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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겨울 비수기, 가격 함부로 못 올려”…세탁업계에도 ‘골목상권’ 논란
겨울은 통상 세탁업계 비수기
공장형 세탁업체까지 등장해
골목 세탁소들, 매출도 반토막
맘카페 후기 받는등 ‘생존전략’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세탁소. “경력 30년”이라는 이 세탁소의 장모(66) 사장이 옷걸이에 옷을 걸고 있다. 장 사장은 “이제 세탁소의 시대는 지나갔다”며 한숨을 쉬었다. 박상현 기자/pooh@heraldcorp.com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식당도 골목에 있는 건 많이 없어지잖아요. 그거랑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세탁소도. 예전에 손님 열 명 왔다면 지금은 한두 명도 안 돼요.”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손명만(56) 씨는 이처럼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30년 가까이 세탁업을 했다는 손 씨는 “예전에는 이 동네 23개나 있던 세탁소가 지금은 7개만 남았다”며 “우리도 조만간 집어치우고 노후에 뭐 해먹고 살지 다른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손 씨는 “옛날에는 양복이 두 줄 꽉 차 있었는데 지금은 한 벌도 없다”며 한참동안 행거에 걸린 옷들을 바라봤다. 이어 “현상 유지나 되면 다행이지만 계속 벌어 놓은 것만 까먹고 있다”며 “골목 소상공인들은 전부 적자인 셈”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골목 세탁소’, ‘공장형 세탁업체’와 경쟁 탓 20년 전 가격 받아=아현동과 마포구 공덕동 일대의 ‘골목 세탁소’ 안은 조용했다. 행거에 걸린 옷걸이들은 손가락 두세 개가 들어갈 정도 간격으로 드문드문 걸려있기도 했다. 세탁소에서 일없이 TV를 보던 세탁소 사장들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가 손님이 아니라는 말에 실망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세탁업계의 비수기인 한겨울이 다가오자 골목 세탁소 사장님들은 연신 한숨을 쉬었다. 30년 가까이 세탁업에 종사한 장모(66) 씨는 “12월, 1월이 장사가 잘 될 성 싶어도 제일 안 되는 비수기다”라며 “12월 크리스마스, 송년회, 1월 신년회, 음력 설 등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사람들이 가을에 옷 찾아가고부터는 잘 안 오는 때가 이 때”라고 말했다. 손명만 씨도 “가을에 맡긴 옷 다 찾아가고 난 다음인 한겨울이 비수기”라며 “12월 지나 이듬해 2월까지가 최고 비수기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대량의 옷을 싼 값에 세탁해 주는 이른바 ‘공장형 세탁 업체’의 등장은 골목 세탁소의 매출에도 악영향을 주었다. 손명만 씨는 “공장형 업체가 들어서고 나서 거의 반 토막 나다시피 했다”며 “예전에는 한 (월)300만원 조금 넘었다면 지금은 100만원 남짓 밖에 안 된다”고 했다. 장 씨도 “예전에는 (월)400~500만원 벌었다면 지금은 200~300만원 버는 정도”라며 “매출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공장형 세탁업체와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세탁소를 운영 중인 경력 17년의 정평도(58) 씨는 “(매출)말하기가 창피할 정도”라며 “배운 게 이 기술뿐이라 마지못해 하는 거지 돈에 애착을 가졌다면 벌써 정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세탁소. 근처에 ‘공장형 세탁업체’가 위치한 이곳의 사장 손명만(56) 씨는 “손님이 없어 앉아서 TV나 보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박상현 기자/pooh@heraldcorp.com

세탁소 사장들은 매출 감소와 함께 지속적인 물가 상승에도 박리다매식 공장형 세탁업체의 등장으로 20여 년 전 가격을 올리지도 못 하는 이중고도 겪고 있었다. 내년이면 경력 30년이 되는 공덕동의 한 세탁소 사장인 김부식(65) 씨는 “처음에 공장형 세탁업체가 나오고 손님들이 줄어서 힘들었다”며 “지금 물가도 오르고 모든 게 다 올랐지만 우리는 20년 전 가격에서 올리지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덕동에서 24년간 세탁소를 운영한 이모(60) 씨도 “가격 경쟁 부담이 제일 크다”며 “공장형(세탁업체)은 가격으로 승부하니 가격을 올리는데 부담이 있다”고 했다.

▶“성심성의껏 세탁해 주고 고객에게 인정받는 것이 살 길”=점점 비싸지는 옷, 신발 등의 가격도 세탁소 사장들에겐 부담이 된다. 세탁업 표준 약관 제7조 4항에 따르면 고객이 세탁물의 품명, 구입가격, 구입일 등을 입증하지 못해 배상액 산정이 불가능한 경우 세탁요금의 20배를 배상하면 되지만, 법을 잘 모르거나 고객의 고성 등 항의로 전액을 배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덕동에서 7년간 세탁소를 운영한 김재진(67) 씨는 “요즘은 신발이 몇십 만원을 넘어 100만원도 넘는 게 있어 세탁하기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면서 “예전엔 실수로 세탁이 잘못돼 고객이 찾아와 소리를 지르고 항의를 하셔서 맞서 싸울 수도 없고 전액을 배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20만원이 넘는 신발 5켤레 정도여서 타격이 꽤 컸다”고 말했다.

반면 공장형 세탁업체의 경우 세탁물이 손상되었어도 배상을 받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얼마 전 공장형 세탁업체에 60만원짜리 코트를 맡겼지만 다 망가져서 왔다”며 “공장에서 맡기는 거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공장에 맡기는 거라 이염돼도 말 말라는 사인을 하라더라”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러한 추세에 ‘세탁 장인’들은 자신들만의 승부 전략을 찾고 있다. 김재진 씨는 “어느 날 맘카페에 좋은 후기가 올라 온 후 손님이 늘어 ‘좋은 맘카페 후기 받기’ 전략을 쓰고 있다”며 “세탁법 연구, 이태리제 세제 등을 어필해 손님을 유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씨는 “단골에 집중한다”며 “자잘한 손님 수십 명 보다 단골 몇 명이 낫다. 단골 손님은 이사 가서도 옷을 맡기러 찾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정평도 씨는 “내 성심성의껏 세탁을 해주고 고객에게 인정받는 것이 살 길”이라며 “자구책은 그거 밖에 없다”고 말했다.

po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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