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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만원에 그저 눈물만” ‘좋은 미끼’ 긴급대출의 서글픈 흥행 [현장에서]

[헤럴드경제=서정은 기자] 불법사금융에 노출된 서민들에게 100만원까지 당일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이 흥행을 거뒀다. 상담 예약 첫날엔 신청자가 폭주, 서민금융진흥원 홈페이지와 콜센터가 마비됐다. 예상치 못한 인기에 금융당국은 추가 예산 확보 방안도 검토하는 중이다.

그간 정부와 금융당국은 취약차주들을 위한 각종 대책을 연일 내놓았었다. 대출 만기를 늘리거나 상환을 유예를 해준건 물론이고, 은행들의 ‘돈 잔치’를 비판하며 금리 인하를 유도해왔다. 그럼에도 서민들의 삶이 악화된다는 비판이 나오자, 직접 돈을 쏴주는 소액생계비대출을 추가로 내놓았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발표하며 “굉장히 실험적인 상품이라 얼마나 신청자가 나올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며 “어떻게 모든 제도에 모럴해저드가 없겠냐”며 오히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걱정하기도 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런 우려는 무색했다. 마음 편히 몸 눕힐 고시원비가 없어 찜질방을 전전하고, 부모님 병원비가 없어 ‘휴대폰 깡’으로 몰린 사람들이 상담창구로 몰렸다. 이들이 대출한 금액은 평균 65만1000원. 누군가에겐 백화점에서 옷 한 벌로 쓸 돈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끝자락에서 하루를 그저 숨쉬게 해줄 삶의 전부였던 셈이다. 이런 사람들이 우량 차주들을 상대하는 제도권 금융으로 드러났을리 만무하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정책이 도달해야할 목표로 ‘자활’을 말했다. 소액대출은 사실상 미끼일 뿐, 이들을 상담센터로 끌어내 제도가 있음에도 지원받지 못했던 다양한 프로그램을 안내하겠다는 구상이다. 그 일환으로 취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문 상담사를 통해 취업을 알선해주고, 성공수당 지원도 해주기로 했다. 100만원 이하 대출에 대한 이자, 원금조차 갚지 못할 사람들은 복지제도로 편입할 방침이다. 불법사금융으로 몰리는 서민들을 하나 둘씩 양지로 이끌어내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소액생계비(긴급생계비) 대출 상담 및 신청이 시작된 27일 오전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대출 상담 안내문이 놓여있는 모습. [연합]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대표격으로 잘 알려진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은 금융소외계층을 외면하는 기존 금융사들의 행태에 반발해 출발했다. 이들이 살인적인 금리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창업을 위한 자금지원부터 경영자문, 운영 등 다각도의 접근을 지원한 것이 기존 은행과 차별점이었다.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받기 때문에 기부와도 차이가 있다. 그라민은행을 만든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는 지난달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 때문이 아닌 시스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형태는 다르지만, 이번 제도가 추구하려는 바와 일맥상통한다.

당장 밥을 먹어야하고, 밀린 월세를 내야하는 100만원짜리 대출상품이 금융소외층을 얼마나 자립시킬지 우린 아직 모른다. 하지만 이번 제도를 통해 금융당국은 이들이 처한 현실의 민낯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또 사회 구성원들은 금융취약층을 새로운 삶의 경로로 안내해줘야 할 책임감을 안게 됐다. 정책 흥행을 그저 기뻐하거나, 안타까워하기보다 이들에게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약속할 수 있는 금융의 청사진을 어떻게 만들지 다같이 고민해볼 때가 왔다.

소액생계비(긴급생계비) 대출 상담 및 신청이 시작된 27일 오전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대출 상담 안내문이 놓여있는 모습. [연합]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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