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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신분제도 능력주의는 사기다
마코비츠 예일대 교수, '실력대로'민낯 밝혀
기회평등은 속임수, 엘리트 차별적 교육 독점
교육·직업 되먹임 효과로 엘리트 세습화

엘리트 부 자본보다 소득, 중산층 격차 극심
극심한 경쟁 밀레니얼 세대, ‘집단 불안’상태
모두 불행한 ‘능력주의 덫’…교육·일자리 개혁해야
“능력으로 얻은 근로 소득 덕분에 엘리트 부모의 엘리트 교육 독점 현상은 세대가 바뀔수록 점점 더 심화된다.이와 같이 능력주의는 교육과 직업 사이 되먹임 고리를 만들어내며 그 고리 안에서 개별 분야의 불평등은 다른 분야의 불평등을 증폭한다.”(‘엘리트 세습’에서)

실력에 따라 누구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능력주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공정한 방식으로 여겨진다. 능력주의가 기회의 평등과 동일시 되기때문이다. 그러나 실력이라 평가되는 능력치를 획득하는 과정은 공정치 않다는 게 속속 입증되고 있다.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저서 ‘엘리트 세습’(세종서적)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능력주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부당하게 입시나 취업에 성공한 ‘부모 찬스’ 등 부정사례들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능력주의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력대로 공정하다는 능력주의는 한마디로 속임수이며, 우리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마코비츠는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엘리트집단을 신귀족사회로 본다. 과거 귀족사회가 땅과 재산을 세습해 특권을 공고히 했다면, 현대사회는 엘리트 부모가 자녀들의 교육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능력을 대물림한다. 인적 자본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는 중산층 이하에선 따라갈 수 없다. 새로운 귀족주의는 다음 세대에서 특권을 끊임없이 다시 구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넉넉한 부와 차별화된 방식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문제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교육과정을 통해 엘리트코스를 밟은 이들은 소득, 부, 권력 뿐만아니라 영예와 존경까지 독차지하게 된다.

마코비츠 교수가 능력주의의 가장 큰 병폐로 지적하는 것은 불평등의 심화다.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 기회의 평등을 제공한다는 성공신화가 가져온 예상치 못한 결과다. 교육은 중산층 학생들이 승리할 수 없는 입학경쟁으로 치닫고, 직업은 엘리트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대졸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엘리트 고용인은 명문대 졸업생을 선발, 고액 연봉과 성과보수를 지급한다. 고학력 엘리트들이 높은 기술력으로 노동생산력을 독점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시 되면서 괜찮은 일자리에서 중산층은 밀려난다.

능력이 출중한 한 명의 엘리트가 중산층 수백 명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시장은 갈수록 특별한 교육과 값비싼 훈련을 받은 인력을 우대하는 추세로 변화한다. 아이비리그, 실리콘밸리, 월가는 엘리트만의 리그가 된다. 능력경쟁에서 밀린 일류대학 학위가 없는 중산층은 사회중심부에서 쫒겨난다. 숙련 편향적인 혁신 기술을 숭배하는 엘리트들이 발명한 것들은 그들에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는 반면, 중산층은 그 발명품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뿐만 아니라 창의력의 원천이 극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되면서 중산층은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지평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만다.

그 결과, 중산층과 상위 1% 엘리트 간의 결혼, 교육, 소비활동에서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사회적으로 기본적인 빈곤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중산층의 임금이 줄어들면서 중산층과 빈곤층의 생활수준이 비슷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는 중산층이 분노하고 사회적 불만이 높아지는 이유로, 중산층을 정신적 무기력,파괴적인 몰락으로 이끈다.

마코비츠 교수는 현대의 경제 불평등을 마르크스 착취론인 자본 대 노동의 투쟁으로 보는 데 한계를 지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명제화한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고 노동소득보다 높다는 주장에 대해, 마코비츠는 현대의 엘리트들이 부를 임대 수익이나 금융 수익 등 자본으로 얻는 게 아니라 노동소득으로 얻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포브스 400대 부자’중 70%가 자수성가형이며, 슈퍼리치 아래 단계의 엘리트들 역시 노동소득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중간 규모의 헤지펀드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평균 27억원을, 2017년 S&P기업 최고경영자들은 평균 158억원을 받는다.

저자는 능력주의가 내세우는 기회 평등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 이동을 촉진하기보다 억제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능력주의 교육은 일반 국민이 아니라 엘리트 계층의 목표를 충족하는 도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선 모두가 불행하다. 엘리트들 역시 일생동안 치열하게 지속되는 경쟁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들은 과거의 부유층과 달리 근면성실하고 고되게 일한다. 월가의 직원들은 아침5시에 일어나 저녁 10시까지 일하는 데 익숙하다. 그 자신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마코비츠교수는 제자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능력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엘리트 밀레니얼 세대는 ‘집단 불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들은 자신이 전에 올린 성과를 확신하지 못한다. 직장은 학교에서와 똑같이 경쟁이 벌어지는 곳일 뿐이다.

20년간 이 문제를 천착해온 미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능력주의의 덫에서 탈출하는 게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강조한다.

능력주의의 위계질서를 해체하고 민주주의적 평등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선 일자리와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민주주의의 평등과 능력주의의 평등의 차이, 능력주의가 실은 왕조적 구체제의 사고방식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 진보주의자들이 능력주의의 덫에서 해어나오지 못하는 점 등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엘리트 세습/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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