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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오징어 게임’과 대한민국 통상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0개국(G20) 등 국제회의 리셉션장이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장에서 외국 통상장관들과 마주 앉을 때 딱딱한 분위기를 풀기에 좋은 것은 단연 ‘오징어 게임’이다. 외국 각료들은 생소한 한국 전통놀이에 매료된 한편, 탄탄한 줄거리와 예기치 않은 반전, 연기력 등 모든 면에서 최고라는 반응을 보였다. 통상협상에 나가려면 필수라는 생각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오징어 게임’을 다 보았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면서 문득 오징어 게임과 대한민국 통상이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오징어 게임’은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와 창의적 아이디어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세계를 석권했다. 한국전쟁 이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0달러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동네 꼬마들이 모여 쉽게 하던 놀이가, 21세기 들어서 뉴욕 타임스스퀘어, 프랑스 파리, 사우디 리야드 등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세계인들이 즐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한민국 통상이 걸어온 길도 비슷하다. 60년대 초 아프리카보다 가난하던 국가에서 경제개발을 시작, 보호 위주의 정책에서 개방과 자유무역을 통한 성장모델로 과감히 전환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필자는 WTO 포럼이나 워싱턴, 제네바의 미래 통상 인재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마다 한국은 가난한 나라가 개방과 다자무역체제를 통해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산증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60여년간 우리의 GDP가 약 580배 증가하는 동안 무역규모는 약 1960배나 증가했다는 통계에 이들은 놀라움을 넘어 경외감을 표한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FTA 불모지였던 한국이 문재인 정부 들어 한미 FTA 개정과 세계 최대의 메가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을 비롯해 인니, 필리핀, 캄보디아 등 신남방 국가와 영국, 이스라엘 등과 FTA를 통해 이제는 전 세계 GDP의 85%에 달하는 57개국과 17건의 FTA를 체결한 FTA 강국이 됐다. ‘앞으로 위기에 처한 글로벌 통상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고 싶거든 대한민국을 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오징어 게임이 강남스타일, BTS, 기생충 등과 같이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아이디어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듯이 ‘대한한국 통상이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서 개도국들에 희망을 주는 세계적으로 귀중한 우리의 자산이자 소프트파워다. 이제 우리는 세계사에 유례없이 이뤄낸 통상과 다자주의를 통한 눈부신 경제성장이라는 대한민국 고유의 콘텐츠와 소프트파워를 가지고 WTO 개혁 등 다자체제 회복과 새로운 국제 통상질서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최근에 다자간 통상협상 현장에 가보면 확연히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공식 회의뿐 아니라 몇몇 주요국만 모이는 비공식 회의에도 으레 초청된다.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 우리의 이익을 반영할 수 없다 (If you are not at the table, you will be on the menu)는 말처럼, 막전막후 글로벌 규범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더 이상 rule-follower(규칙을 따르는 자)가 아닌 rule-setter(규칙을 제정하는 자)로서 협상에 참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글로벌 통상환경은 통상에 공급망, 산업, 기술, 외교, 안보와 지정학적 고려 등이 복합적으로 융합되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이 아니라 고래싸움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오히려 그 판을 뒤흔들 수 있는 국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통상은 이러한 담대한 비전과 의지를 갖추고 시대적 소명에 충실하게 그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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