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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건강보험 보장률을 다시 생각해보자

2020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5.3%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이를 성공적으로 보는 시각은 없다. 5년 전 3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70%로 끌어올리겠다는 정책목표에 비해 턱없이 낮아서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정책인 만큼 건강보험료율도 크게 상승했다. 2017년 6.12%였던 요율은 5년 만에 6.99%로, 사실상 7%가 됐다. 반면 정책도입 당시 62.7%였던 ‘건강보험 보장률’은 2.6%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특히 2020년은 코로나19로 국민이 병원 가기를 꺼렸던 해였다.

이런 결과를 놓고 정책 성패를 판단하기보다는 정책목표로서 ‘건강보험 보장률’의 적절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란 전체 진료비에서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중을 말한다. 그런데 이 지표는 국제 공통 기준으로 산출되는 것이 아니어서 객관적 비교가 어렵고, 적정 수준에 대한 판단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건강보험 보장률’ 자체가 시간이 흘러도 일관된 의미를 갖는 지표인지도 의문스럽다. 이 문제를 쉽게 생각해보기 위해 다른 복지 문제에 비유해보고자 한다. ‘아플 때 치료받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굶주리지 않는 것’일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국가가 국민의 필수 식비에 대해 보장하려 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국가가 필수적 식료품 구입비의 일부를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경제가 성장하면 일주일에 한 번쯤 간단한 외식은 필수적이지 않냐는 주장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외식비 일부도 보장하게 될 것이다. 경제가 더 부유해지면 해마다 한두 번의 기념일에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는 정도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외식비도 보장해야 하는가?

전체 식비 중 국가 보장 비중을 높이려면 외식비 보장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 보장은 ‘국민을 굶주리지 않게 한다’는 애초 목표와 멀어지고, 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은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 진료비의 성격은 식비에서 외식비 비중이 늘어나듯 변해왔을 것이다. 경제성장에 따라 필수적 의료보다는 선택적 의료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건강보험 보장률’의 분모인 진료비의 성격이 이렇게 변해가는데 정부 정책은 이 단순한 수치에 올인하는 느낌이다. 국민은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 수준이 세계적으로 높고, 국민건강보험 보장 체제가 훌륭하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런데 왜 객관적 판단이 어려운 수치에 얽매여 정책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되돌리기 어려운 막대한 재정부담을 초래했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건강보험은 정책 성과를 단기간에 명쾌한 숫자로 보여주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히려 ‘국민건강보험만 있으면 필수적 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공감대를 꾸준히 확산해가는 조용하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단순한 정책적 지표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보험이 필수 의료를 충분히 급여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전제하에 전체 진료비를 분모로 하는 ‘보장률’보다는 급여 대상 진료비를 분모로 하는 ‘급여율’을 활용하는 것이 더 적절한 지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국민 필수 의료 보장이라는 국민건강보험의 목적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태열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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