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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된 입사재킷 4시간 만에 새 옷으로”…리폼해봤습니다
必환경 ‘바른패션’ 체험기
코오롱FnC ‘래코드’ 브랜드 론칭
재고 수선·리폼 유니크한 옷 창조
10년째 옷장 구석 지키던 재킷
프릴 달린 크롭 스타일로 대변신
올 나간 니트→데님 덧댄 카디건
75일 만에 274벌 ‘착한 변신’
‘수리(수선)할 권리’ 재조명 계기
래코드박스 아뜰리에에서 재킷을 리폼하고 있는 차정순 리메이커. [헤럴드경제DB]

패턴을 그리고 원단을 자르는 넓은 탁자와 재봉틀 두 대, 그리고 스팀기가 놓여 있는 4평 남짓한 이곳에선 매일 옛 추억이 ‘리디자인(redesign)’된다. 해졌지만 소중한 추억이 담긴 옷, 어떻게 입을지 몰라 옷장 속에만 간직됐던 옷, 유행이 지나 선뜻 입기 어려웠던 옷. 그 사연 있는 옷들이 닿는 곳에 박스 아뜰리에가 있었다.

박스 아뜰리에는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있는 래코드의 지속 가능 패션 서비스 매장이다. 이곳에 상주하는 리메이커는 헌 옷의 디자인과 아이템을 변경해주는 수선·리폼(reform)을 진행한다. 지난 2일 이곳에서 만난 차정순 리메이커는 “고객이 안 입는 옷을 수선해 다시 입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옷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죄책감이 들지 않는 즐거운 디자인 작업”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6월 5일 ‘환경의 날’을 앞두고 ‘수리(수선)할 권리’가 화두다. 입던 옷을 수선하거나 리폼해 오래 입는, 환경을 지키는 일종의 ‘바른 패션’이다. 오랫동안 바른 패션은 예쁘지 않다는 고정관념이 강했지만 이것도 옛 이야기다. ‘촌스러운’ 디자인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이 시대에 바른 패션은 꿋꿋하게, 더욱 기발하게 진화했다.

바른 패션의 중심에 코오롱인더스트리FnC 부문이 무려 10년 전부터 전개해온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인 래코드가 있다. ‘친환경 패션’이 사회적 화두가 되지 않았던 2012년부터 “손해 볼 각오하고 론칭한 브랜드”라는 게 코오롱FnC의 설명이다.

래코드는 팔리지 않고 재고로 쌓인 코오롱FnC 옷들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더해 적게는 1~2개, 많게는 30~40개밖에 없는 유니크한 의류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회 유엔총회’ 행사에서 방탄소년단(BTS)이 래코드의 정장을 입고 나와 특히 재조명받았다.

지난 3월 래코드가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연 박스 아뜰리에도 이러한 서비스의 일환이다. 전문장인인 리케이커의 수선 서비스를 통해 지금 가지고 있는 옷을 더 오래 입자는 취지가 담겼다. 지난 75일간 이곳에서 수선되거나 리폼되면서 케케묵은 옷장 구석에서 나오게 된 옷만 벌써 274벌에 달한다. 세상에 단 한 벌밖에 존재하지 않는 옷들이다.

이날 기자도 10년 전 입사 첫날 입기 위해 구입했던 살구색 봄·초여름 재킷을 들고 박스 아뜰리에에 상주하는 차 리메이커를 찾았다. 가져간 재킷은 사회초년생일 때 네다섯 번 걸쳤지만 수년간 옷장에서 주인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던 옷이다.

차 리메이커는 재킷을 테이블 위에 펼쳐 두고 일대일 상담을 진행했다. 이후 직접 재킷을 다시 입어본 기자의 모습을 세심하게 살폈다. 허리, 팔 둘레 등을 확인한 뒤 옷감 위에 초크로 재단할 위치를 표시했다. 이윽고 시작된 해체와 재조립. 옷을 제작할 때는 패턴대로 하면 되지만 수선과 리폼은 이미 만들어진 옷의 축을 건드리는 행위다. 완전히 해체된 옷감을 보면서 새로운 디자인에 주목해 봉제를 하는 리폼 과정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차 리메이커는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해체하기 어렵다”며 “여기에 제한된 옷감으로 고객의 체형과 니즈를 만족시키며 리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부분이 정말 많다. 고객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옷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차 메이커는 손으로 모양을 잡으면서 정교하게 프릴을 만들었고, 이를 안감을 덧대 만든 칼라에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잇대어 박음질했다. 옷장에서만 잠자고 있던 재킷이 세상 밖으로 나와 10년 만에 다시 입을 수 있는 옷이 되기까지 단 4시간이면 충분했다.

실제로 이곳에선 목에 있는 올이 나가 입지 못했던 니트가 데님을 덧댄 카디건이 됐고, 어머니가 입던 후드티는 자녀 몸길이에 맞는 셔츠베스트로 변신했다. 작아서 입지 못하는 패딩조끼는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귀여운 가방으로 리폼됐으며, 버려질 위기에 처했던 두 장의 티셔츠가 서로 만나면서 유니크한 스타일의 티셔츠로 재탄생했다.

올해 모든 패션업계의 화두는 ‘필(必)환경’이다. ‘친환경’보다 절대적인 개념이다. 차 리메이커는 “수선·리폼한 옷을 받은 고객들이 고마운 마음에 커피나 샌드위치 등을 사주는 일이 잦다. 1~2주 간격으로 매장을 찾는 단골고객도 많다”며 “더는 입지 않지만 추억이 담긴 소중한 옷을 다시 입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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