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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의 방주’에 올라탄 남도 ‘진미’를 만나다
소멸 위기 음식·식재료·종자 등 선정·보존
현재 전세계 83개국 1300개 품목 등재
장흥돈차·칠게젓·감태지·김·대갱이 등
국내 103개 품목 중 남도 산물이 25개 차지
“오랜 전통·역사 가진 남도 식문화의 방증”
2017년 맛의 방주에 오른 칠게젓은 남도의 밥도둑으로 꼽힌다. [담희전통음식연구소 제공]
‘장흥돈차’는 2013년 남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맛의 방주에 오른 먹거리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제공]
2015년 선정된 전통적인 지주식 방식으로 생산한 지주식 김.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제공
2018년 맛의 방주에 등재된 대갱이는 서식지가 줄어 사라지는 먹거리 중 하나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제공]

축복받은 ‘천혜의 환경’으로 발길마다 산해진미가 넘쳐나는 남도 지역은 우리 식문화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 지역 사람들은 미처 알지 못하는 토종 식재료와 이를 바탕으로 일군 식문화는 남도 맛의 토대가 됐다. 그만큼 남도 식재료와 음식은 ‘맛의 방주’에도 많이 올라있다.

맛의 방주는 슬로푸드국제본부가 세계 고유의 음식문화를 지키기 위해 1996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다. 소멸 위기의 음식과 식재료, 종자 등을 선정하고 보존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남도 지역의 토종 식재료 보존을 위해 활동 중인 김은규 전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전남연합회장은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어느 음식이든 모두 귀하지만, 최근엔 환경오염, 식문화의 변화 등 다양한 이유로 많은 식재료와 종자들을 잃어가고 그로 인해 조리방법이 사라지고 있다”며 “‘맛의 방주’는 생물 다양성 감소를 막고, 우리 먹거리가 잘 지켜지고 오래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맛의 방주에는 전 세계 83개국에서 1300여개의 품목이 등재돼있다. 우리나라에선 103개, 남도 지역에서 25개가 등재돼있다. 이 지역의 식재료와 음식이 스무가지 이상 등재된 것은 남도에선 워낙에 향토음식이 발달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 이수자인 임영란 담희전통음식연구소 대표는 “산간, 해안, 내륙으로 이어지는 남도 지역은 군마다 향토음식이 발달했다. 그 지역을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많았다”라며 “지금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지만 독특한 젓갈 등이 명맥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맛의 방주’에는 전라도 전역에 걸쳐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들이 선정됐다. 각 식재료와 음식은 남도 식문화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담고 있다.

▶ 남도 최초의 ‘맛의 방주’ 2013년 장흥돈차=남도 지역 최초의 ‘맛의 방주’는 전남 장흥 지역에서 마신 전통 발효차인 ‘장흥돈차’다. 돈차는 서민과 상류층을 아우르며 이어져온 우리의 전통차다. 고려 때에는 진상품으로 오르기도 했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에 따르면 돈차를 부르는 이름이나 건조방법, 차를 우려내는 도구, 마시는 방법은 집집마다 다양하다. 장흥에선 자생 찻잎을 5월경에 채취해 하루 정도 말린 후 가마솥에 넣고 쪄서 ‘장흥돈차’를 만든다. 찐 찻잎을 절구에 빻아 동그란 덩어리로 만들고, 햇볕에 건조한 후 가운데 구멍을 뚫어 여러 개의 볏짚으로 꿰어 처마 밑이나 비가 들지 않는 야외에 걸어 둔다. 그런 다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말려 발효하면 차가 완성된다. 보통 6개월 이상 숙성한 후 마시는데, 숙성시간이 길수록 깊은 맛과 향이 일품이다. 당연히 가치도 높아진다. 길게는 20년간 숙성을 하기도 한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측은 “돈차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차나무 대부분이 불타 사라졌고, 1930년대 일본 문화 유입과 함께 녹차가 들어오면서 급격히 쇠퇴했다”며 “장흥의 젊은 다도인들이 다시 복원해 맛의 방주에 등재됐다”고 설명했다.

2014년엔 먹시감식초, 토하, 담양토종배추가 등재됐다. 먹시감식초는 토종감인 먹시감을 전통 방식으로 만든 식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먹시감식초를 생산하는 곳이 정읍에 있다. 금계식품 임장옥 대표가 전통의 방식을 고수해 농림식품부로부터 국내 최초 감식초 식품명인 지정을 받았다.

전라도에선 ‘생이’, 혹은 ‘새비’로 부르는 민물새우 토하는 1급수에서만 서식한다. 3개월간 염장처리해 숙성한 뒤 찹쌀,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을 배합해 만드는 것이 토하젓이다. 토하는 맑은 물에만 살 수 있어 농약 등으로 인한 토양과 수질오염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 2015년 감태로 만든 김치 ‘감태지’, 친환경 양식 ‘지주식 김’=2015년엔 여덟 가지 식재료와 음식이 ‘맛의 방주’에 올랐다. 감태지, 낭장망멸치, 지주식 김, 파라시, 황포, 보림백모차, 마름묵, 제비쑥떡 등이다.

그 중 전남 완도 지역의 감태지는 겨울 해조류인 감태로 만든 김치다. 감태는 매생이보다 굵고 파래보다 가늘며 녹색인 것이 특징이다. 감태의 채취 작업은 단순하지만 까다롭다. 뿌리는 남기고 끄트머리만 거둬 올려야하는 예민한 수작업이 주를 이룬다. 최근 어촌의 노동력 부족과 환경오염은 감태지가 사라져가는 이유로 꼽힌다.

지주식 김은 ‘해태’로 불리는 해조류 김을 전통적인 지주식 방식으로 생산한 김이다. 김 본연의 맛과 향을 그대로 유지하는 친환경적 양식법이다. 자연산 김과 가장 유사한 맛을 낸다. 제비쑥떡은 사실 생산과 보급 주체도 명확하지 않은 사라진 음식이다. 제비쑥으로 만든 떡인데, 전남 나주 지역에선 최소 100여년 전부터 ‘제비쑥’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에 따르면 나주 지역에선 ‘귀한 것으로 떡 중 가장 맛있는 떡’으로 기억되고 있다.

▶ 2017년 ‘밥도둑’ 칠게젓, 고종에게 진상한 ‘고종시’=2017년엔 칠게젓갈을 비롯해 고종시, 우슬식혜, 꼬마찰, 남도장콩, 갓끈동부, 바위옷 등 총 7가지가 등재됐다.

남도 맛을 대표하는 발효 문화는 다양한 종류의 젓갈을 만들었다. 그 중 칠게젓은 전북 고창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고창 자염을 생산하는 사등마을에선 예부터 갯벌에서 칠게를 잡아 갈아서 밥반찬으로 먹었다.

임영란 대표는 “확독(음식물을 갈던 둥그런 절구통)에 미세하게 갈아서 고추, 마늘 등 각종 채소 양념을 넣고 사나흘 숙성하면 완성된다”며 “칠게젓은 입맛을 돋우는 밥도둑으로 불렸다”고 말했다.

고종시는 고종 임금에게 진상해 극찬을 받았다는 토종감이다. 전북 완주의 고종시곶감은 자연건조를 고집하는 데다, 현재 생산 농가가 500여 곳이 남아있다. 식혜는 흔하지만 전북 고창 지역의 우슬식혜는 조금 특별하다. 무릎 아픈 데에 특효가 있어 ‘쇠무릎’이라 불리는 약초 우슬을 달인 물을 넣어 만든 것이 바로 우슬식혜다.

바위옷은 바위가 옷을 입은 것처럼 붙어있어 ‘바위옷’으로 불리는 해초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이 식재료는 척박한 환경에서만 자란다. 전남 신안 사람들은 바위옷의 뻣뻣해지는 특성 때문에 묵을 만들어먹었다. 일반적인 묵보다 쫄깃하고 단단한 데다 바다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 2018년 서식지 줄고 있는 대갱이와 바다 식재료=2018년엔 대갱이를 비롯해 강굴, 쥐치, 명산오이, 영암어란, 신안토판염 등이 올랐다.

대갱이는 갯벌에 서식하는 어류다. 다소 기괴한 모양이지만, 서민들의 술안주로 사랑받았다. 순천, 벌교 등 잡히는 지역도 한정적이고, 양식을 시도한 적도 없다. 아귀처럼 못생긴 외모로 외면받았으나, 요리법이 개발되면서 부잣집 별미로 격상된 식재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는 갯벌 간척사업으로 대갱이 서식지가 줄어들며 생산량도 줄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적으로 어란은 임금님께 진상된 고급 음식이다. 숭어알을 통째로 말리고 참기름에 절여 만든 어란은 따로 조리하지 않고 그대로 상에 올라온다. 형태와 제조법이 변하지 않고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고유음식이다. 전남 신안 지역에서 생산되는 토판염은 흙, 갯벌에서 소금을 만든다는 뜻에서 토판염으로 불린다. 갯벌을 평평하게 다진 결정지에서 천일염 제법으로 소금을 생산한다. 갯벌에서 생산해 무기질 함량이 많은 것이 특징. 때문에 소금의 짠맛이 덜하고 특유의 감칠맛을 낸다.

김은규 활동가는 “남도 음식을 이야기할 때 바다 음식을 빼놓을 수 없는데 최근 바다 환경이 많이 안 좋아져 전통 음식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해양오염, 무분별한 간척사업으로 인한 갯벌 감소 등이 원인이 되고 있어 맛의 방주 등재 추진에 더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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