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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정책 실패, 규제는 알고 있다
선한 의도? 규제보다 규제의 역설이 문제
사례 무시, 고집으로 밀어붙여 낭패 불러

로베스피에르 우윳값 인상 금지 역효과
주택정책, 각국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최저임금, 비정규직도 규제의 역설 작동
정책은 좋은 의도 아닌 결과로 평가해야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어렵게 규제를 만들어 시행했는데, 오히려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물론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규제들도 있다. 하지만 좋은 규제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규제의 역설을 일으키는 규제 몇 개만 있으면 그 긍정적 효과는 사라진다.”(‘규제의 역설’에서)

#1990년대 대형쇼핑몰의 등장으로 켄싱턴 거리는 쇠퇴일로를 걷고 있었다. 지역상권이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선 지자체는 거리를 깨끗하고 접근성이 좋게 만들자는 데 합의하고, 거리정비에 나섰다. 무엇보다 수많은 교통표지판을 없애기로 했다. 4거리 신호등과 횡단보도 등 반드시 필요한 교통표지판 외에 모두 없애고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가드레일도 없앴다. 그렇게 교통안전 시설물의 95%를 없앤 결과는 의외였다. 당초 지자체는 교통사고가 좀 늘더라도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획기적으로 교통사고가 줄었다. 도시교통규제의 역설이다.

‘규제 천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활동을 옥죄는 규제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저자는 ‘규제의 역설’(페이퍼로드)에서, 선한 의도로 시작한 규제가 어떻게 국민생활을 더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가는지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정부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여러 정책을 만들고 규제를 시행하지만 원하는 효과를 거두는 경우는 드물다. 부작용이 적으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규제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규제가 어떤 효과를 발생시킬지 미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인데, 시행착오를 거쳐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규제의 역설은 성격이 다르다. 일반적인 규제는 효과가 어떨지 처음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규제의 역설은 규제의 결과를 미리 예상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단순히 부작용이 큰 규제가 아니라 해로운 규제라는 것이다. 이미 앞선 실패 사례가 있고 많은 연구도 이뤄져 반대가 심한데도 고집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규제의 역설은 바로 이런 경우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정책이다. 어느 나라나 주택 정책은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루마니아는 1가구1주택을 실현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주택산업이 붕괴하고 주택산업과 연동해 발전가능한 많은 영역이 사라졌다. 사람들의 주거이동도 제한됐다. 클린턴 행정부는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기조하에 수입이 없어도 대출을 제공했다가 글로벌금융위기를 낳았다.

저자는 이를 ‘규제의 역설’로 설명한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국민을 힘들게 하고 경제를 도탄에 빠트렸다

프랑스대혁명에서 급진파인 자코뱅당과 로베스피에르가 수많은 실험적 정책을 추진하다 실패해 결국 단두대에서 끝난 이유도 규제의 역설로 설명이 가능하다.

정의감이 넘치는 로베스피에르는 국민의 삶이 개선될 수 있도록 여러 조치를 취했는데, 그 중 하나가 우유 값 인상 금지였다. 사회적 혼란 속에서 우유값이 계속 올라 국민들이 어려워하자 로베스피에르 정부는 우유값을 싸게 책정하고 그 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사람들을 처벌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가격은 싸졌지만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정부가 정한 가격에 우유를 팔면 적자가 나니까 목장주들이 시장에 우유를 내놓지 않은 것이다. 우유가 시장에서 사라지자 암시장에서 비싸게 유통됐다. 사료값 인상으로 우유가 더 비싸지자 정부는 사료값을 다시 일률적으로 정하고 비싸게 파는 사람을 처벌했다. 그러자 사료를 만들어 팔려는 이들이 줄고 사료가 귀해지자 배고픈 젖소는 우유를 내지 못해 암시장에선 우유가 더 귀해졌다. 결국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고 우유는 물론 우유를 사용하는 빵과 치즈의 가격도 폭등하면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선한 정책이 최악의 결과를 낳은 사례다.

책에는 수많은 사례들이 제시되는데, 외국의 사례 뿐 아니라 최저임금, 비정규직 보호 등 최근 우리사회를 달군 복지우선 규제와 그를 둘러싼 논쟁들을 눈여겨 볼 만하다.

최저임금제의 경우, 분명 노동자들이 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한 제도이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이들에게만 해당하고, 오히려 실업자를 만들어낸다는 건 교과서적 얘기다. 노동자 복지를 중시하는 유럽국가들이 최저임금제를 엄격히 실시하지 않는 것도 바로 월급이 조금 오르는 이익보다 일자리를 잃는 손실이 더 크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의 패러독스다.

비정규직 고용법도 마찬가지다.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을 시행, 2년마다 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토록 했다. 그런데 2018년 KDI가 비정규직 보호법이 노동자 고용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 일자리는 11%증가, 기간제, 파견직 비정규직은 무려 50%가 감소했다. 문제는 전체 고용규모가 3.2%감소하고 기간제, 파견직 비정규직 말고 시간제 비정규직이 10.1%증가했다. 일부는 법이 의도한대로 양질의 일자리로 바뀌었지만 더 많은 비정규직들이 열악한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이동하거나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비정규직 일자리를 없앤 규제의 역설이다.

책에는 골목상권, 전통시장 매출을 감소시키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산학협력을 막는 산학협력법,대학구조조정계획에 참여하지 않아 오히려 이득 본 대학 등 다양한 사례들이 들어있다.

저자는 그동안 만든 규제가 1만 건이 훨씬 넘는데 사회가 좀처럼 살기 편해지지 않는다면 규제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방증이라며, 그 중심에 규제의 역설이 있다고 강조한다. 규제의 역설을 피하려면 좋은 의도보다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규제의 역설/최성락 지음/페이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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