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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출 난민의 시대 ①]대환대출 막혀 취업도 포기?…부풀었던 집값 하락에 대출상환 날벼락
대출에 ‘집값 잡기’라는 대외명분이 끼어들면서 대출시장이 복잡한 난수표가 되고 있다. 누적된 복합 규제로 인해 ‘대출 난민’이라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은행 외벽에 붙은 대출 관련 안내문. [연합]

[헤럴드경제=서정은·박자연 기자] #최근 한 인터넷은행에 취업하게 된 A씨는 은행법에 따라 해당은행서 받은 전세대출 상환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은행법상 은행원은 자사에서 신용대출이나 전세대출 등을 2000만원 한도로만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은행권이 전세자금이 투자자금 등으로 변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잔금일 이전에만 전세대출을 해준다는 점이다. 타 은행으로 전세대출을 옮겨타려면 사실상 이사밖에 답이 없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사를 가서 신규 전세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한 타행으로 대환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 40대 후반 B씨는 생활안정자금 대출을 받아 생활하다가 목돈이 생겨, 오래된 신용대출을 먼저 갚고 생활안정자금 대출을 유지했다. 문제는 그 이후 주택을 매수하면서 갑자기 생활안정자금 대출의 상환 통보가 날라왔다는 점이다. B씨는 “갚을 능력이 있으면 대출을 받는 것이라고만 생각해 상품설명서 등을 꼼꼼히 읽지 않은 잘못도 있지만, ‘주택 매수=투기’로 단정짓고 상환을 요구할 지 몰랐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신용대출 먼저 갚는 게 아닌데 갑자기 어디서 목돈을 구할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갚을 능력만큼 빌리는’ 대출 시장의 질서에 ‘집값 잡기’ 등의 명목을 부여하면서 누적된 복잡한 규제가 오히려 국민 신용도를 해치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취업에 성공한 청년은 대환대출이 막히고 신용대출도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르고, 안정된 경제생활을 하던 중년은 빠르게 변하는 대출환경을 따라잡지 못해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리고 이 같은 대출 시장 혼란에 따른 풍선효과로 저신용·저소득자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악순환 마저 일어나고 있다.

대출에 ‘집값 잡기’라는 대외명분이 끼어들면서 대출시장이 복잡한 난수표가 되고 있다. 누적된 복합 규제로 인해 ‘대출 난민’이라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창구의 모습. [연합]

집값잡기용 누더기 대출규제로, 대환대출 막혀 취업 포기할 판

특히 정부가 부동산 정책 시 주택 실수요자를 발라내듯 대출 실수요자를 신용도와 소득에 따라 구분하면서, 시장 질서에 맞지않는 대출 시장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고신용·고소득자의 신용대출이 자산시장 투자에 쓰일 수 있다는 우려로, 중신용자를 위한 중금리 대출을 늘리고 고신용자를 위한 신용대출을 축소하면서 젊은 고신용자는 대출로 자금마련이 어렵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러 신용 점수 등급을 낮춰 대출 한도를 늘리고, 이에 밀린 저신용자들은 대출 총량 규제로 불법사금융으로 또 다시 떠밀리는 등 대출 시장 대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상반기 자영업자와 고용 취약 계층 등에게 대출 안내 문자 등 메신저 피싱을 이용한 방법으로 가로챈 피해액이 466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2.6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금융당국의 대출규제가 취지와 달리 제2금융권, 고금리 대부업체로 수요자를 모는 사태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에 ‘집값 잡기’라는 대외명분이 끼어들면서 대출시장이 복잡한 난수표가 되고 있다. 누적된 복합 규제로 인해 ‘대출 난민’이라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사무소에 붙은 상담 관련 안내문. [연합]

공급 우위 돌아선 부동산 시장, 대출상환 일어날까

문제는 앞으로다. 금리가 오르고 자산시장가격이 하락하는 경제상황 변화가 가져올 가계신용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 새 몸값을 높이며 가계 빚 규모를 키웠던 주택 시장은 자산가격 하락이 일어날 경우, 경제의 빨간불을 키울 주범으로 꼽힌다.

실제 정부의 광역교통 개발로 몸값을 높였던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가 최근 내리기 시작하면서, 지방과 수도권 부동산 시장부터 주택 시장이 소강상태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경기도 광명 아파트의 경우 이달들어 매매가격이 0.01% 내려오며 동두천에 이어 두번째 하락전환했다. 호가 또한 1~2개월 사이에 1억~2억원이 내려가는 등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세시장도 세입자 이동 수요가 급감하며 최근 공급우위로 돌아섰다.

이렇게 되면 만기가 돌아오는 주담대의 경우 차액상환이 벌어질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의 경우, 만기 일시상환 방식 대출을 받은 집이 담보 가격 이하로 집값이 떨어지게 되면 금융기관이 차액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시중은행의 경우 주택담보대출(LTV) 기준을 50~60%까지 적용한다. 때문에 시중은행의 경우 현재 집값이 절반가량 하락하더라도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보험사, 저축은행 등은 추가대출을 활용해 최대 95%까지 가능하게 한다. 집값이 조금만 떨어져도 원금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주요 은행권 관계자들은 “은행의 경우 집값이 소폭 하락해도 당장 대출회수에 나가는 케이스는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분할상환 유도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적정 LTV를 유지하려고 하려는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대출부담은 점점 커질 전망이다. 금리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고 정부 건전성 규제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준 금리인상으로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최고금리는 연 5%를 넘어섰다. 내년 1월 추가적인 금리인상까지 고려하면 대출 부담이 만만치않다.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는 4~5%로 올해(6.99%)보다 1%포인트 이상 낮아졌다. 또한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서 제외됐던 전세대출이 총량에 다시 포함돼 대출문턱이 높아진다.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조기 시행된다. 당장 1월부터 총가계대출이 2억원을 초과할 때, 7월부터는 1억원을 초과할 때 규제가 적용된다. 금융위원회는 전체 차주의 13.2%(금액기준 51.8%)가 DSR 2단계, 29.8%(금액기준 77.2%)가 3단계 규제를 적용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다른 은행관계자는 “보통 30년 등으로 주담대 만기를 넉넉하게 잡기 때문에 이미 이용자들은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만기가 다가왔거나, 대환을 원하는 경우 집값 하락분으로 대출한도가 계산되기 때문에 사실상 추가로 나올 대출이 없다”고 말했다.

lucky@heraldcorp.com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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