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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불법 위에 편법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동산 정책이 쏟아질 때의 일이다. 취재 차 세무 전문가의 분석과 전망을 듣고자 했다. 당시 세무사는 “나라고 제대로 알겠느냐”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준비하는 사람은 더 벌고, 그렇지 않으면 눈 뜨고 코 베입니다.” 전문가 조언으로 무장한 이들은 이미 규제 안 허점을 찾아 절세 방안을 대비 중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각종 증세·규제 정책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세무사의 협박(?), 혹은 유혹이었다.

편법과 불법. 둘 다 정상궤도를 벗어난 행태인데, 사실 진짜 패악은 불법이 아닌 편법에 있다. 불법은 ‘잘 알지 못하는 이’가 저지르지만, 편법은 ‘더 많이 아는 이’가 저지른다. 알면서 행하는 불법은 처벌까지도 ‘각오’한 행동이지만, 알면서 행하는 편법은 걸려도 괜찮다는 ‘자신감’의 산물이다. 불법은 합법을 정의해주지만, 편법은 합법을 무력화시킨다.

여기서 불법보다 큰 패악이 나온다. 불법을 저지른 이를 보면 욕이라도 쏟아낼 명분이 있다. 편법을 저지른 이를 보면, 오히려 합법의 삶을 반성하게 된다. 왜 무지했는가. 심지어 부럽기까지 하다. 법인 명의로 수억원의 고급 수입차를 사고, 임대료를 규제하니 임대료보다 높은 관리비를 받는다. 위장이혼에 각종 용도 변경 등도 부동산 편법의 스테디셀러다.

자녀 입시 교육의 각종 편법에 상속·증여 편법도 넘쳐난다. 넘쳐나는 편법의 홍수를 겪다 보면, 욕을 하다가도 다시금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갖가지 편법과 지식으로 규제를 무력화시키는 행태가 내심 부러운 탓이다. 민망함도 한순간일 뿐, 이내 민망함마저 잊게 된다. 최근 국회를 보면, 당당한 편법의 상징이 된 듯싶다. 상상치 못한 갖가지 묘수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한다. 현재로선 정권교체를 앞둔 거대여당이 그 주인공이지만,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과거 국회 선진화법 처리 과정에선 일부러 부결하는 절차도 밟았었다. 시기와 정도의 차이일 뿐, 위장 부결도 위장 탈당도 모두 국회의 창의적 편법의 산물들이다. 그리고 언제나 당당하다. 위장 탈당을 “용기”라 자평하고, 위장 부결은 “적법한 절차”라고 응수한다. 당당하니 오히려 당혹스럽다.

인사청문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도 각종 편법과 꼼수다. 이젠 더는 새로운 게 나올 수 있을까 싶지만, 또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번엔 자녀 편입 특혜 의혹, 아파트 편법 증여 의혹, 입사 특혜 의혹 등이다. 대부분 의혹은 결정적 한방이 없다. 대부분 불법이 아닌 편법인 탓이다. 불법은 무지의 산물이며, 대부분 고위 공직자 후보자들은 그렇게 무지할 리 없다. 준비된 편법이다.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마치 ‘꼰대스러운’ 말이 돼 버렸다. 편법이 이 사회에 끼친 악영향 때문이다. 부동산 규제를 피해 임대사업하고 용도 변경하는 행태가 부러움을 사는 사회. 법안 처리를 위해선 무엇이든 감수할 수 있다는 행태가 용인되는 사회. 그러니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부디 과정만큼은 공정한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불법은 결과로 판단하지만, 편법은 과정으로 판단한다. 과정이 공정해야 편법이 사라진다. 편법이 부끄러운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는 편법이 당당한 이들의 반성에서부터 출발한다. 대부분 국민은 (편법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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