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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주여행 버라이어티, 왕의 별궁에서 버스킹·수상레저까지
느림과 품격의 도시에서 소프트파워 강화
버스킹, 예술인유치, 레포츠, 생태물놀이 확충
도심엔 3500년 역사흔적, 마한사 복원팀 출범
서울 닮아 작은 서울...왕의 별궁도
사극촬영지 고구려성 파크도 볼거리
나주호관광지 발코니에선 절경이 병풍처럼

[헤럴드경제=함영훈 여행선임기자]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와 사직(社稷)을 지키는데 전라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장병들의 결기를 다지면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전라(全羅)도라는 이름을 만드는 두 도시 중 한 곳이 나주다. 즉 나주는 호남의 대표였던 것이다. 기원전후 마한제국 2000여년 고도(古都)이자, 고려~조선 1000년간 남도 중심도시, 왕의 별궁(금성관)이 있는 품격의 도시였다.

나주에서 영산강은 천천히 흐른다. 품격과 느림은 이렇게 통하는 것일까.

동쪽 대초천 물이 나주평야에 물 대는 예비군으로서 나주호에 머물러 병풍같은 기암벽석을 매만지며 느리게 흐르고, 도시 한복판 영산포구를 지나, 서쪽 느러지전망대 ‘S라인’ 곡류에 다다르면, 나주의 느림은 절정에 이른다. 천천히 대지를 적셔 물산이 풍부해지자, 광역단체장 나주목사로 가고싶다고 당상관들이 너도나도 기웃거렸다고 한다.

나주목은 수도 아닌 곳의 전각으로는 유일하게 임금 주재 행사 연단 ‘월대’를 갖추고, 나라의 기틀 ‘사직단’을 곁에 둔 금성관이 자리잡은 곳, 풍요로운 남도 산물이 모이는 곳으로, 정치·경제 위상이 모두 높기 때문이다.

▶서울 빼닮은 작은 서울= 나주는 ‘작은 서울’(小京)이다. 금성산은 북한산을, 금성관은 경복궁을, 영산강은 한강을 닮았다. 나주천은 청계천과 조응하고, 나주 남산은 아예 이름까지 같다.

수천년 역사의 중심지, 느림의 미학을 중시하는 품격 도시, 나주가 최근 소프트파워를 도모하면서 역동성을 기하고, 문화예술을 키우고 있다. 사진은 나주호 수상스키 모습.

과속단속기를 참 많이 달아놓기 까지 하면서 ‘느림의 도시’임을 시위하고, 짐짓 여유와 품위를 중시하던 나주가 근년들어 소프트파워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웃 고을 누가 자기 동네 특산물 자랑하면, “예전엔 다 그것이 나주 것이었어”라며 자존심 가득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랑하거나 재미나는 일을 도모하지 않던 그들이었다. 물론, 찬란했던 마한과 나주 역사를 지우고 감추던 여러 외지 세력들에 대한 오랜 반감이 체념으로 바뀐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안치환은 ‘영산강’을 부르며 ‘소리없이 숨죽여 울어 볼거나’ 했지만, 이제 나주사람들은 그 반대로 국민과 함께 맘껏 웃기로 한다.

영상강은 나주에서 느리게 흐르며 대지를 촉촉히 적시고, 물산을 풍부하게 한다.

▶‘품격 나주’의 끼부림= 산하(山河)는 여전히 느린데, 2020년 나주 청년 부터 586세대 까지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주호 바나나보트, 빛가람공원 버스킹의 비트처럼 빨라지고 있어 주목된다.

나주시는 최근 베일에 가려진 청동기~6세기, 최소 2000년의 마한사 복원팀을 출범시켰다. 왜곡되고 감춰진 역사의 잔상을 혁파할 도전이다.

서쪽 동강면 느러지 전망대 일대엔 자전거길을 연결했다. 빛가람 호수공원 버스킹, 시민오케스트라를 출범시키고, 예술인 레지던스를 마련했으며, 금성산에 생태물놀이장도 열었다.

동쪽 나주호 주변, 산책로와 삼림욕장, 드들강솔밭, 메타세콰이어길, 화지 홍련마을 등지에 거리두기 트레킹족들이 부쩍 늘어난 가운데, 수상레저 바이퍼, 바나나보트, 웨이크보드에 몸을 싣고 물위를 질주하는 청춘들과 가족여행자들의 환성, 중흥골드레이크 CC의 경쾌한 티샷 소리가 장판 같은 나주호의 정적을 깬다.

영산강 활포돛배의 낭만, 실물보다 더 실물같은 고구려성 나주영상테마파크의 담대한 인생샷이 한낮의 나주를 장식한다면, 밤엔 호수로77 빛가람 전망대가 멋진 영산강변 야경을 만들어낸다.

나주 서쪽 느러지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한반도지형

▶느림의 절정 동강 S라인= 나주 서쪽을 동강이라 이름 붙인 것은 영산강 S라인의 절반인 서쪽 무안을 의식한 화합의 명칭으로 보인다. 시군은 달라도 한고을이라는 의식이다. 나주쪽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닮은 곳, 느러지 마을은 무안 구역인데, 무안 연징산에서 나주 옥정리쪽으로 보면 또 하나의 한반도가 있다. 담양댐에서 나주를 거쳐 목포 하구까지, 133㎞ 영산강 자전거길 중 ‘느러지 S라인’ 8㎞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나주를 차지하는 자 통일에 성공했다. 근처엔, 왕건이 견훤에 밀리던 중 예지몽 덕에 동강에서 영산강 너머로 은신했던 몽탄(무안)과 왕건 군사들이 쉬었던 옥룡산(나주)이 있다. 한편으론, 견훤이 전열을 재정비한 왕건 군대에 패퇴한 뒤 장병들을 달래며 아침식사를 했던 ‘식전바위’가 있다. 고구려를 계승한 ‘Korea(고려)’라는 새 시대, 한민족 재도약의 족적은 황후의 고향 나주에 새겨졌다.

영산강 왕건호·황포돛배 유람선의 구수한 해설이 기가막히다.

영산강을 따라 시내로 들어오면 영산동 등대길에서 황포돛배·왕건호 선착장을 만난다.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에듀테인먼트 유람이다. 시간여행을 떠나는 동안 해설사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맛깔스럽다. 예전의 선창가는 지금 홍어거리, 영산포 홍어축제장으로 변신했다. 흑산도 것이라도 1000년 동안 나주목 것이었기에 ‘남도’의 것이라는 대승적 마음으로 콧속이 시원해지는 홍어 식도락을 즐긴다.

나주영상테마파크의 고구려성

▶“누구냐 넌” 고구려세트장의 위엄= 역사·문화 배우기가 즐거운 곳은 고구려 기상이 숨쉬는 나주 영상테마파크와 정관채 선생의 천연염색전수관이다. 국립나주박물관과 염색박물관은 현재 휴관중인데, 이달하순 재개관을 검토중이다.

영상테마파크에선 ‘주몽’, ‘태왕사신기’, ‘이산’, ‘천추태후’, ‘일지매’, ‘바람의나라’, ‘왕은 사랑한다’ 등이 촬영됐다. 고구려왕궁과 요새 등 기와집 50전각, 초가 23개, 너와집 17개, 기타5개 등 집만 해도 95개나 된다. 한참을 걸어 큰 대문 3개를 지나야 왕궁에 도달하는데, 금방이라도 무장한 장졸들이 나타나, “누구냐, 넌” 할 것 같다. 성벽 위에 오르면 영산강과 나주평야, 천촌만락이 내려다보이고, 강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준다.

나주는 영산강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지점이라 염색 원료인 쪽을 재배하기에 적합했다. 다시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정관채 염색장의 전수관에서 다양한 염색미학을 접할 수 있다.

정관채 염색장 전수관의 염색미학
나주에 거점을 둔 마한은 독자적인 디자인의 금동관을 개발했다. 신촌리고분 출도 금동관 국보 295호

▶왕건에게 버들잎 띄워준, 그 사건= 나주 도심은 3500년 역사의 흔적과 곰탕집이 많다. 문화재청과 조영미 나주해설사에 따르면, 이곳은 일찍이 돌창, 돌도끼, 석검, 돌화살촉 등 석기유적이 발견됐고, 마한연맹의 으뜸인 불미지국이 터잡았다. 식민사관의 잔재가 남은 현행 역사교과서는 마한이 4세기에 멸망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광개토왕비문, 중국 양나라 기록, 반남고분군에 대한 문화재청 주석은 마한이 6세기 초까지 건재했음을 일러준다.

200여 기 고분, 여기서 발굴된 25.5㎝ 높이 금동관, 용머리장식, 유리구슬은 중요한 방증이다. 금동관의 디자인은 독자적이고, 5~6세기 무렵 유리구슬은 금값의 10배가 넘었다. 묻힌 분들이 왕과 왕실가족이 아니라고 할 증거가 없다. 그 기록을 누가 없앴나.

유적과 기록 말살로 신음하던 마한의 맹주 나주는 비록 성에 차지는 않지만 고려개국과 함께 남도의 거점으로 부활한다.

시청 인근 완사천에서 목마른 장수 왕건에게 물을 떠주며 버들잎을 띄워줬던 나주 여인 오씨 부인이 왕건과의 사이에서 고려 2대왕 혜종을 낳으면서 나주 위상이 강화돼 고려 제2궁 대우를 받고, 구한말까지 1000년간 호남거점이 된다. 임진왜란때 의병활동이 맨 처음 시작된 곳, 광주학생독립항쟁의 진원지, 호국의 거점이기도 했다. 나주목사 이복남 등이 사즉필생 충무공에게 힘을 보탰다.

금성관이 있는 중심가에는 나주곰탕집이 여럿있다. 나주하면 배와 곰탕이 유명한데, 의외로 나주엔 곰탕집이 많지 않아 어느 곳이든 긴 줄이 늘어서있다. 오랜 세월 곰탕했던 집들의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더 많은 곰탕집을 신설하지 않은 듯 하다.

역사공간재생을 통해 체류형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3917마중’의 작은 음악회

▶1박2일 체류형 역사재생 문화공간 ‘3917마중’= 금성관과 나주읍성이라는 고색창연한 중심가엔 역사공간을 청춘들의 체류형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곳이 있다. 버스킹이 펼쳐지고 청춘의 재잘거림이 넘친다.

100년 전 전라도의 중심이었던 나주읍성 사적지구내 우수한 역사성과 건축성을 가진 4채의 폐가 고택을 포함한 4000평의 슬럼공간을 탈바꿈시킨 것이다. 복원과 보존, 고증이 먼저였고, 이 토대 위에 스토리 자원들을 관광 콘텐츠로 승화시켰다.

등록문화재 지정 예정인 목서원을 활용해 1930~40년대 나주 근대 문화 콘텐츠를 부활시키면서도 도심속 힐링공간으로 만들었다. 낮엔 고택 마루위 정담, 밤엔 작은음악회·버스킹이 참으로 평화로운 곳이다.

남우진 대표는 “고택에 얽힌 스토리처럼 3917마중과 목서원을 상징하는 고목들의 고전적 가치를 기반으로 정원마다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지고 역사적으로 더욱 의미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청년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갤러리와 작업공간 등을 넓은 정원을 활용하여 인프라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려~조선 왕의 별궁 금성관

▶잘 노는 나주, 2020년형 품격= 도시 중심부를 지나, 동쪽 나주호 관광단지로 가기 전, 꼭 들러야 할 곳은 빛가람전망대, 드들강솔밭, 전남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콰이어길이다.

전남삼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콰이어길

연구소엔 팔각전망대, 종합놀이대, 치유숲길 등 놀터가 많은데,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가운데에 서면,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 고려 왕이 된다. 지석강의 또다른 이름 드들강 솔밭은 가족들의 천국이다. 나주출신인 안성현 작곡가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노래비가 있어 더욱 정겹다.

시는 나주레저의 핵심으로 나주호관광단지 내 중흥골드스파&리조트를 꼽았다. 드넓은 나주호와 기암벽석을 발코니에서 조망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다가도 불현 듯 쾌속·스릴의 레포츠를 즐기는 곳이다.

‘나주 레저’의 허브, 나주호관광단지 내 중흥골드스파&리조트 발코니에서 보이는 나주호 주변 기암벽석

지난해 문화·관광·예술 분야 발전을 추진한 강인규 나주시장은 “금성산, 남평 식산, 영산포 가야산을 생태문화관광자원 벨트화하고, 영산강 생태 복원과 연계해 금성산 국립공원화의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히딩크 처럼 아직 배가 고파, 대한민국 역사·문화·레저의 대명사가 되도록 더 많은 아이디어를 모으겠다는 것이다.

품격의 도시 나주가 호남의 중심도시 답게 국민 사랑을 받기 위해 2020년 여행·레저·대중문화의 끼를 부리는 것은 무죄다. 잘 노는 것은 2020년형 품격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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