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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새 대북정책, 제재냐 관여냐…그것이 문제로다-④ [한반도 갬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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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지난 3편의 기사는 빌 클린턴부터 도널드 트럼프까지 미국 정부가 택한 대북 정책들의 장·단점을 짚어봤다. 이번 편에서는 그 동안의 분석을 토대로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지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압박이든 관여든…결국 답은 ‘외교’

“미국과 일본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질서를 위해 함께 협력을 계속할 것이다. 관련 안보현안으로는 ‘북한의 비핵화’가 있다. 우리(미국)는 우리의 친구들과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뚫고 나가겠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의 조속한 해결도 지지한다.” (2021년 3월 16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미일 외교장관회담 모두발언 中)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작업에 들어가면서 보인 변화는 용어에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지난달 말경부터 대북정책 목표를 ‘한반도의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비핵화’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표현으로 인해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및 전략무기 철회 등의 군축협상 구도를 만들 가능성을 원천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의 정의를 두고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그렇다고 마냥 강경한 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과 관련된 용어선택에도 강경과 유화적인 접근은 동시에 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을 언급할 때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DPRK)라는 공식 영어 국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불량배’(thug)라 비하한 걸 고려하면 의외의 움직임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 이후 북한이 독재체제의 지도자로 인정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30년의 대북정책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얻은 핵심교훈이 있다. 바로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처럼 ‘상대방이 굴복할 때까지 군사압박을 가한다’는 명제는 북핵 개발을 저지하는 데에 답이 될 수 없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부시 행정부의 접근은 북한 내부 결속력을 오히려 강화했다. 결국 부시 행정부도 문제 해결을 위해 협상테이블에 나섰다.

대화의 문 열어놨지만…’가치압박’ 시도하는 美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한계는 명확하다. 핵심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협상테이블로 나오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하다. 아울러 김대중 정부시절 추진됐던 남북경제협력 사업은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상황에서 추진하기 어렵다. 국제사회가 구축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의 틀을 깬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남북철도협력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비상업적 인프라’라는 표현까지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점은 이미 확인됐다. 백악관은 지난 2월 중순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한 사실을 인정했다. 결국 핵심은 ‘어떤’ 대화를 할 것이냐다.

대화는 중요하지만 무조건적인 우호적 행보도 적절하지 않다. 북한이 국제법을 위반해 핵안보체제를 위협한 점은 불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북한은 1994 북미 코뮤니케와 제네바 합의로 비핵화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거부하는 등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일본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왼쪽에서 두 번째)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왼쪽) 국방장관이 16일 도쿄의 리쿠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모테기 도시미쓰(오른쪽에서 두 번째) 일본 외무상, 기시 노부오(오른쪽) 방위상과 2+2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 회의)를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바이든 행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북한에 ‘민주·인권가치’를 중심으로 한 외교적 압박에 나선 상태다. 블링컨 장관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을 촉구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인도‧태평양 4개국(미국‧일본‧호주‧인도) 정상회의인 ‘쿼드(Quad)’에서 미국은 일본정부의 입장을 배려해 북한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해결을 촉구했고, 전날 미일 외교장관 회담과 외교·국방 2+2 장관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언급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부각함으로써 외교적인 압박을 추진할 방침을 내비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바이든 행정부와의 싱크로율을 높여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선제적 대북관여 접근을 통해 북한을 시장주의와 국제사회라는 양지로 끌어내고, 장기적으로 비핵화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이 같은 접근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때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물리적 충돌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시각이 힘을 얻으려면 ‘북한은 진정으로 비핵화 의지가 있느냐’라는 질문부터 해결돼야 한다. 블링컨 장관은 16일 미일 2+2 장관회담에서 “여러 차례 북한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화 단절의 책임을 북한에 돌린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지난 몇 년간 북한에 관여하려고 했지만 또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북한의 ‘대화의지’를 의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직접 비핵화 의지를 명확하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문 대통령의 전언만 믿고 대대적인 관여로 나서긴 어렵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미 공화당의 반대를 뚫고 북미 2‧29합의를 성사시켰다. 하지만 북한은 2주만에 합의를 깨트렸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직면한 두 번째 문제점은 ‘남북관계’에 핵 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핵문제의 3대 축이라 할 수 있는 비핵화·관계개선·평화협정 이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 문재인 정부가 설정한 남북관계는 관계개선과 평화협정에 집중하고 있다. ‘비핵화’를 우선하는 미국으로선 ‘한미가 같은 페이지에 있는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가 워싱턴 외교가를 지배하면 할수록 바이든 행정부가 ‘관여’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북한이 남측과의 비핵화 대화를 거부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일정 수준 비핵화 논의에 관여해야 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상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남북관계 개선은 어렵기 때문이다.

외교, ‘불가능한 꿈’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이미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상황에서 비핵화는 ‘불가능한 꿈’이 돼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일 수 있다. 그만큼 비핵화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비확산 프레임상 비핵화를 포기할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정치적 비핵화 선언’일테다. 북한의 핵고도화 수준이 국제사회가 갖춰놓은 비확산 틀 안에 들어가기 어렵다면 그외 ‘할 수 있는 조치’를 바이든 행정부에 설득하는 작업도 할 수 있다. 외교는 결국 ‘불가능한 꿈’을 좇는 작업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국가와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일’과 ‘관리해야 하는 일’을 구분해 방법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그러나 이는 북한과 우리 정부에도 적용된다. 국제법과 협력틀을 버리고 ‘마이웨이’식 접근을 고집하는 북한의 행보를 받아들일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기존 국제사회가 구축한 비핵화 검증작업과 국제법, 외교적 합의 등은 전쟁을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체계를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만 했다. 그 희생을 덮은 채 남북이 손을 맞잡으면 아무도 ‘평화’라고 인정해주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가 유연한 접근을 해야 한다면 북한도 마찬가지다. 협상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양보로 이뤄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인한 동맹 와해‧동북아 안보불안‧비확산 체제 위기 등의 우려가 발생하지 않도록 북한에도 유연한 자세와 인내심 있는 접근을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전(progress)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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