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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즈 보컬’ 말로, 송창식을 다시 부르다…“나를 찾아가는 과정”
한국형 재즈 디바의 귀환…6년 만의 새 앨범
2010년 ‘동백아가씨’, 2012년 ‘말로 싱즈 배호’
K-스탠더드 시리즈의 세 번째 작업 ‘송창식 송북’
 
영어의 벽 뛰어넘어 한국말로 부르는 재즈
“음악가의 삶은 나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

한국형 재즈 디바, ‘한국의 엘라 피츠제럴드’로 불리는 말로가 K-스탠다드 작업의 일환으로 송창식의 명곡들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 ‘송창식 송북’을 발매했다. 그의 이번 앨범엔 송창식이 직접 피처링에 참여해 힘을 실었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고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소리가 던져진다. 먼 곳의 파동이 서서히 귓가에 가 닿으면 재즈 보컬 말로가 읊조리는 ‘우리’ 안엔 수많은 ‘우리’가 스쳐간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우리’에 대한 기억을 말로는 노래했다. 그는 “사람 사는 수많은 이야기 중 나의 이야기를 발견해 불렀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스토리가 있을 때 비로소 내 노래가 되니까요.” 짙은 여운을 남기는 목소리 끝에 또 다른 소리가 바통을 잇는다. 장구한 시간의 길이를 새긴 거대한 고목처럼 선 목소리. 송창식은 34년 만에 녹음실로 향해 자신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 “모두가 숨을 멈추고” 그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최근 발매한 말로의 새 앨범 ‘송창식 송북’에 실린 ‘우리는’. 1983년 발매한 이 곡은 시간을 뛰어넘어 재즈로 다시 불렸다.

“뜬금없이 헌정앨범을 내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재즈 보컬로의 길에서 대중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1세대와 비교하면 놀랄 만큼 사랑을 받고 있다지만, 재즈의 벽은 여전히 높아 말로는 꾸준히 ‘만남의 순간’들을 만들고 있다.

“음반으로 사람들을 만나려면 조금 더 접점이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늘 해오고 있었어요. 우리가 들어온 옛 노래 중 재즈 어법이 적용될 수 있는 노래들을 건져 새롭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 그 중 하나였어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2010), ‘말로 싱즈 배호’(2012)를 잇는 K-스탠더드 시리즈의 세 번째 작업. 창작 앨범인 6집 ‘겨울, 그리고 봄’(2014) 이후 6년 만의 새 앨범이기도 하다.

한국형 재즈의 새로운 시대를 연 말로는 송창식 헌정앨범인 ‘송창식 송북’을 통해 또 하나의 산을 넘었다. 최근 서울 동작구 노들섬에서 만난 말로는 “이번 앨범은 어려운 재즈에 어떻게 다가서야 하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했다.

재즈 보컬 말로가 오는 7일 경기 고양아람누리에서 정미조, 박주원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날 공연에서 그는 최근 발매한 ‘송창식 송북’도 선보일 예정이다. 박해묵 기자

송창식의 노래를 재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독특한 음색과 아름다운 노랫말이 가진 힘이 강력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선곡부터 녹음에 이르기까지 무려 1년의 시간이 걸렸다. 가장 자신없는 곡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가나다라’, ‘왜불러’…. “너 죽고 나 죽자” 싶은 마음으로 ‘테스트’했다고 한다.

“이번 앨범을 작업하며 송창식 선생님을 목소리가 아닌 송라이터로 바라봤어요. 목소리를 밀어내고, 악보와 만나는 작업을 먼저 시도한거죠. 사실 이 과정에만 3개월이 걸렸어요. 저 역시 선생님의 목소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것을 떼어내고 곡만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악보가 말을 걸고, 그것의 노래가 들리는 순간을 만나게 돼요. 거기에 제 색깔을 입혀가는 거예요.”

22곡의 수록곡은 저마다의 독창성을 가진 곡으로 태어났다. “선생님의 음악을 비틀어보고 싶었어요.” 7박자의 곡으로 풀어낸 ‘가다다라’는 원곡의 독특한 해학이 멜로디 랩처럼 이어졌다. 보사노바의 ‘선운사’, 탱고가 깃든 ‘왜불러’. 스윙을 입은 ‘피리 부는 사나이’ , 블루스의 ‘이슬비’. “‘피리 부는 사나이’는 네 번 정도 편곡을 바꿨고, ‘이슬비’는 조금 다른 종류의 블루스를 하고 싶어 끊임없이 수정했어요.” 모든 곡이 말로가 그린 음악 세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단 한 가지, 원곡의 ‘멜로디’만큼은 변형없이 보존했다. “가능하면 부르자, 적어도 한 번 이상 부르자고 결심해 거의 그대로 불렀어요. 달리 들린다면 그건 리듬과 화성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같은 멜로디라도 옷만 다르게 입힌 거죠.”

가장 큰 난관은 말로의 음악세계와 대중성의 중간 지점을 찾는 과정이었다. “제 음악세계에 갇혀,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작업의 방향이 흐트러지면 안되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것을 양보하면서도, 보여줄 것은 보여주며 중간 지점을 맞추는 작업이었어요.”

재즈 보컬 말로. 박해묵 기자

미국의 옛 노래를 부르는 ‘재즈 스탠더드’의 한국화를 시도한 것은 자기만족형 음악인 재즈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였다. “제가 노래하는 곳이 한국이잖아요. 전 한국말도 엄청 잘 해요.(웃음) 보통 영어로 된 노래를 부를 땐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즉흥을 하기도 해요. 농담을 하면 함께 웃어야 하는데 재즈의 해학과 유머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어로 말을 걸면 그걸 알아듣고 즐거워하는 관객들을 봤어요. 재즈의 한국화라는 것은 사실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거예요. 재즈란 이렇게 해야한다는 벽만 없으면 어떻게든 가능해요.”

‘동백 아가씨’로 전통가요에 재즈를 입히자, 중장년 관객들과 잊지 못할 소통의 순간을 경험했다. “보통 즉흥으로 멜로디를 부르면 관객들이 따라부르지 못하고 그냥 듣고만 계시거든요. 그런데 4분의 5박자로 부른 ‘동백아가씨’에서 떼창이 나오더라고요. 너무나 울컥했어요. 이 노래를 기다려주고 부를 준비가 돼있다는 것을, 순수하게 노래 속으로 들어오는 마음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물리학도였던 말로는 통기타를 치다 재즈의 세계에 접어든 이후 독창적인 재즈 보컬의 길을 걸었다. ‘스캣의 여왕’, ‘목소리 연주자’, ‘한국의 엘라 피츠제럴드’, ‘한국형 재즈 보컬’…. 그를 꾸미는 화려한 말들은 많지만, 정작 말로는 자신의 “음악적 능력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독보적인 재즈 보컬 말로를 수식하는 말들은 많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음악적 능력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다”며 “음악가로의 인생은 끊임없이 나의 스타일, 나의 뉘앙스, 나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박해묵 기자

“끊임없이 나를 테스트하면서, 매일 다른 노래를 부르려고 해요. 노래를 잘한다고 안심한 적이 없어요. 항상 의문을 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생각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앞으로도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몰라요.” 끈질기게 탐구하고, 꾸준히 질문을 던지며 말로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확장해가고 있다. 1세대 재즈 디바 고 박성연(지난 8월 별세)의 뒤를 이어 운영 중인 ‘디바 야누스’는 말로와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적 놀이터다. 이 곳에서 많은 재즈 뮤지션들은 자신의 음악을 찾아간다. 말로 역시 매주 수요일 무대에 서고 있다.

“음악가로의 인생은 끊임없이 나의 스타일, 나의 뉘앙스, 나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종종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절망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자신을 찾아가잖아요. 스타일의 완성은 없어요. 그 과정은 제 삶과 함께 인생 내내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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