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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신친구' 정혜연 감독, "사랑, 우정, 가족을 쉽고 재밌게 말하고 싶다"
정혜연 감독은 친구의 죽음은 슬프지만, 슬픔에 빠지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 ‘귀신친구’를 내놓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최근 막을 내린 제 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 8~18일)에서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부문에 올라 화제가 된 ‘귀신친구’는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영화다.

내용은 죽은 친구 지혜의 집을 방문한 20살 소연(신소연 분)이 지혜의 방에서 발견한 자위 기구를 숨겨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코미디 가족극인 이 작품의 스토리와 연출 모두 기발하고 참신하다. 그런 점으로 인해 '귀신친구'가 웨이브에서 공개되면서 트위터 등 SNS에서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지난해 괴담 단편제작지원사업 1등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정혜연 감독(27)은 “성(性) 엄숙주의 타파라는 소감과 의견을 접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의도나 포부로 연출한 건 아니다. 웃긴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부모세대는 당황스럽다고 하지만, 10대는 씩 웃고 넘길 수 있다. 이런 차이에 대한 의견을 들을 때 재미있다”고 말했다.

1994년생 신예 감독인 그는 학교 등 주변에서 피드백을 받으면서 “여성의 성적 억압을 해방시켜주는 영화”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하지만 정 감독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 성적 억합을 해방시킨다고 말하면 거기에서 머물듯하다. 여성의 억합을 전제로 하게 되지 않을까. 거기서 벗어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정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했다. 순수미술을 공부한 후 전공을 대학원에서 영화로 바꿨다. 한예종 영상원의 영화과 연출전공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그는 “미술은 개인작업의 피드백이 금방금방 오지 않는다. 나는 보여주고 어떠한지를 듣고싶은 데 소통이 쉽지 않았다. 무인도에 있는 듯 했다. 스태프들과 모여 큰 스케일로 작업하는 영화가 나에게 더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고 영화연출로 전공을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는 미장션과 조명 등에서 미술을 전공한 덕을 톡톡히 보는 듯했다.

“나는 미술을 할 때도 내러티브가 있는 걸 좋아했다. 그랬더니 형식이 유화가 아니라 만화라고 했다. 그래도 소리가 안 들리니 답답했다.”

정 감독의 설명은 자신이 결국 영화라는 종합예술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엄마 아빠가 나의 미술 전시회를 보러 왔을때 ‘이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제 미술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소통을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제 영화를 보시고는, 캐릭터에 대해 의견을 내놓으신다”고 했다.

32분 분량의 단편 ‘귀신친구’ 촬영은 6일동안 충북 청주에서 찍었다. 학기수업으로 이뤄진 작품이라 편집은 오래 걸렸다. 촬영한 동네가 좋았고 숙소도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있어 배우들이 모두 즐겁게 찍었다고 한다.

“학생영화에서도 수직적으로 이끌려는 연출자가 있다. 감독에게 모든 선택권이 있는 듯하다. 나는 ‘원피스 해적단’ 같다. 선장은 루피지만 다른 선원도 세다. 수평적인 분위기를 지향한다. 물론 감독이 선택에 책임은 져야한다. 감독이 선택하지만 배우 등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 수평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분위기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서 현장을 이끌어가는 게 행복하다.”

‘귀신친구’는 오는 8월 열리는 대구단편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올랐다. 앞으로 극장에서도 상영이 가능하다. ‘귀신친구’는 코미디물인 ‘안녕 내 사랑’(2019)에 이어 정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미장센영화제 코미디(희극지왕) 경쟁 부문에서 상영된 ‘안녕 내 사랑’은 헤어진 연인이 오랜만에 재회하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았다.

“서로 감정이 남아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는 테이블톡 영화인데, 사실 남자는 새 여자와 결혼한다고 통보하러 왔고, 여자는 편지까지 직접 써 다시 한번 잘해볼 요량으로 온 것이다. 헤어질때 청첩장과 편지를 맞바꾸면서 마음이 들키고, 결국 잘먹고 잘살아라는 내용이다.”

이 영화속 남녀의 티키타카는 충분히 재밌다. 대화가 안 통하는 상황에서도 요즘 세태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정혜연 감독은 소위 ‘강남키드’다. 서울 강남에서 초중고교를 나왔다. 이어진 그의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외부적으로 보면 모두 강남학교다. 하지만 극과 극, 빈부차이가 크다. 모두 다 하하호호할 것 같지만 가정환경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는 어려서 서로 잘 어울렸지만, 알게 모르게 박탈감을 느끼고, 서로 따라하려고 하기도 했다. 애들이 혼날 일이 있으면, 부모님이 오시는 애들은 선생님이 빨리 처리하는데, 부모가 학교에 안 오는 애들은 그렇지 못했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이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보는 건 어떠냐는 말을 해봤다. 정 감독은 다음 작품도 이미 구상을 해놨다. 질풍노도 시기인 10대를 기억해내 재구성하는 ‘마법학교’다. 장편 괴담 시리즈 기획공모전에 당선돼 오는 8월중 서울에서 피칭을 앞두고 있다.

“그때 아이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묻는다.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선생님과 학부모 등 어른들이 그들의 위치에서만 말했다.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를 불러놓고 ‘자, 화해해’라고 하면 안 된다. 10대들은 감수성이 예민하다. ‘마법학교’는 어른들이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해 서로를 성장시킨다. 자력으로 생존하자는 말이다. ‘마법학교’에는 판타지가 들어간다. 조선말기의 무당으로 환생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를 섞었다.”

아직 15살의 영혼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정 감독은 어렸을 때 아빠의 손을 잡고 본 영화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이다. 해리포터 세대답게 판타지, SF물을 좋아한다.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많은데, 인간이 로봇을 자신 밑에 두려고 하면 로봇이 인간보다 하등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묻고,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이 무엇이냐를 작품을 통해 묻고 싶다고 했다.

말할 때마다 재능이 엿보이는 정 감독에게 어떤 감독이 되고 싶냐고 묻자 “가장 단순한 걸 잊지 않는 감독이다. 사랑, 우정, 가족이란 말은 쉬운 듯 하면서 가장 어려운 말이다. 이런 걸 가장 쉽고 재밌게 말하는 감독이 되고싶다. 사랑과 우정 만세!!”라고 답했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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