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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하지 못한 5·18의 진실
‘재현에서 성찰로’, 5.18항쟁 다시 읽기
40년 사실규명 급급, 인문학적 사유 필요
열린 텍스트로서 5.18, 중립적 호명 제시
최정운 교수, 광주 '절대공동체'의미 조명
하나된 광주의 핵심은 ‘혁명’ 아닌 ‘사랑’
여성 경험자 등 다양한 목소리 되살려야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관람객이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5·18민주화항쟁이 올해로 40주기를 맞았지만 여전히 사실규명에 갇혀 의미화 작업은 더딘 게 현실이다. 5·18을 재현하는 데서 나아가 그 의미를 다각적으로 들여다보는 인문학적 성찰이 이젠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나 아렌트가 1961년 홀로코스트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악의 평범성’에 닿았듯이, 5·18을 사유하고 성찰함으로써 의미를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특정 집단에 의해 점유되고 신화화하는 5·18이 아닌 무한히 열린 인문사회학적 텍스트로 읽는 일에서 시작된다.

김형중 조선대 교수와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엮은 ‘무한텍스트로서의 5·18’(문학과지성사)은 이런 작업에 초석을 놓는다. 이들은 이를 위해 ‘항쟁’‘민주화운동’ 같은 5·18을 규정하는 개념 대신 ‘5·18’ 이란 중립적인 명명을 내세운다. “5.18은 이제 사실의 영역을 넘어 인문학적 질문과 응답의 대상이 되었으며, 하나의 이념과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하고 개별적인 진실의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논지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2012년 ‘오월의 사회과학’에 수록된 최정운 교수의 ‘저항의 논리’는 오월 광주의 참 의미를 들여다보는 좀더 유연한 창을 제공한다. 최 교수의 분석은 5·18의 동기와 주체를 혁명과 민중으로 보는 기존의 시각과 좀 다르다. 그는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의 가슴 뜨거운 경험을 ‘절대공동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너와 나,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구분이 없는 절대 평등한 황홀한 순간을 경험한 것. 공수부대의 야만적 폭력에 의해 신체가 파괴되는 걸 목격한 시민들이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자 모두 하나된 것이다. ‘민중’의 등장은 이후다. 투쟁의 주체로 애초 존재한 게 아니라 절대공동체 형성의 산물이었다고 본다. 절대공동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절대공동체가 국가 권력 비슷한 걸 갖게 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21일 공수부대가 시 외곽으로 철수하고 폭도와 반역의 도시로 몰아가는 와중, 해방광주는 괴로운 선택의 시간으로 해석된다. 광주의 뜨거운 가슴의 기억, ‘바람의 진실’과 황폐화할 고향이란 삶과 진실의 선택 앞에서 일부라도 확보하는 선택을 했다. 수백 명의 젊은이를 희생의 제단에 올리는 대신 시민들의 욱체적 삶을 얻는 제3의 선택으로, 광주의 영혼을 말살하고 그들의 치부를 영원히 가리려는 군부로부터 마침내 승리를 빼앗았다고 평가한다.

최 교수는 그러나 젊은이들이 목숨바쳐 지키려했던 절대공동체의 경험 ‘바람의 진실’은 이후 정치지형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펑가한다. 적과 아를 구분하는 정치의 본질을 경험하면서 “조직절대주의와 절대적 지도자를 옹립하고 그에 복종하는 운동권의 관행”이 이때 생겨났을 것으로 본다. 운동권이 얻은 조직 절대주의 교훈은 사실 5.18의 왜곡이라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이다. 절대공동체에는 조직도 없었고 지도자도 없었으며, 모든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그 핵심은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5·18 광주의 기억에서 여성의 체험이 망각된 주체의 문제를 살핀 김영희 연세대 부교수의 ‘5·18광장의 기억과 여성의 목소리’는 5·18에 여전히 미답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김 교수는 기억의 사회적 구성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국가폭력에 관한 한 5·18은 가장 많이 기술되고 사회적 기억에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목소리는 소외되고 주변부화됐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서술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폭력이 전시되는 장소, 혹은 폭력을 증거하는 재현 대상으로 치환”됐다는 것이다. 여성의 기억을 구술화하는 작업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워진 존재를 가시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5·18 도청 앞 광장의 사진에는 시민들 가운데 대부분이 여성들이었음을 지적하며, 40년간의 침묵은 국가폭력이 그 시간 만큼 지속됐음을, 군부독재가 종식된 이후에도 이들의 말문을 막은 폭력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특히 이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우리 사회 담론장 내에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제 말할 수 있다는 건 2018년 미투운동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도래하(지 않)는 5·18’은 당시와 이후 5·18의 참상을 호명하는 폭력적 언어들에 다가간다.

의례처럼 부르는 ‘5월의 노래’의 노랫말 속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의 성정치학, 도서관 앞에 전시된 훼손된 육체들의 사진의 시각적 폭력에 작가는 재현된 것과 진실의 거리를 사유한다. 작가는 5·18을 규정하는 언어들로 육박해 들어가며 무게에 짓눌린 틈을 벌여놓으려 하는데, 5·18은 다만 국가의 사건이거나 민중의 사건인지, 5·18 증언의 주체는 누구인지 등을 따져나간다. 예컨대, 5월27일의 마지막 밤, 소중한 역사를 증언해줄 이들은 죽거나 증언을 부탁받은 살아남은 자들, 여자들은 차마 부끄러움과 죄의식 때문에 말하지 못한다. 구술의 언어, 시의 언어들은 말할 수 없는 자, 쓸 수 없는 자의 언어를 대신 기록하는 것으로,“5·18의 정치적 잠재성은 등기되고 의미화된 언어들이 아니라 아직 말하지 못한 미지의 언어들 속에 있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기억을 둘러싼 부끄러움의 문제, 국가주의를 넘어서 5·18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글 19편의 글은 5·18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무한텍스트로서의 5·18/김형중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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