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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아의 현장에서] 그런데 왜 ‘루이비통 과잠’인가

2000년대 거리를 휩쓸었던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 예일대 ‘과잠(학교 점퍼)’이 돌아왔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한 가지. 영어 알파벳 대문자로 새겨진 대학 로고 대신 ‘명품 브랜드’ 로고가 대문짝만 하게 붙었다. ‘Y2K(Year 2000)’ 패션이 명품과 함께 돌아왔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주 한 예능방송에 출연한 가수 박재범이 입고 나온 옷은 루이비통 로고 ‘LV’ 시그니처가 크게 새겨진 노란색 과잠이었다. 이번 시즌 루이비통 신상으로 클래식한 실루엣에 흑표범 모티프 패치까지 더해지면서 벌써 물량이 없어 못 팔 정도다. 현재 이 과잠은 리셀 플랫폼에서 150만~160만원의 웃돈이 붙은 9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레트로한 감성이 짙게 묻어난 셀린느 과잠은 패션피플에게 ‘과잠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아우터다. 익살스러운 패치가 더해진 다른 과잠과 달리 셀린느 로고만 정갈하게 새겨졌다. 패션은 변해도 클래식은 영원하다고 하지 않던가. 이 옷은 지난해 컬렉션인 데다 35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지만 여전히 찾는 이가 많다. 한 패션 커뮤니티에는 “셀린느 과잠 구해요”라는 글이 지난 두 달간 21건이나 게재됐다.

더 이야기하기 전에 과잠의 역사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시간은 15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잠의 정식 명칭은 ‘바시티 재킷(Varsity Jacket)’으로, 하버드대 야구팀의 두꺼운 니트 유니폼에서 시작됐다. 우리가 과잠을 흔히 야구점퍼로 알고 있는 이유다. 당시 미국 대학에서는 학업 성적과 스포츠 순위에 따라 패치를 수여했고 학생들은 이를 훈장처럼 재킷에 붙였다. 말 그대로 바시티 재킷은 학교나 소속 팀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옷이었다. 학생들은 운동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이 옷을 자랑스럽게 입었다. ‘너와 나는 다르다’ 또는 ‘나는 이렇게 잘났다’ 표현인 셈이다. 구분짓기의 시작이었다.

하버드의 ‘H’ 빅로고가 필기체로 새겨진 바시티 재킷을 입은 선수들이 ‘레터맨’으로 불릴 무렵 그렇게 바시티 재킷은 아이비리그룩의 ‘상징’이 됐다. 레터맨이 되고 싶고, H 로고가 새겨진 바시티 재킷을 갖고 싶은 욕망이 당시 시대적 가치였다.

학벌주의 상징이었던 이 옷은 수년전부터 한국에서도 소위 명문대 과잠으로 인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제는 재력을, 한편으로는 스타일을 나타내는 수단이 됐다. 하이엔드급 명품 바시티 재킷을 구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대안으로 살 수 있는 40만~60만원대 브랜드 목록이 나왔다. 소비자들이 바시티 재킷을 구입하니, 더 많은 브랜드가 바시티 재킷을 내놨고, 더 많은 바시티 재킷이 출시되니, 더 많은 사람들이 바시티 재킷을 입었다.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부터 신생 브랜드까지 올봄 신상 아우터 컬렉션에 바시티 재킷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패션은 돌고 돈다. 역사는 반복된다. 특정 스타일이 유행할 때마다 그 당시 시대상은 꼭 언급된다. 그래서 이 같은 바시티 재킷 인기에 되묻게 된다. 지금 왜, 바시티 재킷인가. “Y2K 패션이 돌아왔다”라고만 말하기에는 무언가 허전하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해본다. 지금 왜 ‘명품 로고’가 대문짝만 하게 새겨진 과잠이 유행인가.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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