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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치 아닌 ‘가치’ 위해...조합원과 ‘같이’ 갑니다”
서민·중산층 든든한 금융 버팀목
‘8대 포용금융 프로젝트’ 공식화
고령화·저출산·고용위기 등 사회문제
“‘금융의 힘’으로 해결” 의지 담아
금융소외 없도록 점포도 되레 확대중
고령화·인구감소·구도심 공동화 등
농촌·소형신협 영업환경 극도 악화
높은 예금자보험요율·출자 금지 등
‘동일기능 동일규제’ 규제차 해소를
김윤식 신협중앙회장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 서예가로 살며 1997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국전(미협)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30대 후반에 사업가로 변신한 뒤 올해 신협중앙회장을 연임하며 조합원들 위한 포용금융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 임세준 기자

“몇 년전 늦은 가을 어르신 한 분이 지역 신협을 찾아오셨다. 겨울을 나려면 고구마를 구워서 팔아야 된다시며 리어카를 사고, 고구마 굽는 통도 만들어야 하는데, 3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 자산이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신협 조합원이셨다. 시중은행에서 대출 받기는 엄두도 못 내지만, 신협은 ‘예’하고 바로 처리해드렸다. 어르신이 언제 상환하실 지 기약이 없다. 그래도 조합원과 같이 가는 게 신협이다.”

김윤식 신협중앙회장은 경영의 중심에 수치가 아닌 ‘가치’를 두고 있다면서 그 단적인 예로 이같이 말했다. 김 회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가치’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역 서민을 위한 비영리 금융협동조합으로서의 본래 신협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에서 신협이 처음 만들어진 배경도 서민금융에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60년 대다수는 은행 이용이 어려웠고, 월 12%가 넘는 고리채가 팽배한 상황이었다. 김 회장은 “시중은행의 높은 대출 장벽을 넘지 못한 서민들이 살인적인 고리채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서민과 중산층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기 위해 신협이 시작됐다”며 “당시 신협의 존재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고 설명했다.

신협의 가치에 대한 김 회장의 고집(?)은 확고했다. 그는 “은행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지만, 신협은 서민의 경제적인 자립기반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 금융협동조합”이라며 “조합원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이익은 지역과 조합원에게 환원함으로써 조합과 조합원 중심의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은행은 보유한 주식 수에 따라 주주들이 의결권을 행사해 대주주의 의사가 중요하지만 신협은 조합원이 주인이자 이용자 겸 경영인이다. ‘1인 1표’ 원칙으로 운영돼 조합원 모두가 동등하게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독점적 지배권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신협의 기본 가치인 ‘협동’의 의미를 살리고 있다.

김 회장은 “신협은 ‘금융’과 ‘협동’이라는 두 바퀴로 움직이고 유지된다”며 “서민들의 삶을 든든히 지탱하는 사람 중심의 금융으로, ‘수치가 아닌 가치’를 표방하며 더불어 사는 따뜻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김 회장이 재임 중에 추진 중인 7대 포용금융 프로젝트의 면면을 보면 서민들을 위한 가치 경영의 의미가 도드라진다.

7대 프로젝트는 ▷고리사채에서 서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815해방 대출 ▷어르신들을 가까이에서 돌보는 어부바효예탁금 ▷저출산 해소를 위해 다자녀 가구의 주거안정을 위한 지원대출 ▷경영이 어려운 자영업자를 돕는 어부바플랜 ▷사회적약자를 보호하는 위치알리미 무료 보급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지역특화사업(전주한지) ▷경제 위기에 빠진 지역민을 돕는 위기지역 특별지원 사업 등이다.

김 회장은 “7대 프로젝트에는 고령화, 저출산, 고용위기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사회문제들을 금융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신협의 의지가 담겨 있다”며 “특히 신협은 7대 포용금융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살펴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11월에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전 세계 금융기관 최초로 축복장을 받기도 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김 회장은 특히 신협의 가치를 해외 사례를 들어 소개했다. 그는 “유대인들은 어떤 마을에 한 사람이 못 살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그 마을 전체를 비난한다. 왜 마을 전체가 한 사람을 못 먹여 살리냐고”라며 운을 뗀 뒤 “캐나다 신협을 소개하는데 동영상을 보면, 벤쿠버 바닷가에 역사가 200년쯤 된 조합원 100명의 신협이 아직도 건재하다. 이 신협은 당연히 실적이 마이너스지만, 정부 지원 외에도 캐나다 신협 중앙회의 지원을 받아 100명의 조합원을 지금까지 지원한다. 이게 금융협동조합인 신협의 정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중은행들이 점포를 줄이는 중에도 신협은 최근 3년 동안 점포수를 꾸준히 늘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서민금융, 지역 밀착형 금융인 신협은 수익 논리에 의해 무작정 점포를 줄일 수 없다. 오히려 시중은행의 철수로 인한 노인, 농·어민 등 금융소외계층의 금융 공백을 메꾸기 위해 점포 수를 늘렸다”며 “이는 신협의 목적과 목표가 이익 창출이 아닌, 조합원에게 금융 편익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협은 최근 다문화 가정에 대한 금융지원을 포함해 8대 포용금융 프로젝트를 공식화했다. 김 회장은 “국내 다문화가정은 약 36만 세대로 2000년대에 들어 새롭게 구성되는 가구의 10%를 넘게 차지하며 이미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됐다”며 “언어, 문화, 교육,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갈등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이들의 재산형성을 돕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고금리 적금상품과 저금리 대출상품을 출시하는 등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에는 동남아 10개국을 대표한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국내 다문화 가정의 생활환경 향상에 협력하고 양질의 금융서비스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포용금융 사업을 발전시켜 앞으로 9대, 10대 사업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역 사회와의 교감이 크다 보니 최근 금융권에서 불거지는 사건사고에 대한 김 회장의 고민도 작지 않다. 직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전에 시스템적으로 이를 차단하기 위해 검사 주기 단축, 단위신협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순회감독역 제도 도입, 내부통제 모니터링 강화 등으로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촘촘한 제도망을 구축했다.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눠 사고예방 순회 대면교육을 실시하고, 사고예방 제도개선 공모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금융사고 예방, 내부통제 강화’를 주제로 테마검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사고 방지를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고, 그 결과 신협은 최근 3년간 금융사고 건수와 금액 모두 줄었다”며 “앞으로도 금융사고에 대한 경각심과 내부통제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고취하고, 이를 통해 조합원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금융기관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2018년 중앙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 첫 직선제 회장 선거에서 경선 없이 단독후보로 추대돼 연임에 성공했다. 올해 신협은 조합원 670만명, 거래자 1600만명, 자산 140조원의 초우량 조합으로 성장했다. 2026년 2월까지 김 회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김 회장은 금융권 전반의 추세인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더해 신협이 지금까지 해 온 서민금융과 지역에 대한 기여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농촌·소형신협 경영지원 ▷신협에 대한 규제차이 해소 ▷신협중앙회의 MOU 해제 등을 사활을 걸고 추진할 구상이다.

그는 “농촌·소형신협은 고령화, 인구감소, 구도심 공동화 등으로 영업환경이 극도로 악화돼 있다”며 “시중은행은 수익이 나지 않는 지역에서 지점을 철수하면 되지만 신협은 지역과 함께하는 공동운명체다. 전체 900개 중 400개로, 농촌·소형신협은 신협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신협은 이미 2020년부터 농촌 지역과 농소형 조합을 위해 농소형조합지원단을 설치해 농소형조합 지원에 나서고 있다. 올해도 홍보물품 보급, 사무환경개선 지원, 점포 설립을 위한 특별지원대출 등으로 농소형조합의 사무환경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규제에 있어서는 타 협동조합과의 차별에 억울함이 크다. 김 회장은 “지금껏 수행해 온 역할에 비해 신협은 높은 예금자보험요율, 다른 법인에 대한 출자 금지, 비조합원 거래 제한 등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며 “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에 따라 규제차이를 해소하고, 서민금융의 성장·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를 합리화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숙제도 남아 있다. 김 회장은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붕괴된 IMF 외환위기 무렵, 여타 금융기관과 마찬가지로 신협중앙회도 결손금 과다로 정부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고 2600억원의 자금을 차입하면서 2006년 정부와 MOU를 체결했다”며 “이후 20여년의 피나는 자구노력 끝에 2017년 신용사업 결손금을 완전히 해소했고, BIS비율 10.5%의 우량 금융기관으로 탈바꿈했지만, 금융당국은 정부자금 조기상환과 MOU 해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저신용·저소득 서민층이 고리대출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지역경제를 뒷받침하는 신협의 기능이 MOU로 인해 가로막혀 있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과 조합원이 감당하고 있다. 당국이 결단해 줄 것을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태형 기자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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