서정가제’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0일 전자책 작가 A씨가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22조 4항과 5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평의에 참여한 재판관 8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22조 4항은 간행물을 판매하는 사람은 이를 정가대로 판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 5항은 ‘4항에도 불구하고 간행물을 판매하는 사람은 독서 진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정가 15퍼센트 이내에서 가격할인과 경제상 이익을 자유롭게 조합해 판매할 수 있다. 이 경우 가격할인은 10퍼센트 이내로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A씨는 2020년 1월 ‘도서정가제’ 근거 규정으로 꼽히는 해당 조항들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A씨는 “도서정가제로 인해 도서가격을 정한 뒤에는 가격할인 등의 방법으로 즉시 마케팅 수요에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다”며 “전자책과 종이책의 독자이자 소비자이고, 예비 간행물 판매업자로서 기본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 결정했다.

헌재는 “A씨가 간행물 판매자와 소비자(독자)의 지위를 동시에 갖고 있지만, 이 사건에서는 해당 조항이 간행물 판매자인 청구인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지가 주된 쟁점”이라며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들이 ▷지나친 가격 경쟁으로 인한 간행물 유통질서 혼란을 방지해 저자와 출판사를 안정적으로 보호 육성하고 ▷다양한 서점 또는 플랫폼을 유지·장려해 소비자인 독자의 도서접근권을 확대하려는 것이어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소비자인 독자의 도서접근권을 확대하고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간행물을 제공해 출판산업과 독서문화가 선순환하는 출판문화산업 생태계를 보호·조성하려는 규정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이어 “해당 조항 시행 이후 종이책 매출이 감소하고 지역서점 매장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는 인터넷 발달과 같은 사회 경제적 환경 변화가 초래한 결과로 볼 여지가 있고, 해당 조항과 같은 독과점 방지 장치가 없었다면 이와 같은 현상이 더욱 가속화됐을 것이란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에서도 출판사 수와 신간 도서발행 종수가 증가했으므로 이러한 사정을 들어 수단의 적합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종이출판물 시장에서 자본력, 협상력 등 차이를 그대로 방임하면 지역서점과 중소형출판사 등이 현저히 위축되거나 도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가격 할인 등을 제한하는 입법적 판단은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신간도서나 대형서점에만 가격 할인 등에 관한 제한을 부과하는 것은 실효적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판단했다.

아울러 “전자출판물 시장에서도 소수 대형플랫폼이 경제력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해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할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단기적 측면 및 가격 책정의 측면에서는 직업의 자유가 축소되는 면이 있으나 장기적 측면 및 시장 전체의 측면으로는 직업의 자유를 보장·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제한의 정도가 크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조항들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청구인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과 관련해 헌재 관계자는 “이른바 도서정가제를 정한 출판법 규정이 간행물 판매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관해 판단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이어 “지식문화 상품인 간행물에 관한 소비자의 후생이 단순히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이득에만 한정되지는 않는 점 등에 비추어 해당 조항이 청구인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헌재는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1월 공개변론을 열기도 했다.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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