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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무덤이 된 전셋집

“성중에 있는 몇몇 집은(城中幾屋廬) 다 내가 머물러 살았던 집인데(盡我居停人) 때로는 몰아 내쫓음을 당하여(有時被驅逐) 동서로 자주 떠돌아 다니었네(東西漂轉頻).”( ‘점필재집’ 제16권 중)

조선시대의 문신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은 세입자의 설움을 시로 풀어냈다.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등 조선시대에도 지방에서 한양에 벼슬을 하러 온 이들은 재산을 모으기 전 대부분 셋방살이를 했다.

전세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임대제도다. 학계에선 조선시대부터 전세제도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공식 자료로는 1910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관습조사보고서’가 최초다. 이 보고서는 “전세란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가옥임대차방법이다. 차주가 일정한 금액(가옥 가격의 반액 내지 7·8할)을 소유자에게 기탁하면 별도의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반환 시 기탁금을 돌려받는다”고 밝히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3월 기준 전국의 주택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비율은 63.6%다. 하지만 이는 평균치일 뿐 이를 연립주택으로 좁히면 70.4%고, 아파트는 65.9%로 집계된다. 경북 포항시의 경우 아파트 전세가율이 86.2%에 달하는데 이는 집값의 14%만 있으면 집주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전히 세입자가 조선시대처럼 집값의 7~8할을 전세보증금으로 기탁하고 있다.

전세는 집값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우 상향하던 시절에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보탬이 됐다. 세입자로선 한꺼번에 목돈을 내는 대신 월세를 저축해 재산을 모았고, 계약기간에 거주권도 보장받았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무이자대출’ 삼아 추가 자본 없이 내 집 마련에 나설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처럼 경기가 하강할 때다. 집값이 떨어지면서 수년 전 계약한 임대차계약의 전세보증금보다 낮아지는 경우 집을 팔아도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반환을 보장받을 수 없다. 특히 보증금 외 자본을 금융권에서 대출받은 경우 금융기관이 선순위 채권자가 돼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전세가 사실상 ‘후진국형 사금융’이어서다. 금융기관이 아닌 세입자 개인이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집주인의 상환능력이나 담보물의 가치 등을 따지기 어렵다. 특히 아파트보다 시세파악이 어려운 빌라는 더 그렇다. 무자본으로 깡통주택 수백, 수천채를 사들였던 ‘빌라왕’의 교묘한 수법을 개인이 이겨내기란 불가능한 셈이다.

급기야 전세사기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전세사기로 나온 매물은 경매 절차를 중단하는 등 범정부적 피해자 추가 지원방안 마련을 논의하기로 했다. 전세제도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졌지만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를 보호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된 건 1981년이다. 전세의 역사만큼 뒷북 제도도 역사가 길다.

세입자의 무덤이 되고만 전셋집은 ‘과한 빚’에서 나왔다. 임대보증금(채권)을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채무자(집주인)가 수백, 수천건의 임대계약으로 탐욕을 채우는 동안 단 한 건의 법적 제재도 없었다. 이번 대책에는 전세사기를 끊어낼 방안이 담기길 바라본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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