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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도 포기하고...아픈 어린이 지원하는 매일유업
선천성 대사이상환아 24년째 지원
전공정 중단 12가지 특수분유 생산
‘PKU 가족성장캠프’도 매년 후원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를 위한 특수분유는 생산량이 워낙 소량이라 매일유업 직원들이 포장단계에서 일일이 제품 라벨을 붙이고 있다.
7월 13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된 PKU가족성장캠프에 참가한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와 그 가족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매일유업 제공]

“먹으면, 안 돼.”

정선희(38) 씨가 12살 난 딸에게 밥 때마다 하는 말이다. 그의 딸은 고기, 생선, 빵, 쌀밥을 비롯한 ‘일반식’을 먹을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모유도 입에 대지 못했다. 음식물에 있는 단백질 속 특정 아미노산을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씨의 딸은 선천성 대사 이상 중 하나인 ‘페닐케톤뇨증(PKU)’, 그 명칭마저도 생소한 희귀 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필수 영양소인 단백질을 먹게 되면, 섭취한 만큼, 정신지체나 성장 장애로 이어진다. 심각하면 생명도 위험하다. 그래서 남들과 똑같이 먹을 수 없다. 평생 엄격하게 식이조절을 하며 살아야 한다. 국내 단 400여명이 이 질환을 앓고 있다.

이렇다보니 “이거 먹어도 돼요?”하는 듯한 딸의 간절한 눈빛에도, 정씨는 연신 고개를 젓는 게 습관이 됐다. 정씨는 “‘얘는 병 걸려서 이거 못 먹는대’, 유치원 밥상 앞에서 딸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이 딸 아이에게는 지울 수 없는 큰 상처가 됐다”며 “또래 친구 사이에서 위축되고 소극적으로 변하는 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그런 정씨와 딸이 1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 ‘PKU 가족성장캠프’ 행사다.

14일 충북 단양의 한 리조트. 전국 곳곳에 거주하는 PKU 환우와 그 가족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저단백 햇반을 비롯해 나물비빔밥, 미역국, 당호박감자로스티 등 PKU 환우을 위한 특별한 한 끼 식사가 준비됐다. 1박 2일간 진행되는 행사 내내 조식·중식·석식 등 총 4끼가 환우을 위한 맞춤형 저단백 식단으로 조리됐다.

“집 밖에서, 모두가 함께 둘러앉아,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행사에서만 오롯이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밥상’ 입니다.” 단백질이 0㎎인지, 매번 식품업체에 연락해 성분을 재차 확인하는 정씨도 이날만큼은 마음 편히 숟가락을 떴다. 이날 만난 한 환아의 어머니는 “같은 어려움을 겪는 아이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 행사를 통해 함께 의지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특별하다”고 했다. PKU 환아를 위한 식이요법부터 치료제 개발 진행상황, 부모를 위한 심리치료 교육 등이 이어 마련됐다.

올해 21회째를 맞는 이 행사를 1회 때부터 뒤에서 조용히 후원한 회사가 매일유업이다. 보건복지부·인구보건복지협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가 꾸준히 진행될 수 있도록 매일유업은 한 해도 거스르지 않고 나눔을 실천했다. 행사에서 만난 10대의 환아들은 “10년 넘게 얼굴을 봤다”며, 매일유업 관계자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받아서는 안 된다”는 고(故) 김복용 창업자의 철학이 이 모든 선행의 시작이었다. 선대 회장인 김 창업자는 1999년 한 대학병원에서 희귀병을 앓는 아이를 만난 뒤 이 가족을 위한 특수분유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후 매일유업은 24년째 선천성 대사 이상을 가진 아이들을 위한 12가지 특수분유를 만들고 있다. 특수분유 생산을 위해 1년에 두 차례 전 공정을 중단시키고, 24시간 동안 내부 세정 작업도 벌인다. 생산량이 워낙 적어 캔 포장 단계에서 일일이 라벨을 붙인다. 매일유업은 연령에 맞는 특수분유 연구·개발(R&D)도 이어갔다. 2017년 4세 이상의 환아를 위한 제품 2종을 추가로 출시했을 정도다.

특수분유를 만들지 않는다면 매일유업은 해마다 일반 분유를 4만캔 더 생산할 수 있다. 정씨는 “환아들은 평생 특수분유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특수분유가 없는 삶을 생각할 수가 없다”며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움과 격려의 손길을 내밀어 준 매일유업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환아에게 매일유업의 특수분유는 단순한 ‘밥’이 아니다. 목숨이 걸린 평생에 걸친 약이다. 이정호 순천향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환아에게 특수분유는 정말 중요한 치료제”라며 “매일유업이 이윤 때문에 (특수분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만 19세 미만의 환자는 인구보건복지협회를 통해 무료로 특수분유를 지원받고 있다. 협회는 매일유업의 특수분유를 수입 제품보다 5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고 있다. 매일유업은 2013년부터는 매년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들이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하트밀(Heart Meal)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단양=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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