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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조선의 찻사발 '정호다완', 도예가 손 끝에서 살아나다
학고재갤러리, '춘추4-황중통리 김종훈 도자'전
"정호다완은 도자의 처음이자 끝…본질을 끄집어 내는 일"
'이도다완'으로 불리는 '정호다완'. 14~16세기 조선에서 만들어진 찻사발이다. 17~19세기 서민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막사발과 혼동해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사용의 목적, 제작 방식등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 도예가 김종훈의 설명이다. 사진은 도예가 김종훈 손에서 재탄생한 정호다완.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일본에서 '이도다완'으로 불리며 걸작이라고 추앙받는 '정호다완'(井戶茶碗)은 14~16세기 조선의 찻사발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남아있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갔던 도공들이 그곳에서 도기를 제작했고 이후 조선에 돌아와 다른 도공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눌러 앉은 경우가 상당했다. 일본의 도자기는 조선 도공들의 기술을 받아들여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조선의 도자산업은 쇠퇴일로였다. 왕실 제기조차 목기를 하얗게 칠해 사용한 시기가 있을 정도였다.

이젠 맥이 끊겨버린 정호다완이 도예가 김종훈(48)의 손끝에서 재탄생했다. 20년 넘게 정호다완을 연구한 작가는 수 십 차례 일본을 드나들며 300점 넘는 다완을 관찰했다. 다기를 빚는 도공과 이를 쓰는 다인(茶人)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조선 정호찻사발 전시를 찾아다녔고, 일본 다도도 배웠다. 과정과 결과를 담지 않으면 옛 것의 복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작업한 다완 78점과 백자대호 6점이 조선시대 다완 3점, 달항아리 1점과 함께 나왔다.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는 '춘추4-황중통리 김종훈 도자'전을 개최한다.

일본으로 건너간 도공이 제작한 정호다완.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몸통엔 조선팔도 지명을 써 넣었다.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김종훈 작가의 다완은 모두 산에서 채취한 진흙을 7~8년 숙성시키고, 재래유약을 발라 만들었다. 요즘 쉽게 구할 수 있는 정제된 흙과 달리 진흙은 찰지지 않고 기공이 터져나오며 트임이 생기기 십상이다. 게다가 전기가마가 아닌 장작가마에서 구웠다. 전통을 최대한 따라가며 탄생한 찻사발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조선의 그것 처럼 자연스런 크랙이 생기고 색감도 비슷하다.

작가는 왜 정호다완에 천착하는 것일까. "도자 표현의 처음과 끝을 담고 있다.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원토와 정제를 최소화한 유약 등을 재료로 단순한 형태를 빚어내는 작업이다. 본질을 끄집어 내는 일과 같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그러나 쓰이지 않은 다완은 미완성이다.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사용하다보면 쓰는 사람들의 흔적과 이야기가 담긴다. "사발을 완성해 작가가 손을 놓는 순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작품이 된다" 과거가 과거로 남지 않고 현재로 이어지는 건 바로 이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이번 전시는 '학고창신'(學古創新·옛것을 배우고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에서 이름을 딴 학고재의 정체성을 담은 기획전 '춘추'의 네 번째 시리즈다. 전시 제목인 '황중통리'(黃中通理)는 주역의 곤괘에서 땅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이다. 땅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은 정호다완처럼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면과 행동으로 이어짐을 뜻한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vicky@heraldcorp.com

학고재갤러리 '춘추4-황중통리 김종훈 도자'전 전시전경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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