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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호 여사 별세] 생전의 이희호 여사 “여성 인권존중 기여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DJ 정부때 여성부 신설 영향
가족법 개정·호주제폐지 기여


10일 별세한 고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으로 아로새긴 역사 못지않게 ‘여성운동가’로 걸어온 발자취 또한 뚜렷하다. 그가 3년 전 ‘이희호 평전’을 출간하며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고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밝혔던 이유다.

이 여사는 이화고등여학교(옛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옛 이화여대)ㆍ서울대 사범대를 나와 당시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던 미국 유학까지 끝마친 엘리트 여성 운동가였다. 고인은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ㆍ여성교육자 황신덕 여사ㆍ한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당 대표(민주당)를 맡은 박순천 여사 등과 함께 ‘여성운동 1세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여사는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 결성과 1952년 여성문제연구원(현 여성문제연구회) 창립을 주도해 현대 한국의 여성정책이 뿌리내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여성문제연구원에서 상임간사와 회장을 역임하며 여성노동자 근로환경과 여성 정치의식 등을 조사하고 ‘요정 정치’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59년에는 대한 YWCA연합회 총무를 맡았다. YWCA에서는 ‘축첩자(혼외 배우자를 둔 사람)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는 캠페인에 나섰다. 남녀차별적 법조항을 수정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이 여사가 핵심이 돼 벌인 YWCA의 활동은 1989년 남녀차별적 내용을 일부 고친 가족법 개정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이는 나아가 호주제 폐지로 이어졌다. 그는 1961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를 맡았다. 1999년엔 한국여성재단 출범에도 관여했다.

이 여사의 여성운동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와서도 일관되게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여사에게 생애 많은 부분에 걸쳐 큰 영향을 받은 만큼 여성 문제에 관심이 컸다. 당시 국민의 정부가 적극적으로 여성 정책을 펼친 이유다.

이는 법률상 변화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에 가정폭력방지법이 생겼고, 1999년엔 남녀차별금지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전담부서도 생겨났다. 2001년엔 여성부가 신설됐다. 부처마다 여성정책담당관실도 설치했다. 김 전 대통령 취임 전 50년 간 1명에 불과했던 청와대 여성 비서관은 국민의 정부 5년간 10명으로 늘었다. 여성 장관도 여러 명 탄생하는 등 여성의 공직 진출 문턱이 낮아졌다.

이 여사는 이화여대 출신 재야인사 등을 중심으로 여성 정계 진출의 문호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고, 여성계 출신 정치인들과 꾸준히 교류했다. 대표적인 인사로는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낸 한명숙 전 총리ㆍ2002년 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장상 전 총리 서리 등이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신낙균 전 의원ㆍ여성특별위원장을 역임한 윤후정 전 이화여대 명예총장ㆍ이미경 전 의원 등도 이 여사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현종 기자/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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