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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신년사 유감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도 금융권 신년사가 새해 첫 업무 시작과 함께 나왔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을 반영한 때문인지 유독 ‘불가능은 없다’나 ‘위기 속 기회’ 같은 메시지가 담겼다. 비금융으로의 플랫폼 확대를 위한 디지털 혁신과 고객 중심 경영도 빠지지 않았다. 표현이 다를 뿐 금융지주사들은 목표나 비전을 다룬 내용 면에서는 사실상 큰 차이점이 없을 정도로, 지향점이 비슷하다.

딱딱한 글이 읽히기 위해, 재미를 돋우기 위한 유명인의 이야기나 과거 사례도 소개됐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우리에겐 구글, 애플,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 등 우리를 방심하지 않게 할 멋진 경쟁자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긴장하게 한다”는 말을 소개하며, 빅블러의 시대에 금융플랫폼을 넘은 일상 플랫폼이 되자고 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자사의 광고모델인 손흥민 선수의 16강 진출 당시 활약을 들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면 하나금융그룹도 아시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독려했다. 이원덕 우리은행장은 1903년 계묘년에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 비행을 성공한 일화를 들며, 올해도 어느 때보다 어려운 때가 예상되지만 고객감동, 기술선도, 사업성장, 문화혁신, 위험통제로 ‘매직 2023’을 만들어가자고 했다. 그러나 사실 은행권 안팎에선 올 신년사에 지난해 사건 사고에 대한 반성이 얼마나 솔직히 담길지 관심이 있었다. 신년사의 형식상 지나간 한 해에 대한 리뷰도 담기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22년 금융지주들은 코로나19 시기 늘어난 대출로 사상 최대 이익을 실현하며 덩치를 키운 반면, 동시에 수백억 횡령과 수상쩍은 외환송금 등 수습해야할 굵직한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손가락질 받았다. 경영성과가 ‘이자장사’로 비하된 것도 이 때문이다. 급기야 금융당국이 허술한 내부통제에 칼을 대고, 지주사 CEO(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를 돌아보며 담긴 메시지는, 물가가 오르고 금리 인상이 이어지며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는 와중에도 잘 이겨낸 임직원에 대한 격려가 전부였다. 힘든 가운데 잘 이겨냈고, 잘 이겨낼 것이란 희망만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새해를 열자마자 KB국민은행에서 전해진 120억원 규모의 배임 사고는 더욱 뒷맛이 씁쓸하다. 규모도 크고 발생 기간도 2021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로 짧지 않다. 은행 측은 내부 직원의 제보 및 자체 조사로 배임이 드러났으며, 관련 직원에 대한 인사 조치 및 형사 고발에 나서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3일부터 현장 검사에 나서 정황을 들여다보고 있다. 신년사에 강조된 고객중심경영은 새해 벽두부터 처참히 부서진 셈이다. 돈을 다루는 만큼, 금융권에서의 사건 사고는 늘상 끊이지 않는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것으로 알려진 문화도 이를 통제하려는 노력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반성과 사과는 들어보지 못한 듯하다. 유명인의 말과 각종 일화를 찾아 쓴 신년사가 재미 없는 것은, 솔직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닐까. 계묘년은 시작됐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가 밝을 때에 나올 신년사는 올해와 다르길 기대해본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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