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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내부통제기준, CEO만의 책임인가
법·시행령 근거 명확하지만
금감원에도 ‘준법감시’ 책임
행정력이 법령 실효성 지켜야
제재의 법정 안정성도 유지돼
경영공백·지배구조 불안 방지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재판 결과가 뜨거운 감자다. 관련된 두 재판이 상반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두 재판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눈여겨 볼 부분은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 부분이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지난해 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받았다. 둘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해 8월과 지난 14일 각각 1심 판결이 나왔다. 불완전판매를 내부통제기준 위반으로 해석해 최고경영자(CEO)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손・함 두 사람 주장의 핵심이다. 하지만 법원은 두 사람 모두 금융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차이는 손 회장은 위반이 경미해 중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했지만, 함 부회장은 위반이 상당해 당초 제재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점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24조1항은 금융회사에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하여야 할 기준 및 절차(이하 “내부통제기준”이라 한다)를 ‘마련’하도록 했다. 시행령에서는 최고경영자(CEO)를 위원장으로 하는 내부통제위원회를 두고,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준 및 절차는 일정 요건들을 충족하도록 했다. 동법 34조와 35조에서는 24조를 위반하면 그 정도에 따라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와 임직원에 대한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금융회사 임원이 될 수 없다. 금융지주 회장이 되거나 회장직을 연임하기 위해서는 중징계를 피해야 한다.

손 회장와 함 회장 판결의 가장 큰 차이는 내부통제기준의 ‘’실효성’이다. 손 회장 재판부는 시행령에 명시된 요건을 충족했다면 기준이 마련된 것으로 판단했다. 함 부회장 재판부는 실효성이 없다면 기준이 ‘사실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봤다. 일단 내부통제기준 마련이 CEO의 책임인 점은 2심에서도 바뀌기 어려워 보인다. 관건은 ‘실효성’으로 기준마련의 의무 이행여부를 판단할 지다. 손 회장은 1심 판결보다 더 엄격해지지 않는다면 중징계가 취소돼 내년 3월 연임 도전에 법적 문제가 없게 된다. 하지만 함 부회장은 2심에서 판결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달 말 회장에 선임되더라도 자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DLF 사태 이전에도 금융관련 여러 사고가 있었지만,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으로 CEO가 중징계를 받은 적은 없다. 그래서 따져볼 부분이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의 ‘실효성’이다. 금융회사를 감독・검사하는 금감원이 CEO의 내부통제의무를 과연 잘 살펴왔느냐다. CEO가 위원장인 두 회사 내부통제위원회에 대한 금감원의 감독・검사 이력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손・함 두 사람에 대한 제재 주체가 금융위원회가 아닌 금감원장이기 때문이다. 만약 금감원이 그 동안 이 부분을 소홀히 했다면 ‘사후약방문’이 돼 제재의 ‘실효성’이 의심받을 만하다. 금감원도 내부통제 문제를 제대로 챙기기 않았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이제서야 CEO에 치명적인 중징계를 내린다면 이에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손 회장 재판의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금융감독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고 있다. 이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의 범위를 최소화한 판결과 맥락이 닿는다.

DLF 사태의 피해를 생각하면 불완전판매 과정에서 은행 등 금융회사의 미비는 분명 지적받아 마땅하다. 최고경영자(CEO)도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재발방지에 노력하는 게 옳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책임을 묻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게 행정부 제재의 법적 안정성이다. 행정제재에 불복한 소송이 계속되면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 ‘아노미(anomy)’ 상태가 된다. 주주로서는 제재를 받았지만 소송을 진행 중인 이가 CEO의 자격이 있는 지를 판단하기 애매하다. 무자격자가 자리를 차지해서도 안되지만, 억울하게 자격을 박탈 당해도 안된다. 결국 지배구조의 문제다. 당장 손・함 두 사람의 재판 결과는 라임・옵티머스 등 다른 금융사건 관련자 제재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금융 규제가 다른 업종에 비해 강한 이유는 금융회사가 다수의 재산을 관리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행정력에 의한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검사는 권리이자 책임이다. 권리의 적법성을 인정받으려면 충분한 책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금융시스템에서 행정력이 의심 받으면 혼란이 불가피하다. 다수의 재산이 영향을 받는다. 새 정부 금융 정책에 꼭 반영되어야 할 부분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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