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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바로보기] 코로나19로 본 ‘일본인’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대하소설 ‘대망(大望)’은 혼란한 전국시대와 메이지유신(1868년)을 거쳐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 근대사를 인물 중심으로 그려낸다. 작가 시바 료타로는 ‘국가 위기 시 일본인의 약삭빠른 의식 전환 능력’을 작은 섬나라가 단기간에 국력을 키운 원동력으로 꼽았다.

세계 대재앙으로 불리는 코로나19의 위기 대응을 보면 국가별 특성이 나타난다. 올 초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일본의 방역은 느리고, 순발력이 떨어졌다.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막판까지 고집을 피우다가 3월 25일에야 연기 결정을 내렸다. 아베 총리는 긴급사태 선언을 이달 7, 16일 두 차례 단계적으로 실시했다. 외출 자제 조치도 강제력이 없다. 시민들의 동참을 요청하는 정도다. 마스크 배포나 긴급재난 지원금을 둘러싸고도 우왕좌왕했다. 전 국민에게 두 장씩 배포한 마스크는 품질이 조악해 제조강국이 맞느냐는 조롱이 쏟아진다. 부족한 소독액이나 방역용품도 복잡한 인허가 절차 탓에 수입하려면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코로나19에 이처럼 둔감하게 반응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인은 자연순응적이어서 코로나에 무리하게 저항하지 않는 듯하다. 한국처럼 바이러스를 강력히 제압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올림픽 개최에 미련을 두다가 긴급사태 선언이 계속 늦어졌다. 전통적인 지방분권체제도 방역활동에 걸림돌이 됐다”는 게 일본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2차세계대전 전후 ‘일본인’을 파헤친 미국 사회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국화’와 ‘칼’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일본인들의 두 가지 극단적 성격을 들춰냈다. “일본인은 누구보다도 싸움을 좋아하는 동시에 유순하며,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다.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뛰어나다.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은 재빨리 받아들인다”고 분석한다.

재일 경제학자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일본인의 특성을 ‘깊고 좁게’ ‘아날로그’ ‘축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알 듯하면서도 전체 이미지가 확실히 잡히지 않는 게 일본”이라며 “기술, 자본, 지식이 많이 축적된 나라이지만 환경 변화에 느리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는 일본인의 ‘이중성’ 가운데 약점이 더 많이 작용한 듯하다. 예측 못한 큰 위기 상황에도 차분하고, 주위에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집단 우선 성향의 배려심이 오히려 감염 확산을 키웠다. 기존 제도나 관습을 잘 바꾸지 않는 전통 중시 기질과 외부인에게 ‘속마음(혼네)’을 감추려는 ‘폐쇄성’이 정체를 모르는 ‘바이러스’ 공격에 허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평소 변화에는 느리지만, 국가적 위기라고 판단되면 혁명적 전환을 해온 사례가 종종 있다. 도쿠가와막부시대에서 메이지유신이 나타났고, 2차대전 패전과 함께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탈바꿈했다. ‘코로나 사태’는 일본에 대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아베 총리의 8년 장기집권이 막을 내릴지, 아날로그식 일본인들이 4차산업혁명에 본격적으로 나설지가 관전 포인트이다.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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