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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날아간 휴가

2주 전 강원도에서 휴가를 즐기려던 계획이 복병을 만났다. 휴가를 떠나려던 차에 아내가 감기 몸살기가 있어 코로나 자가진단을 해보니 두 줄이 나왔다. ‘양성’이었다. 격리가 필요했다. 그냥 집에 머물면 가족도 위험할 것 같아 휴가를 위해 비워둔 강원도 평창의 전원주택에서 격리하기로 했다. 주택이 떨어져 있는 데다 아내가 2층에 머물고, 내가 1층에서 생활하며 식사 등을 준비하면 더 안전할 것 같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동해안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시원한 계곡에서 더위를 피하려던 휴가계획은 날아갔다. 평창으로 이동해 두 줄이 나온 자가진단 키트를 갖고 보건소를 찾아 유전자증폭검사(PCR)를 받으니 양성 확진 판정이 나왔다. 나도 확진자 동거인으로 PCR 검사를 받았으나,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다. 이전보다 복잡해진 검사와 처방 절차를 마치고 계획대로 격리생활에 들어갔다.

하지만 격리 준비를 하며 깜짝 놀랐다. 약국에 들러 처방약과 자가진단키트, 마스크, 소독약 등을 구입하는 데 들어간 몇만원은 차치하더라도, 먹거리를 준비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갔다. 바이러스와 싸우려면 잘 먹어야 한다니 고기와 몇 가지 가공식품, 야채, 과일 등을 담았는데 가격이 십수만원을 훌쩍 넘었다. 정육 코너에서는 가격표와 고기를 한참 대조하며 들었다 놨다는 반복해야 했다. 한 통에 3만원이 넘는 수박은 건너뛰었다. 일주일 격리기간 그런 쇼핑을 몇 차례 해야 했다.

살림을 맡아온 사람들은 몸으로 느꼈겠지만 체감물가가 보통이 아니었다. 수개월 전에만 해도 가족과 대형 마트에 들러 생활용품과 식료품을 산더미처럼 사도 20여만원 정도 들었던 것 같은데 하루 이틀 먹거리 가격이 이토록 올랐다는 것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제 기사를 다루며 이런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지표만 보고 ‘24년 만의 6%대 물가’ 운운했던 것은 아닌지 씁쓸했다. 휴가 대신 격리생활로 아내는 코로나를 극복했고 우리의 신뢰감도 쌓였지만 기자로서의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문득 얼마 전 친구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스카이’로 불리는 사다리차사업을 접고 자영업을 알아보던 그 친구는 “지금 서민들 진짜 힘들어. 장난 아니야. 기름값부터 자재비, 인건비까지 겁나게 올랐어. 건축업이든 자영업이든 다 마찬가지야. 그거? 대통령과 정부가 뭐 하는지 모를 것 같아? 국민 다 알아” 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민생보다 권력을 향한 정치공학에 여념이 없는 여권에 대한 강한 불만이 묻어났다.

여름휴가를 날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대통령도 비상시국을 고려해 남해안 휴가계획을 취소하고 서울 자택에 머물며 민심을 청취하기로 했다고 한다. 여기서 비상이 민생의 위기를 말하는지, 취임 100일도 안 돼 20%대로 떨어진 지지율을 말하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민생이다. 지금처럼 말로는 민생을 외치면서 대기업과 부동산부자에 대한 세금 경감 등에 속도를 낸다면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휴가 대신 민심 청취를 통해 경제난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서민을 위한 체감도 높은 대책을 구상한다면 날아간 휴가의 의미가 살아나지 않을까 한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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