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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기업과 근로자의 동반성장 열쇠는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당신의 성장이 우리의 목표입니다(Your growth is our goal).”

직무 중심의 임금 체계로 개편한 모 제약사를 지난주 방문했을 때 직원들의 다이어리 표지마다 쓰여 있던 글이다.

노사가 서로를 믿고, 회사는 ‘직원의 성장’을, 근로자들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근로자들은 새로운 임금 체계가 나이·연차·성별과 상관없이 성과와 역량으로 평가해 공정하다고 말했다. 경영진과 노조는 ‘완벽한 임금 체계’를 목표로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개선하며, 근로자를 배려한 것이 개편의 성공 요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근로자의 성장, 회사의 발전, 모두가 공감하는 공정성, 이 모든 것을 성공으로 이끈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노동의 가치와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 체계로의 개편이다. 즉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로 변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기업이 연공성 높은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연공급은 과거 인구·산업 구조에 합리적인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용 안정을 원하는 중장년층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청년층이 보상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원인이 되고 있다.

연공급 임금 체계에서 경기 둔화에 따른 저성장이 지속되면 기업은 중장년층의 고용 조정을 우선해서 검토하기 쉽다. 또 빈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거나 아웃소싱할 우려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임금 연공성이 고령 근로자의 고용 유지율을 낮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런 경향이 높다. MZ세대는 성과와 괴리된 미래의 보상보다는 나의 노력에 걸맞은 ‘지금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불만은 직장 내 세대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H사 노조가 정년 연장을 주장하자 MZ세대가 주축인 사무직 노조가 반대하며 임금 인상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가적으로 고령화, 일자리 창출력 저하, 노동시장 양극화에 직면한 상황에서 더는 변화를 늦출 수는 없다. 우리 사회와 기업이 과거 고도성장기의 옷을 입고서는 저성장기를 지나 성장 정체가 우려되는 현재를 헤쳐나가기 어렵다. 임금 체계 개편은 노동시장 개혁의 최우선 과제다.

임금 체계 개편에 성공한 기업들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경영자의 철학과 의지다. 변화의 목표를 ‘기업과 구성원의 동반 성장’에 두고 있다. 비용 절감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아, 개편 이후 오히려 임금 총액이 증가한 경우가 많다. 기업의 성장을 위해 근로자에 대한 ‘투자’를 늘린 것이다. 그리고 노사간 끊임없는 대화와 상호 신뢰다. 근로자들은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더라도, 임금 삭감 등을 우려하게 된다. 노사가 서로 믿지 못하고, 회사가 소통 없이 추진한다면 아무리 합리적인 방안도 성공할 수 없다. 근로자들의 참여와 협력을 위해서는 노동조합, 특히 노동조합 대표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변화를 ‘목표’가 아니라 ‘과정’으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개선해가는 것이다. 완벽한 평가·보상 체계는 없다. 임금 체계 개편은 협력적 노사관계를 만들고, 구성원의 능력 개발을 유도해 학습조직으로 혁신하며 성과 평가·보상 체계가 진화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다.

정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임금 체계를 개선해나가는 ‘과정’을 지원해나가고자 한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로 개편하기 위해 객관적인 임금정보를 제공하고 노사의 파트너십 구축부터 구체적인 제도 설계 컨설팅까지 지원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장의 애로 사항을 해소하고 변화를 확산시키는 정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가 확산되면 노동시장은 더욱 공정하고, 노사는 물론 청년과 중장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상생하며 더 오래, 더 활기차게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격차도 완화될 것이다. 우리 노사정이 함께 동반 성장의 열쇠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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