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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장수위 높은 동·남중국해,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중국이 재부상하면서 오래 굳어져온 국제 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특히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다오위다오, 타이완 등이 포함된 동·남중국해를 놓고 미국과의 갈등은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캠브리지대와 하버드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마이클 타이의 저서 ‘동·남중국해, 힘과 힘이 맞서다’(메디치)는 우리가 몰랐던 중국과 이웃 국가들의 관계와 역학관계, 문화와 역사를 알기쉽게 들려준다.우리 역사와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중국의 역사에 일본이 처음 등장한 건 한무제 시절. ‘후한서’ 기록에 따르면, AD57년, 공물을 갖고 온 일본인 사절에게 광무제는 금도장을 준다. 왜의 노국왕에게 하사한 것이다.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수백명의 학자를 보내 문물을 배워온 일본이 중국과 첫 전쟁을 벌인 건 한반도에서였다. 백제와 연합군을 결성,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대항했지만 대패한다. 이어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하면서 두 차례의 침략전쟁이 벌어지지만 1598년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메이지 유신으로 현대식 군대를 보유, 산업사회로 변모한 일본은 1895년 한반도에서 또 한번 중국과 붙는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조선의 독립과 랴오둥반도, 타이완, 펑후열도를 얻게 된다. 센카쿠열도 최대 섬인 무인도 다오위다오는 그 조약에서 거명되지 않았으나 일본이 합병하면서 영토분쟁의 불씨가 된다. 또 다른 문제는 태평양전쟁 패배 후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다. 피해 당사자인 중국과 한국,타이완 등이 배제된 채 미국과 그 우방들이 맺은 이 조약은 일본의 책임을 묻기보다 일본을 중국에 맞서는 동맹국으로 만듦으로써 역사에 눈을 감게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좀 복잡하다. 긴 역사 속에서 둘은 가까운 동맹이기도 했고 혹독한 적이기도 했다. 남비엣(南越國)은 한무제에 정복당해 천년동안 중국의 지방이었다가 939년 베트남이 독립을 쟁취하지만 명의 영락제때 다시 중국의 변방이 된다. 그러나 자원수탈과 문화억압 등 중국화 정책에 반발, 지주 레 러이가 봉기, 중국을 몰아내고 후레 왕조(1428~1787)를 연다.

1620년 북부의 쩐과 남부의 응우엔 두 라이벌 간 전쟁이 일어나 100년간 각각 정부를 유지하다 1772년 떠이선 형제가 민중의 지지를 업은 반란에 성공, 남부를 장악하게 된다. 남부의 응우엔 가문은 응우엔 아인만 빼고 몰살당하는데, 아인은 나중에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남부지역을 탈환, 1802년 황제에 오르고 왕국이름을 베트남으로 바꾼다.

프랑스는 예수회 신부들의 안전을 이유로 1858년 14척의 전함을 이끌고 다낭을 점령한 데 이어 25년에 걸쳐 정복을 완수하고 자원을 착취했다.

덕분에 베트남과 중국은 가까워졌다. 1925년 인도차이나에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그룹인 베트남혁명청년협회가 결성, 광저우에 본부를 차리고 중국공산당에도 가입하게 된다. 호찌민은 베트남 독립을 위한 연맹체인 베트남독립동맹회(베트민)를 결성, 1945년 일본의 항복과 함께 전면적으로 봉기,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선포한다. 그러나 포츠담 회담에서 연합국 지도자들이 인도차이나를 프랑스에 돌려주기로 결정하면서 베트민은 다시 중국과 손을 잡고 프랑스 군대를 몰아내 독립을 쟁취한다.

제네바 회담의 정전 합의는 중국과 베트남 간의 상호불신을 낳았다. 호찌민은 베트남 통일을 원했지만 중국은 남베트남 지역을 통합하기 위한 군사 공세가 미국의 개입을 부를 것을 우려했다. 당시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참여로 손실이 큰 상태였다. 소련도 중국과 함께 북위17도선(남북 베트남 분단선)에서 멈추라고 호찌민을 설득했다.

정전합의에 따라, 프랑스가 남부지역에서 철수하고 베트민은 북부지역으로 돌아가게 돼 있었다. 또한 2년 안에 전국 선거를 치르기로 했으나 미국은 제네바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사이공의 응오딘지엠 정권은 선거를 거부했고 베트남은 분단상태로 남게된다. 미국은 동서냉전의 긴장과 베트남이 무너지면 다른 동남아국가들도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으로 여겨 개입을 강화해나갔다. 3500명에서 시작한 파병 인원은 1968년까지 54만3천명으로 늘어난다.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 개선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남베트남이 점령했던 파라셀 군도와 스포래틀리 군도를 놓고 벌어지는 영토분쟁은 골칫거리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과의 관계는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데, 아세안국가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동·남중국해, 힘과 힘이 맞서다/마이클 타이 지음, 한승동 옮김/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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