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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인터뷰]필립 아기온 “연금개혁, 고령자 고용률 올릴 유일한 방법”
‘슘페터 성장론’ 정립 佛경제학자·마크롱 정부 전 경제자문 필립 아기온 인터뷰
대담: 윤석명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초고령 사회로 발생한 연금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고령자 고용률을 올리는 것이다.”

케인즈이론과 신자유주의이론을 뛰어넘는 ‘슘페터 성장론’을 정립한 경제학자로 유명한 필립 아기온(66·사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는 헤럴드가 창사 70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신년 기획에 맞춰 지난달 27일 헤럴드경제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연금개혁 추진 이유에 대해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고령화하면 생산연령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아기온 교수는 마크롱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역임했다.

프랑스 연금개혁의 핵심은 법적 정년을 현재 62세에서 64세로 올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를 현행보다 2년 뒤로 미루는 것이다. 프랑스의 생산연령인구를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아기온 교수는 “마크롱이 세제 개편과 실업보조금제도, 교육 시스템을 개혁해 프랑스 실업률을 줄인 업적은 인정해야 한다”면서 “프랑스의 연금개혁은 고용률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국민이 연금개혁 반대하는 이유
세계적 석학 필립 아기온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가 지난달 27일 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와 진행한 단독 화상 대담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의 최대 현안인 연금개혁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하기 위해 본지는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을 대담자로 초대했다. 화상 대담은 김용훈 헤럴드경제 기자(화면상단 왼쪽부터), 송승현 코리아헤럴드 기자, 유지수 코리아헤럴드 인턴기자가 참여해 1시간 10분 가량 이뤄졌다. [줌 화상 대담 화면 캡처]

아기온 교수는 프랑스 국민이 연금개혁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로 “프랑스에선 기업이 고령층을 고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면서 “(연금 수급시기가 2년 늘어나면) 고령층은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정부는 기업이 고령층을 계속 고용할 수 있도록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개혁을 통해 현재 OECD 평균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프랑스의 55~64세 고령층 고용률이 상승하면 이는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게 아기온 교수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은 연금개혁과 노동개혁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2021년에 태어난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3.6년이다. 고령화 속도는 4.4%로, OECD 평균 2.6%의 약 1.7배에 달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대한민국 생산연령인구는 3637만9000명이지만 2070년에는 올해 대비 52% 이상 적은 1736만8000명까지 쪼그라든다. 이 탓에 2060년엔 생산연령인구 1명이 부양해야 하는 고령인구가 1.2명까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프랑스는 연금 수급시기인 64세에 맞춰 정년도 64세로 연장하는 안을 추진 중이지만 한국은 법정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연령에 이미 3년의 차이가 있다. 이에 더해 현재 국회에선 연금 가입 연령을 현재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 경우 정년 이후 특별한 소득도 없이 보험료만 5년 더 내야 한다. 55~65세 고령층이 일을 한다는 것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 이에 우리 정부도 올해 말까지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키로 했다. 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등 55~64세 고용률을 끌어올릴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아기온 교수는 “일할 의지가 있는 고숙련 고령층의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 연금기금을 조달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연금개혁은 선택 아닌 필수"…연금기금 적자 줄이면 공공서비스 투자↑

아기온 교수는 연금 개혁이 거시경제적인 ‘순효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금기금 적자를 줄이면 학교나 병원 등 투자가 필요한 공공서비스 분야에 투자할 여유가 만들어지고, 이는 프랑스가 국가적인 개혁에 나섰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낼 수 있다”면서 “‘혁신 성장’에 대한 다른 투자를 이끌어 내는 신뢰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전임 정부가 연금 개혁을 꺼리는 국민 여론에 부담을 느끼고 개혁을 뒤로 미뤘다. 문제는 우리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기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발표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 결과를 보면, 5년 전, 2057년으로 예상됐던 기금 소진 시기는 2055년으로 2년 앞당겨졌다. 윤석열 정부가 서둘러 연금개혁에 착수한 이유다.

대담자로 나선 윤석명 위원이 활동하고 있는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에선 보험료율 인상과 의무가입기간 상향에 대해선 의견을 하나로 모았지만, 소득대체율을 두고선 의견이 분분하다.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노동계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말처럼 “개혁은 인기 없는 일”임은 분명하지만, 아기온 교수는 “연금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란 인식에 공감했다.

다음은 아기온 교수와 윤석명 위원간 대담 주요 내용이다.

"한국, 고숙련 고령자 더 오래 일하게 해야"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안의 주요 목표는 무엇인가.

▶마크롱이 연금개혁을 원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인구가 고령화하면서 생산연령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구조적 결함’ 때문이다. 다음은 거시 경제적인 이유다. 연금기금 적자를 줄이면 프랑스는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투자해서 얻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학교 시스템이나 병원, 투자가 필요한 혁신 분야에 국가가 강력한 개혁을 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과 이웃 국가에 보낼 수 있다. 이는 프랑스가 혁신 성장에 투자하고 있다는 신뢰로 이어진다. 정부가 교육, 건강 및 혁신에 대한 투자를 수행할 수 있다는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거시경제 측면에서도 좋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연금개혁 반대 2차 시위가 열린 프랑스 파리 이탈리 광장에 인파가 몰려있다. 프랑스 내무부는 250여개 지역에서 열린 이날 시위에 1차 시위보다 15만명 늘어난 127만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연금수령 시작 나이를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연합]

-프랑스는 다른 선진국보다 연금 수령 연령이 상당히 낮다. 현재 마크롱 연금개혁의 핵심은 연금 수급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가 심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프랑스 연금은 64세 이전엔 받을 수 없다. 독일은 매월 받는 연금 수급액을 줄인다면 일찍부터 수급이 가능하지만, 프랑스에선 64세가 되기 이전에 연금을 해지하면 수령액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더 반대가 격한 것이다. 다른 이유는 프랑스의 ‘상명하복’식 직장 문화 때문이다. 대부분 직장에서 최대한 빨리 은퇴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프랑스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낮은 고령자 고용률이다. 실제 프랑스의 55~64세 고용률은 55.9%로 일본(76.9%), 독일(71.8%), 네덜란드(71.4%)는 물론 우리나라(66.3%)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1.4%보다도 낮다. 프랑스에선 고령자를 고용하는 일이 별로 없다. 64세까지 연장하고 싶어도 대부분 55세에 해고를 당한다.

-그렇다면 마크롱의 연금개혁이 고용률을 올릴 것이라고 보는 것인가.

마크롱의 첫 임기 동안 가장 큰 업적은 프랑스의 실업률을 크게 줄인 것이다. 마크롱은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고용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세제를 개편하는 여러 정책을 썼다. 실직한 근로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재훈련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실업 보조금 제도를 개혁했고, 교육 시스템도 바꿨다. 연금개혁은 고용률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이다. 재직기간을 늘리면 고용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용률을 높이면 국내총생산(GDP)이 올라가기 때문에 거시경제적으로 매우 좋다. 그래서 프랑스의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광범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연금개혁을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제에서의 연금개혁이 내각제보다 어렵다고 한다. 프랑스의 경우 정치적 환경이 연금개혁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나.

▶지난해 6월 프랑스 총선에서 좌파 야당 동맹과 극우 정당이 강력한 지지를 얻으면서 집권 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범여권 중도연합 정당인 ‘앙상블’은 법안 단독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크롱 정당은 4위를 차지한 공화당과 동맹을 맺을지 아니면 사안별로 다른 정당과 힘을 모으는 식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선 선거 공약으로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마크롱의 문제는 극우에 반대하는 투표로 당선됐다는 점이다. 마크롱에 투표한 많은 이들이 그 정책에 공감하고 투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오해의 원천이다. 또 다른 문제는 마크롱의 바통을 이어받아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후계자가 없다는 점이다.

-프랑스 연금은 직업별로 분리돼 있다. 마크롱 연금개혁의 목표 중 하나는 이런 직역연금을 통합하는 것이다. 통합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과거 증기기관 기차운전사는 석탄을 다뤄야 해 수명이 매우 짧았다. 기대 수명이 매우 낮은 것을 알고 있는 기차 운전사와 같은 일부 직업은 은퇴 연령을 줄여야 하는 객관적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기차는 전기로 움직인다. 석탄을 다루거나 폐를 손상시킬 이유가 없다. 기관사 특례 제도를 만들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다른 직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기대 수명이 매우 낮았지만 자동화가 보편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술적 진보는 특정 직업을 수행해 위험과 질병에 노출되는 정도를 상당히 감소시켰다. 이것이 마크롱이 직역연금을 통합하려고 하는 이유다. 또 공무원도 민간과 다른 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더 많은 유연성을 갖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평생 직장을 가졌지만, 이젠 이직과 전직이 많아졌다. 다양한 체제가 있으면 노동시장에서 경직성이 생기지만 단일 체제를 만든다면 노동시장이 보다 유연화될 것이다. 공정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직역연금은 통합하는 것이 맞다.

-한국 고용주와 근로자들은 이미 보험료율이 8.33%에 달하는 퇴직연금을 부담하고 있다.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반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현재 42.5%인데 보험료는 9%에 불과하다. 하지만 퇴직연금 부담이 있다보니 한국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에 대해 거부감이 심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있나.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리고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에 따른 저항을 줄이는 유일한 해결방법은 고령자들의 근무기간을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프랑스 연금개혁의 이슈인) 64세 최저연령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고숙련 고령자는 더 오래, 더 많이 일하게 해야 한다. 그들은 일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 한국 기업의 임금체계는 호봉제가 대다수다. 근로자의 생산성이 떨어져도 임금은 생산성과 비례하지 않는다. 더 오래 살수록 더 오래 일해야 하는데, 임금체계의 연공성이 고령자 고용률을 떨어뜨리는 주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일찍 일을 시작하고 기대 수명이 더 짧은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선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연동하고, 연금도 이에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령층 퇴직자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 미래는 더 불확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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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아기온은 누구

프랑스 경제학자 필립 아기온 교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역임, 각종 개혁 정책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해마다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그는 경제발전 단계 등 개별 국가의 특수성을 감안해 성장 정책을 차별화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인 피터 호이트와 함께 1998년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이란 논문을 출판해 ‘슘페터적 성장 이론(Schumpeterian growth theory)’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생적 성장이론이란 경제 내에서 내생적으로 발생하는 기술진보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성장이 이뤄지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유럽 대표 경제학자로 통하는 아기온 교수는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프랑스 최고 국립 교육기관 중 하나로 꼽히는 콜레주 드 프랑스, INSEAD, 런던 경제대학원 교수다. 파리경제대학에서도 교편을 잡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창조적 파괴의 힘(Le pouvoir de la destruction creatrice)’이 있다.

김용훈 기자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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