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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금자 불안’ 초기진압 성공…‘블랙 먼데이’ 막았다 [SVB파장]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실리콘밸리은행 지점 앞에서 고객들이 예금을 찾기 위해 대기하는 가운데 데드라 돈(오른쪽 네 번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조사관이 예금자보호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EPA]

[헤럴드경제=김우영·원호연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처음 문을 연 글로벌 금융시장이 우려했던 공황 사태엔 빠지지 않았다. 금융당국과 은행들의 발 빠른 안정화 조치가 신용 리스크 확산 우려를 잠재운 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안전자산·기술주 동시 상승=13일(현지시간)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0.5% 이상 급락하며 4.01%대를 기록했다. 이는 1987년 ‘블랙먼데이’ 다음날인 10월 20일 이후 하루 최대 하락폭이다.

10년물 미 국채금리도 0.16%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미 국채와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 역시 2.6% 급등했다.

SVB 파산으로 안전자산 선호가 높아진 데에 따른 것이다. 헤지펀드 텔레메트리의 토머스 손턴 설립자는 블룸버그통신에 “투자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파동이 앞으로 계속될 것인가”라며 “시장엔 여전히 위험이 많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증시는 견고했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하루 내내 등락을 반복하다 0.15% 소폭 하락 마감했다. 추가 파산 우려에 은행주들이 일제히 급락했지만 시장 전체를 뒤흔들어 놓진 않았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0.45% 오히려 올랐다. 이번 SVB 파산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빠른 기준금리 인상 때문이란 지적이 커지면서 연준이 3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긴축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 데에 따른 것이다. 악재가 오히려 호재가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3월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은 인플레이션은 중기적 문제로 보고 지금 당장은 금융 안정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예금 전액 보증 카드 적중=이날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실리콘밸리은행 지점 앞에는 예금을 찾으려는 고객의 긴 줄이 이어졌다. 지난주 파산 소식 직후 발을 동동 구르며 예금의 행방에 대해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하루 만에 사그라든 것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나오지 않았던 ‘예금 전액 보증’이란 파격적인 결정 때문이다.

전사소프트웨어(ERP) 개발업체 오터의 설립자 샘 리앙은 워싱턴포스트(WP)에 “모든 예금자가 모든 예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연방정부 발표에 안심하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시애틀 기반의 스타트업 셸프엔진의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스테판 칼브 역시 CNN에 “기존에 25만달러(약 3억2650만원)까지만 보장하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대응으로는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없어 자칫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수 있었다”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부가 취한 긴급 조치에 대해 연설한 것을 듣고 상당히 안심했다”고 전했다.

또 은행들이 금리 인상으로 평가 손실을 입은 미 국채를 내다팔지 않아도 되게 미 국채 및 주택담보증권(MBS)을 담보로 1년 자금을 대출할 수 있도록 은행 유동성 지원기금(BTFP)을 도입했다. 재무부 환율 안정기금에서 250억달러(약 32조6500억원)를 보증하는 내용이다.

CNN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른 조치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은행에 대한 불안심리를 잠재우는 데에 주력했다. 그는 “지난 며칠 우리 행정부의 신속한 조치 덕분에 미국인들은 은행 시스템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며 “당신이 필요로 할 때 예금은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동성 위기 우려가 제기된 각 은행도 고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찰스슈왑 경영진은 월간 활동명세서에서 향후 12개월 동안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순 신규 자산을 통해 1000억달러의 현금 흐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퍼스트리퍼블릭은 연준과 JP모건체이스를 통해 700억원의 미사용 유동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SVB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마이크 마요 웰스파고 수석애널리스트는 “2008년엔 은행들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모든 것이 괜찮다고 안심했지만 지금은 모두의 우려에도 은행은 한 세대 전보다 더 탄탄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도드-프랭크 법안’ 등 금융개혁을 통해 안전망을 확보했다는 얘기다.

비우량 대출자를 상대로 한 주택담보대출을 유동화한 파생상품이 위기의 발단이 됐던 2008년과 달리 SVB는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에 집중 투자했다는 점도 큰 차이다.

다만 급격한 금리 인상이 계속해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는 아직도 높다. 옌스 하겐도프 킹스칼리지 재무학 교수는 “중앙은행과 상업은행, 연기금 등 많은 기관이 지금까지 재무제표에 보고된 것보다 훨씬 낮은 가치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한 손실은 막대할 것이고 문제의 규모가 우려할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각국은 SVB 사태의 불똥이 자국까지 튀지 않도록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영국계 은행인 HSBC는 영국 스타트업계가 예금을 찾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SVB의 영국 법인을 단돈 1파운드에 인수키로 했다. SVB의 중국 합작법인인 SPD실리콘밸리은행은 고객들에게 “은행이 SVB로부터 독립적이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인출 자제를 요청했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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