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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숨 건 한글 수호자들, 주시경, 이윤재, 한징, 최현배
‘말모이’ 원고, 조선어학회 자취 뒤늦게 보물로
광복 처럼 ‘광문’, 조선광문회 한글수호 터 닦아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말모이 원고’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 등 조선어학회, 조선광문회 회원들의 목숨 건 한글 수호를 위한 다양한 자취 4건을 국가지정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9일 밝혔다.

이윤재, 한징 등은 일제의 고문에 사망했고, 최현배 등 상당수 한글수호자들이 옥살이를 했으며, 주시경 등도 갖은 고초를 당했다.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킨 사람들. 한글수호 열사들은 한글을 말살하려는 일본 제국주의의 총칼 앞에서도 분연히 떨쳐 일어나 한글 사전 등을 체계화했고, 일부 외국인들이 가세해 한영사전 등을 만들기도 했다. 조선어학회 회원 열사, 의사들의 활동모습.

문화재청은 독립운동사료를 포함한 근현대문화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역사․학술적 가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2019년부터 자문회의 등에서 국가등록문화재를 대상으로 이를 검토하였다.

말모이 원고는 학술단체인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주관으로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과 그의 제자 김두봉(1889~?), 이규영(1890~1920), 권덕규(1891~1950)가 집필에 참여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말모이’의 원고다.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오늘날 사전을 의미를 하는 순우리말이다. 주시경과 제자들은 한글을 통해 민족의 얼을 살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말모이’ 편찬에 매진하였다.

조선광문회는 일제가 우리를 무력으로 강제 병합했던 1910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학술고전간행단체로, 최남선(崔南善) 등이 고문헌의 보존과 반포, 고문화의 선양을 목적으로 설립했다.

주시경 선생은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한글의 전문적 이론 연구와 후진 양성으로 한글의 대중화와 근대화에 힘쓴 한글학자. 한글문법을 최초로 정립하였고, 철자법, 한자어의 순화, 한글 풀어쓰기 등 혁신적 활동을 함. 학교 및 강습소에서 한글운동을 펼쳐 많은 제자를 길렀으며, 오늘날의 국어학이 넓게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일제 침략이 노골화되던 1905년부터 국문법을 집대성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겨 198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됐다.

‘말모이 원고’ 집필은 1911년 처음 시작된 이래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1914년까지 이루어졌으며, 본래 여러 책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1책만 전해지고 있다.

‘말모이 원고’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러한 체제가 한 눈에 보일 수 있는 사전 출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원고지 형태의 판식(板式)이라는 점이다.

말모이 원고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뒤 1916년 김두봉이 이 ‘말모이 원고’를 바탕으로 문법책인 조선말본을 간행하기도 했으나, 김두봉이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상해로 망명하고 이규영도 세상을 떠나면서 이 원고는 정식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 편찬으로 이어져 우리말 사전 간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결정적인 디딤돌이 됐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에서 1929~1942년에 이르는 13년 동안 작성한 사전 원고의 필사본 교정지 총 14책이다.

‘말모이 원고’가 출간 직전 최종 정리된 원고여서 깨끗한 상태라면, 이 ‘조선말 사전 원고’ 14책은 오랜 기간 동안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해 지속적으로 집필․수정․교열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손때가 묻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이를 바탕으로 1957년 ‘큰 사전’(6권)이 완성되는 계기가 됐다.

‘조선말 큰사전’의 간행: ‘원고’를 바탕으로 1947년 10월 9일 제1권을 발행한 이후 2권은 1949년 5월 5일, 3권은 1950년 6월 1일, 4권은 1957년 8월 30일, 5권은 1957년 6월 30일, 6권은 1957년 10월 9일 등 모두 6권으로 발행됐다. 이때 1〜2권은 ‘조선말 큰 사전’, 3〜6권은 ‘큰 사전’이라 서명을 붙였다.

1942년 10월부터 1945년 1월까지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 및 관련 인물들을 검거해 투옥하고 재판까지 회부했는데, 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이윤재, 한징은 옥중 사망했고 최현배 등 11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식민지배 상황 속에서 독립을 준비했던 뚜렷한 증거물이자 언어생활의 변천을 알려주는 생생한 자료로서, 국어의 정립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실체이므로 한국문화사와 독립운동사의 매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대표성․상징성이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 ‘말모이 원고’ 및 ‘조선말 큰사전 원고’의 보물 지정 예고를 시작으로, 역사‧학술적 중요성이 널리 인정된 국가등록문화재 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재평가하여 이를 국보․보물 지정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제도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방침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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