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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숙함을 내려놓은 베토벤 탐구자...지휘봉 들고 악성 음악과의 재회
올 연말 지휘자로 ‘인생 3막’ 여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김선욱(32·사진)은 유명한 ‘베토벤 덕후’다. 그의 수사 역시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던 그는 인생을 건 모든 연주에 베토벤과 함께 했다. 그는 진중하고 열정적인 베토벤 탐구자로 불린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는 올해는 김선욱에겐 더욱 특별하다. 김선욱 스스로 “베토벤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말하는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 리사이틀도 계획했기 때문이다.

김선욱에게 베토벤은 익숙한 대상이지만, 이번엔 처음 만난 연인처럼 새롭게 시작했다.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다가섰다. “베토벤이 청각 상실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가 어떤 소리를 상상하며 음표를 적었을까에 대한 부분은 깊게 고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만약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다시 시작했어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았다’. 시작을 위해 많은 것을 비웠다. “그동안 기억하던 음표들을 머릿속에서 모두 지워버렸어요.” 악보를 찬찬히 살펴보고, 베토벤이 적은 음표와 주문들을 베토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과정을 밟았다. 익숙함을 지우고, “새로 채우는 작업을 반복”하자, 음표들은 또 다른 음악을 그려갔다. “모든 음표가 새로 들리고 다이나믹도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새로운 흥분과 놀라움을 느꼈어요.”

전 세계를 묶어버린 감염병으로 인해 베토벤 무대는 두 번이나 미뤄졌다. 김선욱은 지난 3월 중순 열린 스코틀랜드 연주회 이후 모든 일정이 취소됐다고 한다.

“연주가 없어진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스스로 익숙하지 않은, 경험해보지 않은 레퍼토리를 연습할 수 있었어요.”

그 사이 또 다른 출발선 하나도 그었다. 피아노 앞에 앉던 그가 포디엄 위에 선다. ‘공식적인’ 지휘자 데뷔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지휘자’가 꿈이었다고 한다. 2010년 영국 런던으로 유학해 왕립음악원 지휘과에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피아노와 지휘를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피아노와 지휘를 같이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요. 음악이라는 공통점은 있어도 전혀 다른 프로세스를 요구하기 때문이죠. 음악이라는 근본은 같아도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음악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한번에 두 가지를 해내는 어려움에 잠시 미뤄둔 지휘는 30대 초반 다시 도전하게 됐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2015년 본머스 심포니를 깜짝 지휘한 적은 있지만, 정식 데뷔는 아니었다.

그는 “피아노가 ‘작은 우주’라면 오케스트라는 ‘큰 우주’”라고 말한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다른 악기보다 음역대가 크고 화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분석하는 데 이점이 있어요. 하지만 피아노를 잘 연주한다고 해서 지휘를 잘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피아노는 혼자 연습하고 혼자 연주하지만, 오케스트라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휘자는 혼자서 아무 음도 낼 수 없어요.”

꾸준히 자신의 길을 닦아온 김선욱은 이제 더 큰 우주를 향해 도약한다. “연주자가 되기 위해 준비한 과정을 인생 1막이라고 한다면, 연주자가 돼 베토벤을 자주 쳤던 시기는 2막이었어요. 이제 저는 3막에 진입하고 있어요. 3막에선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에요.” 3막의 첫장은 2020년의 마지막 달 열린다. 김선욱에게 가장 바쁜 연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의 듀오 리사이틀(12월 8일·롯데콘서트홀), KBS교향악단과 함께 할 지휘 무대(12월 14일·롯데콘서트홀)가 계획돼있다. 기약 없이 미뤄졌던 베토벤 후기 소나타로 꾸미는 독주회도 예정돼 있다.

“매년 1%씩 발전하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매 연주에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제가 가고 싶은 길로 올바르게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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