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병원 갈 돈이 없어서” 낮엔 보험설계사, 밤엔 대리운전기사로 뛰는 50대 [소액생계비리포트]
上-50만원이 없는 사람들①
소액생계비대출을 받은 이강원(가명, 56, 서울 거주)씨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서민금융진흥원으로부터 받은 카카오톡을 보여주고 있다. 홍승희 기자

열심히 산다고 누구나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안락한 잠자리, 균형 잡힌 식사, 계절에 맞는 옷차림이 어려운 이들도 있다.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잘 짜여졌는가가 선진국의 요건이라면, 한국은 몇 점일까.

금융위원회는 3월 27일 소액생계비 대출을 출시했다. 신용점수를 따지지 않고 당일 최대 100만원을 대출해주는 이 상품은 한 달 만에 2만5000여명이 몰렸다. 이들의 평균 대출금액은 61만원. 병원비를 내려고, 전기세가 밀려서 등 적게는 몇만원 많게는 100만원이 없어서 빌리는 이가 이렇게나 많다.

헤럴드경제 특별취재팀은 소액생계비 대출을 받은 이들을 직접 만났다. ‘씁쓸한 흥행’을 가져온 정책을 만든 까닭도 듣고, 생계비를 빌리려온 이들이 어떤 이유로 찾아왔는지 상담사에게도 물었다. 돈이 없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각자 세상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생계가 어려워진 비극은 누구에게든 올 수 있다.

[특별취재팀=성연진·홍승희·서정은·김광우 기자] “내일 병원비가 꼭 필요한데, 정말 다행이에요” 이강원(가명, 56)씨는 지난달 5일 소액생계비 대출을 받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일 대출이 가능하다기에 예약을 잡으려 전화를 100통은 돌렸다고 했다. 바로 다음날 병원 검사비로 쓸 돈이 없던 이 씨는 절박했다. 간신히 전화가 닿아 서민금융진흥원을 찾은 그는 50만원으로 병원비를 내고 나면, 이제 가스·전기료가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외국인 아내와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창피하죠” 이 씨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입을 뗐다.

그가 처음부터 수십만원이 궁하던 것은 아니었다. 이 씨는 “사업을 하면서 집을 몇 채는 살 만큼 돈도 벌었는데, 사기로 날렸다”고 했다. 수입이 끊기자, 아내 명의 카드까지 열개를 돌려막으며 생활했다. 약관대출도 모두 끌어썼다. 그 끝은 파산이었다. 5년 전 일이다.

재기를 꿈꾸면서 보험설계사 공부를 했다. 시험에 합격해 대형 보험사에 들어갔지만, 작년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이 씨는 “부정맥이 심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험한데, 하필 그 시기 직장 내 계파 싸움에 압박이 심해져 직장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수입만 끊길 줄 알았는데, 4000만원의 빚도 한번에 떠안았다. ‘환수금’ 때문이다. 환수금은 보험 설계사가 재직중 설계한 보험이 계약 해지 됐을 때 보험사에 돌려줘야하는 수당을 의미한다. 겨우 모아놨던 돈으로 1000만원의 환수금을 지불했지만, 여전히 3000만원이 남았다. 요즘도 환수금 문제로 법원을 오간다.

소액생계비대출을 받은 이강원(가명, 56, 서울 거주)씨의 대출거래 약정서. 홍승희 기자

그렇다고 일을 관둔 것은 아니다. 낮에는 프리랜서 보험설계사로, 밤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일을 한다. 하지만 부정맥이 심해 무리하게 일을 할 순 없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보니 생활은 불안정하다.

특히 아직 어린 아이들이 걱정이다. 현재로선 의식주부터 위태롭다. 그는 현재 은평구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보증금은 지원을 받았지만 매월 19만원은 자가부담해야 한다. 이 씨는 “전기세도 밀리고 가스비도 밀렸다”며 “끊기기 직전에 돈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어린데 영양상태도 걱정했다. 그는 “먹는 것도 저렴한 것 위주로 ‘대충’ 먹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제대로 못 준 지도 오래됐다. 이 씨의 아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액의 돈을 벌고 있다.

그는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동네에 있는 아동센터에 보내고 있다”며 “하지만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교육비부터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생활이 너무 힘들고 신용이 약해 돈을 빌릴 수 없어 보험 해지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했다. 그 어려운 사람이 자신이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다. 이 씨는 “사람이 계속 어렵기만 하겠냐.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올 것”이라며 자리를 떠났다.

hss@heraldcorp.com
luck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