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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푸드, ‘잃어버린 100년’의 역사

1870년대 말 미국 아시아함대에서 근무했던 조지 포크는 1883년 조선정부의 미국 방문 외교단 보빙사의 통역을 맡으면서 민영익의 지원으로 조선팔도를 여행하게 된다. 든든한 후원 덕에 그는 각지의 조선음식을 두루 맛볼 수 있었다.

1884년 전주에 도착한 그는 전라도 관찰사 김성근으로부터 대접을 받고 일기에 적었는데, 세 가지 인상적인 음식을 기록했다. 그 중 하나는 채소와 고기를 함께 끓인 신선로, 다른 하나는 베르미첼리다. 베르미첼리는 스파게티보다 면발이 가는 파스타로, 그가 먹은 건 골동면이라 부르는 메밀국수였다. 메밀국수에 소고기 안심, 달걀, 후춧가루, 들깨가루, 참기름, 간장 등을 넣고 버무린다. 골동면은 고종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와 함께 먹은 점심 식탁에도 올랐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의 ‘백년식사’(휴머니스트)는 조선이 개항한 1876년부터 지금 코로나 19 시대, K푸드까지 145년간 한국인의 식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들려준다.

조선의 개항은 한국 음식의 세계 식품체제로의 편입을 뜻한다. 고종은 서양인들의 방문이 잦자 프랑스식 코스요리를 담당할 찬사를 두기도 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한반도엔 일본 것과 서양 것을 합친 화양절충요리가 들어오게 된다. 저자는 한반도가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당하지 않았다면 조선과 서양의 절충요리가 100년전에 만들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개항과 대한제국 멸망은 한국 음식에서 ‘잃어버린 100년’이라 부를 만하다고 지적한다.

식민지 시기, 일본 거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일본 식료품을 판매하는 식자재회사들이 겨났다. 청파동에 다카미장유양조장, 일본식 두부회사인 경룡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간장, 두부는 한국인들에게도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는 식민지 조선의 입맛을 점령하게 된다.

식민지 공간의 식량난 속에서 주목받은 대용식인 호떡, 번데기, 빈대떡은 현재 길거리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60년대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와 혼분식 장려로 일상화된 수제비, 인스턴트 라면은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인의 대표 분식으로 자리잡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삼겹살과 LA갈비는 80년대 들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음식이다. 삼겹살구이의 유행에는 일본의 휴대용 가스버너와 일회용 부탄가스가 한 몫 했다.

열대과일과 대중 횟감이 된 연어와 랍스터 등 세계화 속에서 변하고 있는 식탁을 통해 저자는 음식을 문화, 관습으로 한정하지 않고 정치, 경제, 세계식품 체제의 틀에서 의미를 읽어낸다. 코로나 시대 1인용 상차림 제안도 눈길을 끈다.

meelee@heraldcorp.com

백년식사/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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