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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학자들,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민주주의 수호’에 나서다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김영평 외 지음 가갸날

“민주주의는 최악의 제도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은 제도는 아직 찾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역설을 담은 널리 회자되는 얘기다.

내로라하는 국내 행정학자 7명이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한 애정과 염려를 담아 작지만 깊은 울림을 지닌 책을 냈다. 19편의 작은 글로 이루어진 책은 각 장의 제목만 봐도 흥미롭다.

첫 장부터 상당히 도발적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로서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에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법에 의한 국가권력의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국민에 의한 정부’에 대해서도 주권자인 국민이 어떻게 뜻을 모으고, 어떻게 국가권력을 사용해야, 그것을 국민자치라고 말할 수 있냐고 묻는다. 국민의 의사를 따르는 것은 좋지만 ‘국민의 의사’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정부’와 관련해서도 국가가 하는 일이 다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천진난만한 사고라고 일침을 가한다.

9장 ‘복지국가는 민주주의 이상향인가?’도 우리 현실과 맞물려 관심을 끈다. 복지국가는 자유민주주주의 국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용과 뿌리를 가진, 전혀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이다. 복지지상주의자들은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라면 국민의 자유, 인권과 재산권을 침해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이런 견해에 강력히 반대한다. 그들은 복지국가적 접근은 자유 민주사회를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어갈 ‘트로이 목마’라고 생각한다. 또 복지국가의 목표 중 하나가 국민통합이고 위화감 해소인데, 현실에선 그 반대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노인 복지를 위해 틀니를 보조해 준다고 하자. 그러면 보청기 보조는 왜 안 해주냐고 불평이 나온다는 것이다. 세금을 더 내는 젊은 층은 정작 자신에 중요한 안경 하나 제대로 구입 못하는 실정이라면 이것은 통합이 아니라 국민의 정서적 분열이라는 것이다. 평등의 추구가 불평등을 낳는 역설은 통렬하다. 결론적으로 복지국가를 한다고 자유민주주의가 주는 이득들, 특히 경쟁으로부터 얻는 합리성과 예지, 자유와 책임의 동행, 토론과 비판, 오차수정을 통한 학습의 이익 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민주주의 위기의 원천은 민주주의 운행원리에 내재하고 있다는 주장도 깊이 와 닿는다.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자유를 오용하거나 남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민의 보통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을 결정하는 방법에도 민주주의 실패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본다.

이 책은 결론에서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처럼 연약하기만 하다. 세심하게 다루지 않으면 탈이 나고 깨어지기 쉽다. 미국이나 영국이 수많은 위기를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저력은 제도 자체보다 비법률적인 문화에 있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 대상이 아닌 선의의 경쟁자로 보고, 상호 공존하고 타협하는 관용의 문화에 있다. 자기세력만이 옳다는 자만과 외고집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자기겸손과 절제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이라는 것이다. 우리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다.

이 외에도 ‘사법부, 선출되지 않은 권력?’ ‘정책은 여론을 따라가야 하는가?’ ‘직접민주주의가 더 나은 민주주의인가?’ ‘민주정부의 정책결정은 무엇이든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나?’ ‘시민단체는 정말 시민을 위한 단체인가?’ 등 평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주제를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김능옥 기자/k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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