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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주희의 현장에서] 이러다 ‘비건’ 상추 나오겠네

지난주 GS25에서 베지테리언 디저트 신제품을 출시했다며 몇몇 기자에게 제품을 보냈다. 마침 먹어볼 기회가 생겨서 냉장고에 뒀다가 지난 주말 아침 그 제품, 피낭시에를 꺼내 먹었다.

피낭시에를 한 입 베어물자 버터맛이 느껴져 곧바로 포장지를 뒤집어 영양성분을 살폈다. 난백(계란)·유함유가공품(우유)·설탕·가공버터가 떡 하니 써 있었다. 그제야 앞면 포장지를 보니 오른쪽 하단 손톱만 한 글씨의 ‘락토-오보’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내부 용기에 포장지가 눌려 ‘락토-오보’라는 표기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채식주의는 생선, 달걀, 유제품 등을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비건’부터 달걀을 허용하는 ‘오보’, 유제품까지 허용하는 ‘락토’, 가금류를 먹는 ‘폴로’, 어류를 먹는 ‘페스코’, 가급적 채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락토-오보는 유제품과 달걀을 허용하는 채식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베이커리류는 락토-오보 제품이다. 빵을 우유·계란·버터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채식음식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상추를 두고 ‘비건’ 상추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당장 ‘비건 피낭시에’를 검색해 봐도 레시피가 줄줄이 나온다. 비건 피낭시에 레시피가 없는 것도 아닌 마당에 평범한 피낭시에를 락토-오보’로 둔갑시키니 속 편하게 상품을 기획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비자도 안다. 이것은 채식을 이용한 마케팅이지, 진정 채식인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역시나 찾아보니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GS25는 지난해 출시한 널담의 베지테리언 마카롱 제품도 ‘락토-오보’로 홍보했다. 이에 일부 소비자는 “원래 마카롱은 락토-오보이고, 우유는 락토고 반숙란은 오보인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2020년에는 콩불고기와 표고버섯탕수육으로 구성된 ‘그린테이블도시락’과 브로콜리와 유부를 넣은 ‘그린유부김밥’을 출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일부 제품은 ‘베지테리언’ 표기를 해놓고 영양성분에 알류(달걀)·우유·새우·쇠고기가 함유돼 있다고 하기도 했다. 결국 도시락은 ‘베지테리언’ 표기를 떼고 재출시됐다.

한 번 홍역을 치른 만큼 상품기획 과정에서 더 심혈을 기울여야 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이다. 가치소비 트렌드는 따라잡아야 하지만 이에 대한 진심은 없었다고 소비자에게 읽히는 대목이다.

GS25뿐만이 아니다. 롯데리아도 달걀·우유·쇠고기유지가 들어간 햄버거를 ‘100% 식물성’으로 홍보하다 뭇매를 맞고, 동물성 원재료를 전혀 쓰지 않은 ‘리아미라클버거’를 재출시하기도 했다.

베지테리언상품을 기획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재료를 써야 하고 세부 성분까지 꼼꼼히 챙기려면 비용도 시간도 일반상품에 비해 배로 들여야 한다. 하지만 하나라도 삐끗하면 소비자는 채식마케팅으로 기만한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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