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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7%·넌 5%" 두달새 엇갈린 '금리운명'…7년 거래은행과 '헤어질 결심' [김성훈의 디토비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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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디토(Ditto·찬성)와 비토(Veto·반대)'로 갈등이 첨예한 먹고 사는 이슈를 탐구합니다.
A 씨가 살고 있는 서울의 장기전세주택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전세대출 금리가 4.8% 밖에 안 한다고? 난 두 달 전에 6.92% 받았는데!"

A 씨는 얼마 전 친구와 대화하다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두 달 새 금리가 30%나 떨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은행에 전화했습니다. "친구는 4.8%에 받았다는데 저도 낮출 수 있나요?"

"죄송합니다. 고객님은…"

전세대출 금리 7.82%·청약저축담보대출 금리도 5%…서민들 '비명'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은 민간분야에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으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특히 은행 산업 과점의 폐해가 큰 만큼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연합]

요즘 이자 정말 눈물 나죠? 온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느라 국가 경제가 휘청할 지경입니다. 이러다 경제가 무너지겠다는 우려까지 커지자 한국은행도 지난 23일 1년 반만에 기준금리 올리는 것을 멈췄습니다.

비판의 화살은 폭리를 취하고 있는 은행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5대 시중은행 기준 1인당 평균 연봉 1억원대, 매년 1조원대 성과급, 50대에 퇴직하면 최소 6억원의 퇴직금… 국가의 허가로 독과점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영업하면서 이래도 되는 거냐는 문제제기가 나옵니다.

오늘은 작년 12월 대출을 연장한 30대 A 씨의 사연을 소개할까 합니다. 공공임대는 무주택인 건 물론이고, 소득이나 자산이 상당히 낮아야지만 지원할 수 있죠.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라 국가의 배려를 받는 셈인데, 작년말 무려 8%에 육박하는 대출금리가 A 씨를 덮쳤습니다. A 씨가 지난 세 달 간 겪었던 일이 대출 제도 개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입니다.

A 씨는 2020년 12월에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임대주택인 장기전세주택에 당첨돼 입주했습니다. 직장 동료, 지인들 모두 '로또'라며 축하해줬습니다. 전세보증금은 3억2000만원으로 시세 대비 저렴한 편이었지만, 쌓아둔 재산이 2억원뿐이라 1억2000만원을 대출했습니다. 금리는 3%대로 부담할 만 했습니다.

그런데 계약기간 2년이 지나고 지난해 12월 전세계약 연장과 함께 대출도 연장하려고 보니 금리가 무려 7.82%로 두 배 넘게 뛴 겁니다.

A 씨가 대출을 연장한 지난해 12월은 은행 금리가 가장 높았던 시점입니다. 미국이 '자이언트 스텝'(지난해 6월부터 4번연속 기준금리를 0.75%p 인상)을 밟고 있었고, 레고랜드 사태의 여파로 채권시장 금리도 높았습니다. 하필 그 때 전세계약이 만료돼 금리 최고점에서 대출을 연장하게 된 것입니다. '로또'라던 공공임대주택이 일순간 지옥이 돼 버렸습니다.

다행히 금리 7.82%에서 신용카드 매달 30만원 이용, 급여 이체, 적립식예금 가입 등을 하면 우대금리를 0.9% 받아 6.92%까지 낮출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매달 70만원이나 되는 대출이자는 큰 부담이 됐습니다.

A 씨는 급한대로 예금, 적금 다 헐어서 3000만원을 마련했습니다. 청약통장은 차마 깰 수 없어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1000만원 받았습니다. 그마저도 금리가 5%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청약통장 금리는 2.1% 밖에 안되는데, 그걸 담보로 잡힌 대출 금리는 2.5배나 된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일단 전세대출 금리보다는 훨씬 싸니까 돌려막기를 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금리 공시는 엉터리, 설명의무는 대충…
A 씨의 전세대출 계약서. 붉은색 밑줄 친 부분에 금리 6.92%(우대금리를 안받으면 7.82%)라고 적혀 있다.

그렇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자금을 마련함)했는데도 8100만원이 모자랐습니다.

A 씨는 금리를 낮출 방법이 있는지 은행에 문의했습니다. 은행원은 방법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A 씨는 은행 홈페이지를 뒤졌습니다. 혹시 다른 대출 상품 중에 더 저렴한 게 있지 않을까 해서요. 홈페이지를 보니 자신이 이용하고 전세대출상품의 금리는 최고 7%라고 공시돼 있었습니다.

A 씨는 은행에 공시는 최고 7%라고 돼 있는데, 왜 자신의 금리는 7.82%나 되냐 물었습니다. 공시를 허위로 했거나, 금리가 잘못 산정된 거 아니냐는 거죠. 이에 은행원은 '개별 차주의 금리는 개인의 신용점수, 담보 가치 등을 근거로 내부산정 기준에 따라 산정되며, 구체적인 내부산정 기준은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실로 교과서적인 답변이지만, 사실상 답변을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틀린 답변에 가깝습니다. 전세대출의 경우 보증기관이 80~90% 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개인 신용도나 담보 가치에 따른 금리 차이가 크게 나지 않습니다.

설령 담보 가치를 따지더라도 A 씨의 담보는 공공임대주택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부도 위험이 없고 안정적인 담보가 있을까요?

A 씨 역시 7년 가까이 해당 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삼아 직장생활을 해온 고객입니다. 신용점수는 900점대 초중반이고 연체기록도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정부가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며 만든 제도들이 사실상 얼마나 무기력한 지 드러납니다. 정부는 소비자가 금리를 잘 알고 대출받을 수 있도록 금리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공시가 정확한 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A 씨처럼 공시 상 최고금리를 초과한 금리가 적용되고, 설명을 요구해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죠. 상품에 대한 설명의무 역시 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 규정하고 있지만, 얼마나 성실하게 설명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대출조건 변경 '안돼', 새로 계약 '안돼', 은행 옮기기 '안돼'
서울 시내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모습. [연합]

A 씨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알아봤습니다. 그 결과 '6개월 주기 변동금리'로 계약하면 금리가 0.3%포인트(p) 가량 저렴해진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A 씨는 '1년 주기 변동금리'로 계약이 돼 있었거든요. 또 높은 금리로 1년간 고정되는 것보다는 6개월 이후 금리가 낮아지기를 기대해보는 것이 낫다는 계산도 들었다고 합니다.

마침 희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은행이 '차주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며 전세대출의 금리를 최고 0.75%p 낮춰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은행은 기존 계약을 연장할 경우 '6개월 변동금리'에서 '1년 변동금리'로 조건을 변경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또 은행이 발표한 금리인하는 '6개월 변동금리'만 적용될 뿐 '1년 변동금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찰나의 희망은 더 큰 절망이 됐습니다.

A 씨는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것과 신규 계약이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존 계약을 연장하려면 보증기관의 보증도 새로 발급받아야 하고, 금리도 바뀌는데 신규 계약과 뭐가 다를까요? 은행은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기존 계약을 종료하고 신규 계약을 맺는 형식으로 처리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이 역시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가라는 거구나…' A 씨는 7년 주거래은행과 헤어질 결심을 했습니다. 다른 은행의 전세대출로 갈아타기로 한 거죠.

그러나 이 또한 되지 않았습니다. 은행들은 기존 전세계약을 연장하는 경우 대출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갈아탈 수 있다 해도 금리가 낮아질 거란 확신도 없었습니다. 은행들은 예의 그렇듯 '신용도나 소득, 담보가치에 따라 다르다'는 이유를 대며 금리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은행 홈페이지에 대략의 금리가 공시돼 있기는 했지만, 이 역시 A 씨의 주거래은행처럼 부정확하게 공시한 건 아닌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비자의 선택권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돈 없으면 나가던지, 높은 금리를 부담하고 대출받던지 양자택일하라는 말로 들렸다고 합니다.

결국 시한이 다 돼 A 씨는 어쩔 수 없이 8100만원의 대출을 연장했습니다.

두 달새 금리 30% 폭락… '넌 해당 안돼'

더욱 속쓰린 일은 그 뒤로 대출금리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A 씨는 2월 말에 전세계약 연장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자신보다 2%p 낮은 5%대 후반(우대금리 적용 시 4%대 후반)의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불과 두 달만에 대출금리가 거의 30%나 떨어진 것이죠.

금리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점차 하향 안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고 있고, 우리 정부도 차주의 부담을 줄여주자며 은행에 금리 인하를 독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달에는 주택금융공사가 100% 보증을 서주는 식으로 금리를 낮춘 새로운 전세대출 상품도 발표될 계획입니다.

문제는 A 씨의 경우 1년 동안 7%대의 고금리가 변함없이 적용된다는 거죠. 금리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11~12월 대출을 받은 사람은 대체로 A 씨와 비슷한 상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금리를 낮추라는 압박에 못이겨 은행들이 하나둘 금리 인하를 발표하고는 있지만, 이는 새로 대출받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지 기존 대출자는 대상이 아닙니다.

정부가 자주 홍보하는 '금리인하요구권'도 A 씨와 같은 경우는 대상이 아닙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차주의 소득이나 신용도가 개선됐을 때 은행에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것인데, A 씨는 그런 경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빠 찬스'로 겨우 탈출… "손님, 중도상환수수료는 내셔야죠"
서울 시내의 한 은행 대출창구에 금리인하요구권 안내 배너가 설치돼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3일부터 은행들이 고객의 금리인하 요구권 수용 등으로 평균금리가 얼마나 내렸는지 공시하는 은행업 감독 업무 시행 세칙 시행에 나섰다. [연합]

A 씨는 고민 끝에 며칠 전 빚을 모두 청산했다고 합니다. 은퇴한 부모님의 노후자금을 빌려 일단 대출을 모두 갚은 거죠. 대신 부모님에게는 용돈 드리는 셈 치고 연 5% 이자를 드리기로 했다고 합니다. 은행에 퍼주느니 부모님에게 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죠.

은행은 끝까지 A 씨를 호락호락 놔주지는 않았습니다. 중도상환수수료로 약 10만원을 떼갔거든요. 전세대출 중도상환수수료는 은행에 따라 매기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가계대출 증가를 막고 차주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죠. 그러나 A 씨는 이마저도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도상환수수료까지 내고 은행을 나와야 했습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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