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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아의 현장에서] 물가상승은 불공정한 재난이다

“이거 참 상징적이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유독 마음에 남았던 건 기우(최우식 분)의 대사다. 삼수생인 그는 아직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지만 자신에게 오는 모든 우연을 기회로 받아들이는 가난한 청년이다. 그런 기우에게 고가의 관상용 수석이 전해지면서 그가 읊조리듯 내뱉은 ‘상징’. 기우에게 온 수석이 행운과 재물이 아닌, 끝내 살인흉기로 둔갑하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석 수집이 누군가에게는 고급 취미 중 하나겠지만 기우에게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2022년 7월의 상징은 ‘높은 인플레이션’일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인 요즘, ‘소비 분절’ 현상이 무대 위로 재소환됐다. 제조·유통기업들이 값비싼 ‘하이엔드(최고급)’상품과 초저가 ‘PB(자체브랜드)’제품을 동시에 내놓기 시작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을 각각 겨냥한 전략이다. 취약할 대로 취약해진 지금, 이제는 중간은 없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에르메스를 비롯해 샤넬, 디올 등 럭셔리 브랜드가 국내 물가인상률보다 최대 4배 높은 수준의 인상률로 제품가격을 1~3차례 올렸다. 그런데 잘 팔린다. 아니, 더 팔린다. 신세계백화점의 1~6월 명품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보다 28.1% 신장했다. 백화점들이 올 초 일찍이 럭셔리 부문을 맡는 MD1 조직확대 개편을 마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외환위기·금융위기보다 센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이 닥친 시기라지만 명품 브랜드 유치가 곧 수익개선이라는 셈법은 변함이 없는 셈이다.

반면 불황으로 ‘먹고사니즘’을 공격받는 사람들의 세상은 어떨까. 물가 고공 행진은 가난한 사람부터 공격한다. 부자보다 서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자영업자,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집주인보다 세입자, 예금주보다 대출자가 더 큰 타격을 입는다. 특히 생계비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에게 물가상승은 사회적 재난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하위 20% 가구는 가처분소득 월 84만원 중 35만원을 식비에 사용했다. 취업준비생은 1000원이라도 싼 편의점 도시락을 찾아다니고, 노인과 결손아동은 무료급식소로 향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마냥 손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말 돼지고기와 밀가루, 대두유 등 14개 수입품목에 대한 할당관세를 0%로 낮추는 대책을 내놨다. 문제는 관세 인하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유통 중인 수입 돼지고기는 대부분 미국·유럽·캐나다산인데 이미 미국·유럽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가·금리·환율이 모두 오르고,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총체적 난국이다.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금리인상도, 물가가 더 치솟아 취약계층부터 직격탄을 주는 금리인하도 무엇 하나 지금의 시기를 해결할 묘안이 아니라는 게 더 큰 악재다. 그렇다면 정부, 기업, 소비자 모두 이 난국을 ‘불공정한 재난’으로 정의하고 고통을 분담하는 방법밖엔 없지 않을까. 급한 대로 양극화를 막는 데 우선 집중해야 한다. “이거 참 상징적이네.” 소비분절 현상이 심화되는 지금 이 시기가 딱 그렇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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