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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이해찬 금지법’ 내로남불이냐, 회한 담긴 고육책이냐
이 대표 “탈당 후 무소속출마로 당선돼도 복당 불허”
민주당 공천반발 후유증 커지자 특단구상 내놓은 듯
그러나 이 대표 본인이 정작 ‘20대 공천 불복자’ 경력
“본인은 되고 남은 안되나” 내로남불 발언으로 뒷말
이준석 “죄송한데 4년전 무소속 출마 벌써 잊으셨나”
이런 가운데 ‘공천 불복의 정치학’ 새삼 정가 화제로
與도 野도 ‘무소속 출마’ 봇물…4ㆍ15총선 영향 촉각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고위전략회의에 이해찬 대표(왼쪽)가 참석하고 있다. [연합]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냐, 아니면 조금은 창피를 무릎쓴 공천잡음 반복 역사 근절을 위한 고육책이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 한마디가 이런 두 시각을 낳고 있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 16일 오후 당 고위전략회에서 “(총선) 출마 준비를 하다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엔 영구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내용은 회의 직후 강훈식 당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공천에서 탈락했다고 해서 이에 불복해 당을 뛰쳐나가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해 당선되더라도 당으로 영구적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강 수석대변인은 이에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공천받지 못해 당을 떠나 무소속 출마하는 경우 복당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야 지금 (공천을 받고) 지역구에 나가있는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당헌·당규에 이 대표의 말을 실행할 수 있는 ‘영구제명’ 항목은 없다. 그래서 이 대표는 필요하다면 당헌당규를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강 수석대변인은 “(당규에 관련 항목이 없다면) 이후에 보완할 수 있는 문제로, 보완할 게 있다면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의중을 그렇게 설명한 것이다.

이 대표의 이 말은 4·15총선 공천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공천 불복과 함께 무소속 출마로의 이탈이 러시를 이루자 고육책으로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삼척동자라도 알수 있을 일이다. ‘공천 불복을 하면 무소속 출마해서 당선이 된다 하더라고 당으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게 민주당에서 당헌당규로 확정되면 아마 이는 훗날 ‘이해찬 금지법’으로 불릴지 모를 일이다.

다른 당 얘기를 거론해서 좀 뭣하기는 하지만, 이런 ‘이해찬 금지법’이 미래통합당에서 통용된다면 양산을 컷오프(공천배제) 후 이에 불복해 대구 수성을 출마 채비를 하면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나중에 당으로 돌아가 공천협잡꾼들에 앙갚음을 하겠다”고 선언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같은 사례는 반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문제라기 보다는 일종의 아이러니다. ‘탈당→무소속 당선→당 복귀 불가’를 못박은 이 대표가 바로 탈당과 함께 무소속으로 당선됐고, 그리고 당에 복귀해 당 대표까지 역임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과 함께 그것이 뒤따를 것을 감수하면서도 회한(후회하고 한탄함)의 자성 속에 고육지책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컷오프됐다. 세종시에서의 ‘7선’의 꿈은 멀어지는 듯 보였다. 이번 총선에서 컷오프된 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마찬가지 신세였다. 이 대표가 택한 것은 ‘불복’이었다. 당시 민주당 공관위는 하위 50% 분류된 3선 의원을 대상으로 2차 컷오프 심사를 했고, 이 대표를 그 리스트에 넣은 것이다.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공천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이에 대한 반발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대표는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이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컷오프된 것에 대한) 이유와 근거가 없으며 도덕성이든, 경쟁력이든, 의정활동 평가든 합당한 명분이 없다”고 절대로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 이해찬은 불의에 타협하는 인생을 살지 않았으며 잠시 제 영혼 같은 더민주를 떠나려고 한다”고 했다. ‘잠시’라는 말에서 보여지듯이 무소속 당선 후 당당하게 당으로 돌아가겠다고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대표는 어쨌든 세종시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그리곤 당으로 돌아와 우여곡절 끝에 현재 당 대표를 하고 있는 것이다. 탈당 후 무소속 당선으로 세종시에서 명예회복을 한 후 정확히 6개월만에 민주당에 복당한 것이다. 이런 ‘탈당→무소속 출마→당선→컴백’이라는 영광의 개인 투쟁사, 나쁘게 말하면 주홍글씨를 안고 있는 그가 스스로 자신의 과거와 역행하는 ‘이해찬 금지법’을 내놨으니 정가에선 여러가지 시각이 뒤따르는 것이다. 정가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뉜다. “뻔뻔하다”는 것과 “자기반성을 통한 고육책”이라는 것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본인은 공천에 불복해 탈당하고 돌아왔으면서 남들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해찬 답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인사는 “스스로 부끄러울 수 있는 과거 행적이 다시 화제에 오를 수도 있는데, 공천불복의 잡음이 얼마나 크면 오죽하면 그렇게 해서라도 공천승복의 여당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싶다”고 했다.

야당에선 당연히 비판이 나왔다. 이준석 미래통합당 노원병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대표의 말을 전한 뒤 “죄송한데 4년 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신 것 같은데, 그걸 벌써 잊으신 건지요”라고 꼬집었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회의에 이낙연(오른쪽) 위원장과 이해찬 당 대표 등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이 대표가 거론한 ‘이해찬 금지법’ 배경은 이번 총선에서의 위기감과 관련이 큰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의 공천불복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래통합당 만큼이나 민주당 역시 공천반발로 인해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서울 동대문을 현역으로 컷오프된 민병두 의원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이번주 내 탈당을 예고했다. 강원 원주갑에선 이광재 전 강원지사의 공천이 결정됐지만, 권성중 전 원주갑 지역위원장이 이에 반발해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준비 중이다. 충북 청주 서원 현역으로 공천배제된 오제세 의원 역시 무소속 출마를 예고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습공천’ 논란과 함께 출마 뜻을 접었던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 의정부갑 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 채비 등과 겹쳐 당내 잡음도 절정에 달하고 있다. 미래통합당 못잖게 공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내부지지층의 분열 우려감이 팽배하다. 탈당과 무소속으로의 이탈이 곳곳에서 터지면서 총선전략에 중대한 차질음이 생겼다는 내부 경고등도 켜진 상태다. 누구보다도 선거전략 상 위중하다는 상황인식을 갖고 있는 이 대표가 그래서 ‘당을 뛰쳐나가면 이유 불문하고 복귀 불가’를 외쳤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공천 불복의 역사도 새삼 화제로 떠오른다. 공천은 두가지 얼굴을 가졌다. 환호와 패배감이다. 공천을 거머쥔 인사는 뛸듯이 좋아라 하겠지만, 공천 탈락자는 쓰라림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당의 공천 결과를 쿨하게 인정하는 이도 있겠지만, “내가 희생양이 됐다”며 불복하는 이도 적잖았던 게 정치권의 역사다.

공천파동의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16대와 18대 공천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시 제1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임명한 윤여준 총선기획단장은 혁신적인 공천을 단행했다. 일부 언론에선 ‘공천학살’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과감했다. 당내 계파 수장인 거물급의 김윤환·이기택 의원을 공천 배제했다. 이에 반발한 김윤환 의원 등은 민국당을 창당했지만, 총선 결과는 지역구 1석과 비례대표 1석이 전부일 정도로 초라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쇄신의지를 인정받아 273석 중 133석을 얻었다. 여소야대 국회를 이끌어낸 것이다.

좀 색다른 경우도 있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 공천탈락자들은 친박연대를 만들었다. 출발은 초라했지만, 친박연대는 영남권을 중심으로 14석(비례대표 8석)을 얻어 선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는 특수 변수가 배경이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다만 당시 이방호 사무총장과 정종복 제1사무부총장이 주도했던 공천은 명분없는 철저한 계파공천이었는데, 묘하게도 두 사람은 낙선했다.

공천 불복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관점은 다르겠지만, “탈당해서 살아 돌아오겠다”는 외침이 자주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해찬 금지법’과 무관하게 말이다.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한 김영우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16일 JTBC ‘전용우의 뉴스ON’에 출연해 이와 관련해 “공천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하는 것은 어느 당이나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이번 정치권 인사들의 공천 불복은 찻잔 속에 태풍으로 끝날 것”이라며 “과거 친박연대처럼 ‘박근혜’라는 구심점도 없기에 (공천 불복 폭발력도 없다)…”라고 했다. 불복 인사들의 명분을 좋게 평하지 않은 것이다. ‘이해찬 금지법’이 만들어진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이 대표의 언행은 두고두고 회자되겠지만, 유권자인 나로선 별로 손해볼 게 없을 것 같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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