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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를 니가 낳냐?" 있어도 못 쓰는 '배우자출산휴가'
배우자출산휴가제 '유명무실'
정부조차 정확한 사용 현황 몰라
정부 지원금 대상기업 휴가사용인원은 감소세
英 고지만으로 2주 유급휴가, 佛은 28일간 쓸 수 있어
국회에서도 '청구→통지' 내용담은 개정안 발의

사진은 기사와 무관. [123RF]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 지난해 서울시 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받은 A씨는 해당 사업장에서 2년 동안 계속 근무한 30대 남성이다. A씨는 배우자의 출산예정일을 개시일로 해 휴가 사용 30일 전 배우자출산휴가 10일을 신청했지만, 사업주는 배우자출산휴가를 사용한 선례가 없다며 거부했다. 근로자가 지속적으로 요청하자 사업주는 10일의 휴가일수 중 단 2일만 사용하라고 했다. A씨는 센터의 도움을 받아 10일간의 배우자출산휴가를 승인받았지만, 이미 상담 신청 후 3주의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A씨처럼 ‘배우자출산휴가제도’가 있어도 쓰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이를 활성화하려면 근로자가 사업주에 청구토록 돼 있는 현행 법을 고쳐 고지 만으로도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산율 만년 꼴찌인 우리나라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배우자출산휴가제도를 실제로 쓸 수 있도록 서둘러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배우자출산휴가제도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제 18조의2에 규정돼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배우자의 출산을 이유로 휴가를 청구하는 경우 10일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 근로자는 배우자가 출산한 날부터 90일이 지나면 청구할 수 없고, 1회에 한정해 나눠 사용할 수 있다. 설령 근로자가 10일 미만으로 청구해도 사용자는 10일을 부여해야 하며, 10일을 미부여할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배우자출산휴가 사용 현황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다만 배우자출산휴가 우선지원 대상기업에 속한 근로자에게 정부가 5일분의 급여를 지원하기 때문에 출산휴가를 부여받은 피보험자 중 우선지원대상기업 소속 근로자에 대한 지원 현황 정도만 파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출 자료에 따르면 이렇게 정부가 급여를 지원하는 기업의 근로자들도 배우자출산휴가를 잘 쓰지 못한다. 실제 이들 기업의 연도별 배우자출산휴가 사용인원을 보면 2019년 1059명(지급액 3억9700만원), 2020년 1만8720명(70억5000만원), 2021년 1만8270명(69억400만원), 2022년 1만6168명(61억4600만원) 등으로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현실은 고용부가 앞서 발표한 ‘2020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결과에도 잘 드러난다. 실제 배우자출산휴가를 전혀 활용할 수 없다고 답한 기업은 30.0%에 달한다. ‘필요한 사람은 모두 자유롭게 활용 가능’하다는 답변은 45.8%, ‘활용 가능하나 직장 분위기, 대체인력 확보 어려움 등으로 인해 충분히 사용하지 못함’이란 답변은 24.2%에 이른다. 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 때문’(64%),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 때문’(36%)가 높았다.

그러나 남성의 배우자출산휴가 사용은 파급 효과는 단순히 사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부성휴가를 사용한 남성의 90%가 휴가 사용이 배우자와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맞벌이 부부는 부성휴가 사용이 배우자의 직장 안정성을 높이고, 전체 가족수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산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고용시장에서의 여성지위를 상승시켜 종국적으로 가계수입을 증가시킨다는 것이 논증됐다.

[국회입법조사처 제공]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등이 배우자출산휴가를 우리와 달리 ‘청구’가 아닌 ‘고지’로 운영하는 것도 그래서다. 1999년 배우자출산휴가를 도입한 영국은 무급으로 운영하다 2003년 2주의 유급휴가로 전환했다. 출산예정일 15주 이전 사업주에게 휴가 사용일과 사용기간을 고지하는 것으로 휴가가 개시될 수 있다. 프랑스는 2021년 7월부턴 기존 14일이던 휴가일수를 28일로 연장했고, 이 중 7일은 의무사용일로 만들었다. 아일랜드도 최소 4주 전에 서면으로 휴가 사용 일정을 통지하면 2주를 배우자출산휴가로 쓸 수 있다. 특히 생물학적 부(父) 뿐 아니라 동거인이나 단독으로 아동을 입양한 아버지라도 쓸 수 있도록 해뒀다.

우리도 이들 국가처럼 배우자출산휴가를 ‘청구’가 아닌 ‘고지 혹은 통지’만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A씨 사례처럼 사업주가 합리적 사유 없이 승인하지 않거나 임의로 휴가 사용일을 단축하는 등 사용을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제기되면서 우리 정치권에서도 실제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지난 달 27일 배우자출산휴가 ‘청구요건’을 ‘통지요건’으로 변경토록하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또 배우자의 범위도 ‘사실혼 관계에 있는 자’로 확대하도록 했다.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출생아 수는 23만1863명으로 1년 전보다 4.7%(1만1520명) 감소했다. 연말에 출생아 수가 더 감소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지난해 연간 출생아 수는 사상 처음으로 25만명 아래로 내려갈 전망이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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