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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검사·의사보다 인생!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원과 대표이사까지 거친 유명 코칭전문가와 식사를 하다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20대 때 프랑스에 유학, 현지 남성과 결혼해 사는 후배에 관한 얘기다. 머리 좋고 열심인 한국인 유전자를 지닌 그 후배는 프랑스 항공사에 취직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으로 승승장구했다. 지자체 공무원으로 큰 욕심 없이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남편과 달리 그녀는 엄청난 에너지로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부서에서 그것도 탁월한 실력으로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그게 다가 아니다. 워킹우먼이라고 자녀교육에 소홀하지 않았다. 극성스러운 한국엄마의 교육열은 어디 가지 않아 아들·딸 모두 일류대학에 검사·의사 수순을 밟고 있다.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손주들이 이렇게 똑똑하고 잘나가니 시부모는 또 얼마나 대견해하실까.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다. 프랑스 시부모는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라며 못마땅해하셨다. 며느리는 당혹스러웠다. 한국 할머니·할아버지라면 동네방네 소문내며 잔치라도 벌였을 일이다.

이 후배 역시 직장에서 생각지 못한 곤경에 처했다.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문제였다. 동료 직원들로부터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찍혀 상사에게 충고를 들어야 했다. 열심히 일하는 게 죄라니! 그 뒤 그녀는 일을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지만 좀이 쑤실 수밖에 없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최근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임신한 상사를 대신해 막 인수한 파리 마케팅회사에 1년 동안 일하게 된 에밀리가 겪는 파리 이야기로, 파리지앵들의 일상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누구나 그렇듯 파리를 흠모해온 에밀리는 파리의 낭만과 미국인 특유의 의욕 과잉으로 기운찬 발걸음을 내디딘다. 그런데 출근 첫날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빵가게에 들러 맛있는 크림빵을 사 베어 물며 보무도 당당하게 회사에 당도했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두 시간째 기다리다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오늘 자기가 모르는 프랑스 휴무일이냐고 묻는데, 그때 한 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도착해 출근시간이 10시30분이라고 알려준다. 심지어 상사는 11시가 훌쩍 넘어 출근하는 게 아닌가. 첫 회의,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용한 마케팅 기법을 공유해 고객들에게 더 큰 만족감과 시장 확대를 꾀하자는 그녀의 말에 상사와 직원들은 혀를 내두른다. 점심시간에도 왕따를 당하고 심지어 그녀를 ‘촌뜨기’라며 놀리기까지 한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를 홍보하는 이 마케팅회사의 매력적인 직원들은 왜 에밀리를 그렇게 못마땅해하는 걸까? 한 직원이 그녀에게 이유를 말해준다. “우리는 에밀리를 무서워한다. 더 열심히 일해서 더 수익을 올려야 할까 봐.” 미국인들은 삶의 균형감각이 잘못됐다는 말도 한다. 프랑스인은 살기 위해 일하지만 미국인들은 일하기 위해 산다는 것.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미국인의 성공 기준이 프랑스와 달라 고민이라는 것이다. 에밀리는 자신에겐 일이 성취감과 행복을 준다고 말하자, 그 직원은 “혹시 행복이 뭔지 모르는 게 아니냐”며 되묻는다.

드라마니까 과장되게 표현했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말이지만 코칭전문가가 들려준 프랑스 후배 얘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과 여가의 밸런스, 행복은 그들과 질적 차이가 크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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