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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수 없다’ 소금 맞던 20대 영업사원…‘위스키의 대부’가 되다 [피플&스토리-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
문전박대에도 긍정적사고로 견딘 40여년
영업사원으로 시작 임페리얼 총판권 인수
주위 모두가 고객… ‘고객 우선주의’ 신념
‘드링크인터내셔널’ 설립 대표이사 회장에
점유율 1위 패스포트·임페리얼 ‘미다스 손’
싱글 몰트·샴페인…신시장 개척 ‘무한도전’
코로나에 바뀐 음주문화…하이볼 시장 개척
한국 입맛 맞춘 와인·샴페인 글로벌 확장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은 한국 위스키 시장에선 ‘전설’로 불린다. 임페리얼, 윈저, 골든블루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술이 없을 정도다. 지금은 누구나 하는 ‘위조방지 캡’, 저도 위스키도 그의 손에서 출발했다. 그는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골든블랑’을 세계적인 샴페인으로 만들겠다는 꿈이다. ‘K-샴페인’이라는 또 다른 신화를 쓰고 싶다는 게 그의 목표다. 이상섭 기자

대담 : 한석희 소비자경제부장

패스포트, 윈저, 임페리얼, 발렌타인, 글랜피딕, 골든블루…

국내 주류업계에서 큰 획을 그었고,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위스키들의 공통점은 바로 모두가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의 손을 거친 제품이라는 것이다. 원액 비중이 25%에 불과한 유사 위스키가 판치던 지난 1983년, 백화양조 베리나인 영업사원으로 시작한 그는 40여년을 한결같이 거친(?) 위스키 업계에서 살아 남아 이제는 ‘한국 위스키 업계의 대부’로 자리매김 했다.

특히 지난 2019년 3월에는 임페리얼 독점 총판권을 페르노리카로부터 인수하면서 드링크인터내셔널을 설립,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주류업계에서 ‘월급쟁이’로 출발해 오너 경영까지 하게 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가 된 것. 하지만 여기서 도전을 멈출 김 회장이 아니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샴페인 면허를 받아 전 세계에 ‘K-샴페인’을 알릴 꿈에 부풀어 있다.

▶ ‘긍정적인 사고’가 40년 한 자리를 지킨 원동력=위스키 영업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특히 근로기준법 개정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도 야간 영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렇다고 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들이 주류회사 영업사원을 환대하는 것도 아니다. 영업 전에 업소를 찾아갔다간 손님 오시기 전에 깨끗히 청소해 놓은 바닥에 발자국 남긴다며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다.

김 회장은 “손님 들어오기 전에 영업사원이 업소에 가면 ‘재수 없다’며 소금 뿌리는 업주들이 당시에는 많았다”며 “서너군데에서 이런 식의 거절을 당하면 처음에는 황당하다가 나중에는 업소 공포증까지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트라우마를 견뎌내는 사람은 업계에서 살아남지만, 견디지 못하면 내근직으로 전환하거나 퇴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김 회장이 위스키 영업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없이 ‘긍정적인 사고(Positive Mind Set)’라고 말한다. 그는 “사실 나도 여러 번 거절당하면 기분이 안좋고 자존심도 상한다”면서도 “당시에는 ‘이런 게 내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다, 당연히 극복해야 할 일이다, 나도 나지만 상대방도 입장이 있을거다’고 되뇌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뭔가 안좋은 상황이 닥쳐도 ‘좋아지겠지, 지금보다 나아지겠지’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편”이라며 “실제로 뭐든 찾아보면 해결책은 있더라”고 말했다.

▶ ‘미다스 손’의 기저에는 ‘사람’…고객 우선 주의=김 회장의 손을 거쳐 시장 점유율 1위가 된 제품은 패스포트, 임페리얼 등이다. 윈저와 골든블루는 제품 개발을 주도했고, 글렌피딕을 통해 국내에 ‘싱글 몰트’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그가 손대는 제품마다 소위 ‘대박’을 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람의 인연을 중시하는 ‘고객 우선 주의’ 신념이 있어 가능했다.

김 회장에게 있어서 고객은 단순히 위스키를 마시는 고객 만이 아니다. 내부적으로는 회사 직원들, 외부적으로는 도매장과 손님들과의 접점인 업소 주인, 영업 전무, 웨이터, 여성 접객원 등도 모두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고객들이다. 김 회장이 드링크인터내셔널을 누구나 다니고 싶은 직장을 만들고 싶은 것도, 유흥업계에서 그가 등장하는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상당히 많은 것도 다 그의 ‘고객 우선 주의’ 신념의 일로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는 바로 여성 접대원 휴대폰 사건이다. 골든블루 대표이사였던 지난 2011년, 김 회장은 주요 매출 업장인 유흥업소에 들렀다가 로비에서 여성 접대원이 휴대폰을 떨어뜨린 것을 봤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고 짧은 치마를 입어서인지 선뜻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줍지 못하고 있자 그는 무의식 중에 휴대폰을 주워 양복에 쓱쓱 닦은 후 휴대폰을 건냈다. 주요 고객인 여성 접대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는 별 생각 없이 도와준 것이다.

하지만 당시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여성 접대원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주류회사 대표인 그가 그녀에게 선의를 베푸는 모습을 보고 모두 감동했다. 그는 “별일 아닌 에피소드가 온 동네 소문이 나서 당시 별다른 영업 활동을 안해도 그 지역에 있는 종사자분들이 우리 제품을 많이 팔아줬다”고 회상했다.

▶제품에 대해선 ‘양보’란 없다=김 회장의 제품에 대한 생각은 ‘열정’을 넘어서 ‘집념’에 가깝다. 제품에 차별화 포인트가 없거나 새로움을 줄 수 없다면 소비자들은 기존에 쓰던 제품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덕분에 시장에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거나 기존 제품의 마케팅에 드라이브를 걸 때 제품의 차별성을 살리고자 보다 깐깐하게 일을 진행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번에 선보인 샴페인 ‘골든블랑’ 출시 과정이다. 샴페인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면서 패키지부터 샴페인 레시피까지 김 회장이 관여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눈에 띄는 패키지를 위해 과감하게 고가의 샴페인인 아르망디의 병을 만드는 제조사를 섭외했고, 샴페인 레시피는 연예인 그룹, 컨슈머 그룹 등과 수차례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한국인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찾아냈다. 너무 까다롭게 하자 골든블랑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인 프랑스 샴페인 하우스 ‘볼레로’가 “못 하겠다”고 손사레를 칠 정도였다. 프랑스 샴페인 협회가 제품명에 ‘골든(Golden)’이라는 영어식 표현으로 꼬투리를 잡을 때 영어식 표현을 쓰는 경쟁사 제품을 들이대며 끈질기게 설득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처음 샴페인 출시를 기획했을 때 소위 ‘잘 생긴 쓰레기(얼굴은 잘 생겼는데 인성이 나쁜 남자를 일컫는 말)’는 되지 말자는 것”이라면서 “패키지도 고객들의 눈에 띄게 화려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맛도 굉장히 신경을 쓴 결과 한국인이 좋아하는 샴페인을 만들 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프랑스 현지에서도 블라인드 테이스트를 해보면 모엣샹동이나 돔페리뇽과 같은 고가 와인과 비교할 때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까다로운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추니 세계적으로도 통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옛 영광 되찾기 어려운 위스키…TPO 바뀌어 즐길 것=위스키의 대부인 김 회장도 샴페인으로 눈길을 돌릴 만큼 국내 위스키 시장은 사실 녹록지 않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스키의 주요 매출원인 유흥업소가 정상영업을 하지 못하면서 위스키 시장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위스키는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김 회장은 “안타깝지만 옛날 같은 호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단언했다. 코로나19가 2년 여간 지속되면서 위스키를 주로 파는 유흥주점이나 단란주점 등이 많이 폐업을 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금전적인 보상이 없이는 예전만큼 유흥업소가 문을 열리가 어렵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국민 정서가 2년 동안 유흥업소를 안 가도 된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면서 유흥업소가 문을 열어도 다시 그곳을 찾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는 “술 생각이 나도 예전처럼 유흥주점을 가기 보다 바에서 한 잔 걸치거나 집에서 간단히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예전처럼 유흥업소에서 위스키로 접대를 하는 수요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위스키 음주 문화가 사라지기 보다 TPO(시간·장소·상황)가 달라지며 명맥은 유지될 것으로 봤다. 그간 위스키는 2차에 접대나 사교로 마시는 술이었다면 이제는 식당에서 식사와 함께 간단히 마시는 술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일본도 26년 간 지속적으로 위스키 시장이 감소했지만, 산토리가 하이볼(위스키에 탄산수나 진저에일을 섞은 술) 캠페인을 하면서 시장이 드라마틱하게 회복되고 있다”며 “국내 위스키 업계도 하이볼 시장을 키우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 “샴페인 시장 잠재력 무궁무진”…세계시장도 진출=남녀 간의 사랑처럼 한국인의 주종에 대한 사랑도 변화무쌍한 만큼 김 회장도 위스키만 붙들고 있지는 않기로 했다. 드링크인터내셔널의 주력 제품인 임페리얼이나 패스포트는 하이볼 쪽으로 마케팅 활동을 하는 한편, 제품의 포트폴리오도 다양화하고 있다. 그래서 골든 블랑을 시장에 선보이며 샴페인 시장에 처음 진출했고, 최근에는 와인 사업도 시작했다.

김 회장은 여러 주종 중에서도 샴페인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 했다. 그는 “스파클링 와인 중 샴페인 지방에서 생산되는 샴페인은 우리나라에서 연간 5만 상자 밖에 안되는 작은 시장”이라며 “우리나라보다 인구는 2.3배 가량 많은 일본의 샴페인 시장이 20배 가까이 많은 90만 상자인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샴페인 시장은 아직 미답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샴페인 시장이 일본의 3분의 1만 따라가도 지금보다 6배가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 회장은 국내 샴페인 시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한편, 골든블랑을 세계적인 샴페인으로 만들 것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골든블랑과 같은 샴페인 뿐 아니라 크레망, 프렌치 스파클링 등 스파클링 와인 카테고리를 늘리고, 제품을 5스타, 4스타, 3스타 등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눠 마케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달 3스타 등급의 스파클링 와인 신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내년 초에는 7스타 최상위 등급 라인업도 공개한다. 1000병만 한정 생산하는 이 제품은 제품 출시 소문만으로 50병의 선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업계의 관심이 높다.

김 회장은 “한국 사람들의 오감이 예민하다 보니 음식이든 제품이든 영화든 한국에서 뭘 하려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며 “우리 입맛에 맞춘 제품을 세계적인 스파클링 와인으로 키워내고 싶다”고 말했다. 정리=신소연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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