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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음주하는 AI

“부서의 술자리는 업무의 연장”이라며 필참을 강조하는 선배들의 강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내 직장생활은 시작됐다. 동료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질 기회였고 업무에선 느낄 수 없었던 끈끈한 동료애를 실제로 느끼기도 한 자리였다. 한번 마셨다 하면 절대 한두 잔으로 끝나지 않는 자리에서 때론 벌을 서는 심정으로 견뎠던 기억도 난다.

시국 토론은 물론이고 회사 성토, 상사에 대한 불만으로 화끈하게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인생을 갈아 넣은 밥벌이를 한탄하며 시대의 인물들이 그렇게 악취 구덩이를 헤맸다. 작은 일로 시비가 붙기도 하고 때론 범죄에 가까운 폭언이나 폭행이 벌어지기도 해 죄 없는 술을 욕보이기도 했다.

몇 년 그렇게 살다 보니 왠지 맹숭맹숭하게 밥만 먹고 헤어지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술 많이 먹기로 소문난 업종 탓인지 술에 절어 일하고 또 술자리로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 살았던 초반 10여년. 음주의 폐해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주변 선배 동료들이 술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건강을 잃고 고생하는 모습, 잦은 술자리 실수로 신뢰를 잃고 조직의 트러블메이커가 돼가는 과정을 아프게 지켜봤다. 같이 술잔을 기울였던 공범으로서의 죄책감에 술자리가 힘겨워졌다. 그런데도 발을 빼지 못하고 아직도 가끔은 술자리를 가져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을 느낄 때가 있다. 위로나 고무, 의기투합이 필요한 동료들과 함께할, 술자리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아직 생각나지 않은 탓이다.

인간을 학습하는 인공지능(AI)이 나를 학습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AI를 위해 인간 특성을 탐구한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에 의하면 인간처럼 보이고 싶은 AI에게 다음과 같이 인간의 음주 상태를 학습하고 시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조언한다.

“한 사람을 택해서 아무 주제나 가지고 논쟁을 벌인다. 상대방이 옷을 입는 구체적인 방식, 조금 전에 한 말, 작은 몸짓 등 어떤 주제든 상관없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어야 하며, 몸싸움으로 발전한다면 더욱 좋다. 터무니없는 말과 행동을 할수록 사람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알코올에 빠진 인간을 비튼다.

술자리에서의 과장된 언사에 대해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정말로 애정을 느낀다고 말해야 한다.술에 취하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 앞에서 춤을 춘 적이 없다면 술을 마셨을 때는 춤을 춰야 한다. 술에 취했을 때는 무엇이든지 잘 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그 행위에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술자리가 가져다줄지도 모를 친밀감, 유대감 형성에 대한 기대도 깨끗하게 박살 낸다.

알코올의 효용성은 결국 의사소통의 곤란을 겪는 사람들의 통신 강화 도구로 귀결되므로 회사 동료와 술을 마실 때는 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을 딱 하나만 선택해서 표현 극대화에 집중하면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는 AI가 아니라 사람이므로 때론 알코올이 주는 긴장 완화와 허술한 멘탈을 받쳐줄 치기도 필요하다. 폭음으로 술에 지배당하지 않고 맨정신에 즐기는 반주 정도면 AI가 계량화해 흉내 내기 힘들지 않을까. AI가 학습으로는 배울 수 없는 멋진 ‘한잔문화’를 만들지 않으면 AI에게 인간 망신 톡톡히 당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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