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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공정과 평등, 상식과 표징

공정(公正)하고 평등(平等)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여 정의(正義)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공정, 평등, 정의 모두 좋은 말입니다. 이 말들의 공통점을 찾아내니 공평(公平)이라는 말도 떠오르네요.

말은 모두 좋은데 왠지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세상이 이루어질까 하는 걱정도 있고, 이런 세상이 진짜로 좋은 세상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있습니다. 세상 걱정의 시작은 아마도 이런 낱말들이 될 것입니다. 무슨 주의(主義)라고 하는 이념도 모두 이 어휘에 대한 오해 또는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평등이나 자유, 공정이나 상식, 정의와 개혁 등의 말은 한 이념을 대표하기도 하고 상징하기도 합니다. 홍보나 선전에서도 중요한 어휘입니다. 그래서 더 자주 사용하겠죠. 자신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목표나 지향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서 말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런 어휘는 단순히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말들이 아닙니다. 어휘에는 사고가 있고, 이념이 있고, 세상이 있습니다. 한 면으로만 봐서도 안 됩니다. 말은 그냥 말이 아닙니다.

저는 평등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좋으면서 불편합니다. 평등이라는 말은 모두 고르다는 의미일 겁니다. 여기에 하나 더 붙는 말이 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좋아 보이죠. 차별이라는 말의 이미지가 좋지 않으니 불평등이라는 말에서는 왠지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차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불평등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겁니다. 평등이 오히려 불평등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불평등이 필요한 겁니다. 노약자석이나 경로 우대,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불평등이 평등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평등은 너무나도 좋은 말이지만 평등이 오히려 불평등인 수많은 사람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등은 폭력이 됩니다.

공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평하고 올바른 것을 공정이라고 하지만 공평과 올바름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힘의 차이가 있는 사람에게 공평을 강조하면 올바르지 않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은 종종 공평의 현장에서 나타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혜택을 봐야 한다고 하지만 열심히 노력할 수 없는 사람도 배려해야 합니다. 심지어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배려는 필요한 겁니다. 공정을 말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거나 노력하지 않았으니 너는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올바른 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상식(常識)이라는 말은 좋은 말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 상식의 기본입니다. 상식이 있다는 말을 지식이 있다는 말로도 쓰지만 원래 의미는 누구나 갖는 분별력입니다. 차별은 상식이 아닙니다. 남녀 차별, 지역 차별, 인종 차별, 학력 차별, 장애인 차별 등 수많은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는 상식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상식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 상식이 사람이나 진영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건 사실 상식이 아니라 편견입니다. 편견을 상식이라고 우기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입니다.

공정과 평등 그리고 상식은 모두 인간의 마음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단어의 의미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눈으로 보면 누구나 그렇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호가 보여주는 표징(表徵)을 읽는 방법입니다. 때로는 공정이 위험하고, 평등이 위험하고, 상식이 위험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의미에 빠져서 사람을 뒷전으로 하면 의미를 잘못 해석하는 겁니다.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한마음의 도구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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