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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빛어린이병원 100개로 늘린다고요? 일할 소아과 의사가 없어요"
정부, 소아 의료 체계 개선 대책 발표
소아과전문의 " ‘헛다리’ 짚고 있는 것"…실효성 의문 제기
임현택 소아과의사회장 "달빛병원, 지금도 소아과전문의 없다"
소아과 전문의 확보율 2022년 68.2%에서 2022년 27.5%로 급감
"이대목동병원 집단 사망사건이 소아과 인력난 여실히 드러내"
"동네 소아과 살 길 마련해야 모든 문제 해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꼴찌이자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는 16년간 약 280조원의 저출생 대응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생아 수는 20년 전의 반 토막인 25만명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사진은 2019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중증·응급 의료를 강화하고 야간·휴일에 발생할 수 있는 소아 진료 공백을 메우겠다고요? 지금 운영 중인 달빛어린이병원에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아닌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진료를 하고 있어요. 현재 34개인 달빛어린이병원을 100개로 늘리면 거기서 일할 전문의는 있나요?”

보건복지부가 22일 발표한 소아 의료 체계 개선 대책에 대해 다수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정부 대책이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사기’라는 격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복지부가 지난 22일 내놓은 개선 대책은 중증·응급 의료를 강화하고 야간·휴일에 발생할 수 있는 소아 진료 공백을 메우는 게 주요 내용이다.

대책을 보면 서울·인천·대구·경기·충남·경남에만 총 8곳 있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미설치 지역에 2024년까지 4곳 늘린다. 현재 34개인 달빛어린이병원을 100개까지 늘리는 내용도 담겼다. 하반기부터는 소아 환자 부모가 언제든 전화 상담을 할 수 있는 ‘24시간 소아 전문 상담센터’를 시범 운영한다. 암이나 희소·난치 질환을 앓는 중증 소아 환자를 위해 현재 10곳인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를 4곳 더 늘리고 소아암 지방 거점 병원을 5곳 지정한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연합]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정부 대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응급의료센터나 달빛어린이병원을 늘린다고 해도 이 병원에서 일을 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정부 대책의 문제점은 ‘디테일’에 있다”면서 “비유 하자면, 기존 34대였던 PC 보급대수를 100대로 늘려도 그 안에 윈도우 시스템이 깔려있지 않을 경우 PC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는 거짓이 아니다. 실제 다음 달 개원을 앞둔 대전세종충남 공공어린이·넥슨후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아직 의료진을 구하지 못했다. 앞서 대전시는 의료진 모집을 위한 3차 공고까지 냈다. 하지만 지원자는 2차 공고 때 지원한 재활의학과 1명뿐이다. 대전 뿐만이 아니다. 천안의료원도 4년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공석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구하기가 이처럼 어려운 것은 전공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서다. 지난 2020년 68.2%이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확보율은 2022년 27.5%로 급감했다. 국내 소아청소년과 의사 1명당 소아 중환자 수는 6.5명으로 일본(1.7명)의 4배에 달한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전년보다 0.03명 줄어드는 환경 탓도 크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합계출산율 꼴찌를 기록 중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전문의 수가 줄면서 갈수록 힘들어지는 업무 환경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전문의는 “소아청소년과를 택하는 일반의가 이렇게 급감한 것은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이 계기가 됐다고 본다”고 본다. 이 사건은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심정지를 일으키고 80여 분 만에 전원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는 1, 2년차 전공의들의 중도 사직과 2월초 전문의 시험이 끝난 4년차 전공의의 이탈로 상당히 인력 부족이 심각했다. 당시 기소된 3년차 전공의는 교통사고로 골절을 당한 상태에도 깁스를 하고 출근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는 이들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필수의료를 강화하려면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소아과는 개업과 동시에 폐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7년 2229개였던 동네 소아청소년과는 2021년 2111개로 118개가 폐업했다. 한 전문의는 “정부 대책이 응급 환자 대처에 집중돼 있는데, 사실 동네 소아과 수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응급 환자 발생률도 감소한다”면서 “소아과는 환자 특성 상 인력이 많이 들어가는데도 수가는 차이가 없다보니 병원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동네 소아과를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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