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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시대의 종말⑪] 디지털법화 나오면, 은행 무용지물(?)
분산원장 블록체인 암호화
중앙은행이 발행·유통·결제
금융사 여수신기능 무력화
가상자산 화폐화 어려워져
한국은행.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한국은행은 카카오의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 연구용역을 맺고 오는 23일부터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모의실험에 돌입한다. 연말까지 모의실험 수행환경 조성 및 CBDC 기본 기능에 대한 1단계 실험을 완료한 뒤 CBDC 확장기능 실험, 개인정보보호 강화기술 적용 여부에 대한 2단계 실험은 내년 6월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한은은 실제 CBDC 발행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앞으로 2~3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CBDC 발행 유인이 큰 건 아니지만, 지급결제환경이 급변하고 주요국 발행이 이어지는 등 도입 필요성이 갑작스레 대두될 가능성에 대비해 준비 작업은 미리 완료해 놓겠다는게 한은의 입장이다.

이처럼 CBDC는 우리 눈앞으로 다가온 현실이 되고 있지만 그동안의 논의는 주로 가상자산 시장이 받을 영향이나 국제 통화간 패권 변화 등에 국한돼 온게 사실이다. 하지만 CBDC의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통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기술적 급진성을 갖고 있고, 이에 금융·통화·결제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파괴력이 예상된단 전망이 나온다.

CBDC란, 기존 중앙은행 내 지급준비금이나 결제성 예금과는 별도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새로운 전자적 형태의 법화(法貨)를 의미한다. 여기서 ‘새로운’이란 표현이 중요한데, 바로 이 점이 현 계좌간 이체와의 차이를 나타낸다.

CBDC는 발행 대상이 모든 경제 주체로 확대될 수 있단 점에서 새롭다. 현 법정통화는 한은 발행 후 반드시 금융기관(거액결제용)을 거치도록 돼 있다. CBDC는 금융기관 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도 직접 발행(소액결제용)이 가능하다.

이 말은 일반 국민도 중앙은행 내 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된단 뜻이다. 이럴 경우 은행 계좌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는데, 상업은행들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될 수 있다. 더욱이 CBDC에 대해 이자도 지급하기로 결정될 경우 이를 더욱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신용위험이 없기 때문에 예금보험공사의 존속도 불투명해질 수 있단 관측이다. 현물 화폐를 찍어내지 않아도 되니 조폐공사 역시 같은 처지일 수 밖에 없다.

원장(元帳·거래기록장부) 구현방식도 종전과 다르다. 현 통화가 중앙은행에 모든 정보를 저장하는 단일원장방식으로 발행이 된다면, CBDC는 거래참가자 또는 일부 제한된 참가자가 각각 원장을 보유하고 이를 블록체인 기술로 암호하는 방법을 채택할 수 있다. 이를 분산원장방식이라고 한다.

CBDC를 단일원장형으로 발행할 경우 비용이 절감되고 처리 속도가 빨라지며 책임 소재 파악이 용이하단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단일원장에 집중되기 때문에 아무리 보안을 철저히 해도 해킹 등에 취약할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분산원장형 방식을 선호하고 있으며 이 중 비허가형보단 허가형을 채택하는 추세다. 거래검증 및 원장기록의 참가기관을 제한하는 허가형이 비허가형에 비해 처리 속도가 빠르고 추가 비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CBDC의 발행주체는 중앙은행으로 민간 기관이 이를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CBDC의 공급·회수·결제 등 발행 외 서비스는 중앙은행이 제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CBDC를 직접형과 혼합형으로 나눈다. 직접형은 말 그대로 중앙은행에 발행부터 유통, 결제 등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담당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럴 경우 기존 은행들의 여수신 업무에 심각한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 결제도 중개기관 없이 보유자의 전자지갑을 통해 이뤄질 경우 금융기관 뿐 아니라 간편결제회사에도 큰 충격을 줄 수 없다. CBDC 결제는 인테넷망 사용이 없어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 중앙은행이 이에 대한 시스템 구축·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에 발행 외 서비스를 기존 금융기관에 위탁할 수 있는데 이를 혼합형 CBDC라 부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은행들이 고객의 돈을 직접 보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중간에서 관리자 역할만 하는 셈인데, 이럴 경우 운용수익의 원천을 보유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금융기관 입장에선 진입 동기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민간기관의 참여를 의무화하거나 적절한 유인을 제공해야 한단 주장이 나온다.

한편, CBDC 도입시 가상자산은 화폐로의 추구 성향이 크게 감소할 수 밖에 없단 전망이다. 한은은 지난 8일 발간한 해외경제포커스에서 “암호자산은 사용가치나 법적 강제력 없이 ‘디지털 경제에 적합한 미래화폐’란 민간영역의 자기실현적 기대에 기반한 것”이라며 “이에 따른 급등락 폭이 매우 커 화폐의 지급결제 및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암호자산 중 법정화폐와 연동돼 안정된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 코인의 경우 암호자산 생태계 및 메타버스 등의 가상세계, 국가간 송금 등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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