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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초가 10분이 되는 게 예술 시간을 손대는 작가 ‘빌 비올라’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과 그 친구들Ⅱ:빌 비올라, 조우’전
빌 비올라, 인사(The Greeting),1995[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두 명의 여자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한 명의 여자가 더 끼어든다. 새로 온 여자는 한 명의 여자와 인사를 나누고, 다른 한 여자는 약간 어색한 듯 당황스런 표정을 짓지만 곧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모두 45초간 벌어진 일이다. 미국의 비디오아트 거장 빌 비올라는 이를 10분 길이로 늘렸다. 화면은 정지한 듯 정지하지 않은채 천천히 지나간다. 회화같은 영상이다.

‘인사(Greeting)’이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빌 비올라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대표로 참여했던 당시의 작품이다. 빌 비올라는 르네상스시대 세 여자가 이야기하는 모습이 담긴 책을 서점에서 보고 해당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탈리아 화가 폰토르모의 ‘방문’이라는 작품인데, 성모마리아가 사촌이 엘리자베스에게 태중에 아이(예수)가 있음을 알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비올라는 이 세 여성의 만남에 착안했다. 입고 있는 옷은 르네상스시대의 색감을 닮았고, 대신 뒷 배경은 도시의 풍경을 담아 현대적 도시의 심상을 입혔다.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 한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동시에 그 순간을 길게 늘이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로 증폭된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 처럼 순간의 만남에서 드러나는 어색함과 반가움의 교차가 집중적으로 부각된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빌 비올라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 ‘이우환과 그 친구들 Ⅱ: 빌 비올라, 조우’전을 개최한다. 이우환 공간을 비롯 본관 4층에서 이어지는 빌 비올라전은 그의 초기작부터 근작까지를 총 망라한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전은 부산시립미술관의 연례 기획전으로, 이우환과 비슷한 시대를 활동한 작가를 선정해 소개하는 전시다. 지난해 첫 시리즈 주인공은 앤토니 곰리였다.

전시에는 ‘이주’(1976년), ‘투영하는 연못’(1977∼79년), ‘엘제리드호(빛과 열의 초상)’(1979년)을 비롯 영국 런던 세인트폴성당에 영구 설치된 ‘순교자 시리즈’(2014년), 다섯 개의 영상으로 이뤄진 대형 설치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2002년) 등이 나왔다. 클로즈업, 슬로우 모션 등 작가 특유의 영상기법으로 제작된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동양의 ‘윤회’사상이 작품의 기저에 깔려있음도 알 수 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은 “빌 비올라의 영상작품들을 인간의 조건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통해 존재론적 성찰을 지속해온 이우환의 작품과 함께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다. 서로 장르는 다르지만 예술관을 공유하는 두 거장의 예술세계가 조우하면 만들어내는 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영상작업이 범람하는 2020년의 눈으로 보면 조금 심심할 수 있지만, 시간의 물성을 손으로 만질 듯이 경험할 수 있는 전시다. 내년 4월 4일까지. 부산=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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